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웃어라 공동체

[사람의 노래] 2. 수실마을 할머니2020-11-13

[사람의 노래] 2. 수실마을 할머니

수실마을 들어가는 길 첫번째 집에서 만난 할머니는 인생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도 손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사람의 노래 2편, 수실마을 할머니

아직은 튼튼한 몸… 잘 키운 자식

이 정도면 행복한 거지


화산에서 차를 모는 도시 촌놈은 뻥 뚫린, 앞으로도 막힐 일 없는 길을 달리며 산천초목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트가는 짧은 길에서조차 매번 평안한 행복을 느꼈다. 해가 아직 강하던 날, 등이 다 굽어 내 가슴팍에 겨우 닿을만한 키의 할머니가 20kg 쌀을 등어리에 진채 나무 그늘 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에 기분 좋고, 세상 편한 도시 사람의 호의로 집에 모셔다드리겠다고 여쭙자,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차에 짐을 실으셨다. 노인네가 그 큰 쌀을 등에 지고 걸어가니, 나는 당연히 골목 몇개 지나면 도착하는 곳에 집이 있으려니 했지만, 할머님은 차로도 7-8분을 가야하는 다른 마을에 살고 계셨다. 나라면 오늘의 할 일에 넣지도 않았을 땡볕에 맨몸으로 쌀 나르는 일이 할머니에게는 생각났을 때 해야 하는 일의 목록에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가 주신 블루베리 요거트를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화산 구석구석 자리잡은 작은 마을들이 얼마나 오지이고 산골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라면 걸어서 갈 생각도 안했을 저 건너 마을, 나라면 단 한 번에 엎어져 울고 있을 이야기들, 나라면 인생이 무너져 외로운 동굴로 들어갔을 사건 사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읊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같은 감정이었다. 수실마을 들어가는 길 첫번째 집에서 할머니께 길을 여쭤보다 함께 앉아 쪽파를 다듬게 되었다. 소 한마리 먹이시는 축사 옆으로 넓게 자리한 밭 한 바닥에 이것저것 심고 돌보신다. 할머니 발이 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작은 체구의 할머니는 이야기 중간에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셨다. 다음 주에 올 아이들에게 줄 김치거리를 캐고 다듬고, 여기저기 잘라서 말려놓은 채소들을 뒤집고, 소에게 밥을 주고 그러는 중간에 이런 저런 이야기도 풀어내신다. 처음 시집와서 돈을 벌고자 들었던 쌀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둘째 며느리로 들어와 집안의 첫 아들을 나았을때의 기억들, 그렇게 아이를 키우려고 나간 도시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남편을 새벽 뺑소니 교통사고로 잃은 이야기들을 끊어지지 않는 자식 자랑 사이사이로 툭툭 내시고는 또 다시 일어나 다음 일거리로 잰 걸음을 하신다. 아직 튼튼한 육체, 착실하게 잘 키워낸 아이들, 내가 살 번듯한 집, 그 정도면 행복한거 아니냐며 웃으시는 할머님이 세상 부자, 대단한 인생예술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찾아뵐때마다 내 손에 김치를 쥐어주시고, 바닥이 차다며 송아지 방한 조끼를 내어주시는 따스한 할머니, 그 조그만 몸으로 자식을 혼자 다 길러내신 억척스럽지만 소녀처럼 이쁜 할머니는 조실부모하고 친척 손에 자라셨지만, 그 또한 지나가는 에피소드처럼 몇 마디하시고 만다. 수실마을 할머니의 인생노래가 마치 잊혀져가는 구전 농요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무게와 깊이를 넘어선 슈베르트의 짧은 가곡처럼 그 자체로 빛을 다하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많이 담아놓아야 할 것 같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사람의 노래] 1. 원승치마을 할머니
다음글
[완주는 아동친화도시 33] 비대면일지라도 "응답하라"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