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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노래] 1. 원승치마을 할머니2020-10-20

[사람의 노래] 1. 원승치마을 할머니


사람의 노래 1편, 원승치마을 할머니

인생이 뭐긴, 그냥 사는 거여!


코로나로 한참 시끄럽던 여름, 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의 일환으로 청정지역 완주로 왔다. 집 앞의 넓은 파밭과 꼬리를 휘두르며 파리를 쫒는 누런 소들, 장대 같은 폭우와 뒤이은 폭염을 거치며 화산에서의 생활이 시작했다.

나는 큰 오케스트라와 컴퓨터를 주 악기로 다루며 일하는, 흔히 말하는 가방끈 길고 나름의 경력까지 갖춘 작곡가이다.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나를 표현하고, 내 노래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어 먹고 살다 언젠가부터 나의 노래는 결국 누군가의 노래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되재성당으로 가는 마을 초입에 자그마한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작게 소를 먹이며 사시는 어르신을 찾는다며 할머니께 말씀을 여쭙다가 그곳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만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쏟아내신다.





되재성당으로 가는 마을 초입에서 만난 할머니의 인생살이는 아무런 꾸밈이 없이도 할머니만의 노래가 된다.


승치리, 몇 집 되어 보이지도 않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시고 이웃집 아들과 결혼하신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 없는 할머니는 남편이 돈을 안 벌어와 고생하며 자식 7남매를 키워냈다고 하신다.

아니 평생 같이 자라온 동네오빠인데 성실한지, 안 한지 결혼 전에 모르셨냐고 묻자 그때는 잘 할 줄 알았지, 허허하시며 웃음을 지어 넘기신다.

할머니는 허리, 손가락, 다리 안 아프신 곳이 없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내 논 한번 못 가져보고 평생 품을 팔며 자식을 건사한 세월의 병이라신다.

먼저 하늘로 보낸 사무치게 보고 싶은 딸,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또 하나의 딸, 수녀가 되겠다며 수녀원으로 들어가 버린 공부 잘 하던 나의 또 다른 딸. 할머니의 이야기는 아무 꾸밈없이도 할머니만의 노래가 되어있었다.

빨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는 할머니께, 인생이 무엇이냐고 여쭤봤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한다는 듯 한심한 눈으로 인생이 뭐긴 뭐여, 그냥 사는거여!’라고 대답하신다.

화려한 기술과 대단한 준비과정 없이도 노래는 불려지고, 손대지 않고 나를 뽐내지 않는 인생 안에 더 큰 울림의 노래가 만들어 짐을, 그리고 각각의 노래가 모두 소중함을 이제야 조금씩 마음으로 알아간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를 틈틈이 추임새로 쓰시면서도 금쪽같은 손주손녀와 자신을 돌봐주는 착하디 착한 자식들 얘기로 채워지는 할머님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그 어느 대작보다 진실하고 스스로 울리는 노래처럼 들려 내 가슴이 함께 울림을 완주에서 배워나간다.

점잖은 모범생같은 완주의 길길마다 불리워지기를 바라는 또 다른 많은 노래들을 더 듣고 싶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작곡가 김민경은

비엔나 국립음악대학에서 작곡 및 전자음악을 전공하며 심사위원 만장일치 최고점으로 졸업하고, 파리고등국립음악원(CNSM) 교환학생으로 발탁되어 수학하였다. 오스트리아 대통령궁의 초청으로 작품발표 연주회를 가졌으며 오스트리아 비엔나 시()와 펠트키르헨 박물관의 위촉을 받아 시즌개막연주를 하였다. 한양대, 숙명여대 등의 대학에서 강사를 역임하며 동시에 국립무용단 등 다수의 단체와 협업을 통한 무용음악 및 설치음악을 작곡하였으며, 조수미, 리처드 용재 오닐 등 클래식 음악가들의 음반 및 공연분야, 방송 분야를 어우르는 폭넓은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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