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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食이야기] ⑩ 기고을식품2019-12-10

[로컬푸드 食이야기] ⑩ 기고을식품


책임감이 빚어낸 황금빛 걸작메주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은 직업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가 만든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그 음식이 먹는 사람의 몸에 들어가 몸의 일부가 되는 일. 그래서 어떤 일보다 책임감을 요하는 직업이다. 나는 책임감으로만 사는 삶을 거부하며, 재미있는 삶을 살겠다며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며 내가 만든 음식을 돈을 내고 구입하는 사람들을 매주 만나면서 책임감은 내가 선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아았다. 기고을식품의 김성환 대표를 만나고 머릿속에서 이 사람을 소개하는 한마디가 바로 이 책임감이었다. 음식과 전통문화, 고객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책임감으로 똘똘뭉친 이 사람은 언제가 자신이 갖고 있는 계란으로 바위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성환 대표(39)87년에 귀농한 아버지를 따라 전주로 내려왔고, 초등학교 때부터 어깨너머로 농사를 배웠다. 한문학을 전공했던 아버지는 1999년 진안에 있는 폐교를 구해 건강과 식품의 영향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 온생명평생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20년 넘게 발효식품과 건강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김성환대표는 자연스럽게 전통장류와 발효식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에서 전통음식을 전공한 김성환씨는 같은 과 동기인 아내를 만나 10년 전에 진안으로 귀농했다. 5년간 아버지와 함께 전통 장류 개발과 교육을 병행하다가 5년 전 완주군 경천면으로 귀농해 아내와 함께 기고을식품을 설립했다.


 


장을 만드는 분들은 각자 오랜기간 연구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걸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전통음식의 비법은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공유하는 게 손해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통 음식의 맥이 끊기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김성환 대표는 전통을 이어가는 일을 단지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마케팅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쌓아 온 연륜은 아니지만, 비교적 어린 나이인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장맛을 내는 비법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던 건 이 일의 중요성을 알고 늘 배우려는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리라.

 

된장 제조법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경험으로 좋은 된장을 만들어 파는 일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된장과 청국장을 먹어본 나는 그 선택이 반갑고 고마웠다. 진심을 담아 일하는 사람에게 매출에 대해 묻는 순간은 늘 조심스럽다. 나는 의외의 답을 들었다. “수익을 생각하면 된장을 파는 게 낫지만, 매출의 80% 이상을 메주가 차지해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잘 사지 않을 것 같은 메주가 주력상품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할머니가 빚어 놓은 메주 때문에 집안 가득한 쿰쿰한 냄새가 싫어서 한동안 코를 막고 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상에서 멀어진 메주를 도대체 누가 사는지 궁금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내주던 된장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이 직접 만들어 보려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을 위해 체험하려는 주부도 있구요. 대부분 도시의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작은 항아리 하나를 두고 메주로 된장을 담그고 있어요.”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이 되야 제대로 된 장맛을 볼 수 있기에 메주를 파는 일은 고객과 관계를 맺고 그 집의 장맛을 책임지겠다는 각오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고객이 서투른 솜씨로 장을 담근다. 담그는 과정부터 숙성되서 거르는 기간, 보관 중에 발생하는 여러 변수들 때문에 고객들로부터 끊임없이 많은 질문을 받는다. “장은 만지는 사람의 건강상태, 공기의 질, 온도 등 살아 있는 균을 다루는 일이어서 변수가 많아요. 옛말에 집안에 우환이 들면 장맛이 뒤집힌다는 말이 있는데, 그냥 하는 말은 아니에요.” 바쁜 와중에도 손님과 소통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고객과 함께 된장을 연구하며 그가 담그는 된장을 최상급품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메주는 보통 12월에 만들어 한달 정도의 발효 기간을 거쳐 1월부터 판다. 예전에는 메주를 매달아 놓고 발효시켰지만, 대기오염 문제로 이제는 깨끗한 시설에서 발효해야 한다. 김성환씨가 직접 설계한 발효실은 공기정화를 위해 3중 필터를 쓰고 보일러를 돌려 일정하게 온도를 유지한다. 발효 과정에서 잡균의 침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앞뒤로 문을 만들고, 발효실 내부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한다. 요즘은 작업 편의를 위해 메주를 건조할 때 양파망을 쓰는 곳도 많지만 음식에 직접 닿는 것인만큼 화학제품이 아닌 볏짚을 고수한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하며 연구한 결과인지 김성환씨의 메주에는 황색 곰팡이인 황국균이 핀다. 보통 메주에는 흰색곰팡이가 많이 피는데 황색곰팡이는 그보다 더 최상품이다. 요즘은 자연발효의 실패율을 줄이기 위해 균을 배양해 넣어주는 방식을 많이 쓴다고 한다. 발효 초기에 균을 넣어주면 먼저 자리 잡은 균 때문에 다른 균이 생기지 않는데, 김성환씨는 인위적인 방법은 쓰지 않는다. 발효의 핵심 과정은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설비는 변화된 자연환경에 맞게 효율적으로 바꿨다. 휴대폰 사진첩을 뒤지며 못생김의 대명사였던 메주를 보여주고 연신 예쁘죠?”라며 묻는 그의 얼굴에 자부심과 천진함, 애정이 묻어 있었다.



 

저는 적어도 제가 만드는 음식에는 국산 재료를 고집해요. 국산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수입산을 쓰지만 이 때에도 원가가 비싸더라도 중국 가공이 아닌 국내 가공품을 써요. 원가를 생각하면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한다면서 외국산을 쓰는 게 스스로 납득이 안되서요. 더 좋은 재료를 쓰고 소비자를 설득해서 제 값을 받으면 좋지만 아직까지는 쉽지 않아요.”

매년 수확한 햇콩으로 아내와 함께 만들 수 있는 양만큼 만들어 팔고 있다. 로컬푸드 매장에 납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최근에는 서울에 있는 직거래 장터에 직접 나가 매주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3년 째 이 일을 하는데 처음에는 경비 15만원을 들여 서울을 왔다갔다하면서 하루 매출이 7천원이 안되는 적이 많았어요. 저녁에 휴게소에서 7천원짜리 밥을 차마 먹지 못했죠.” 김성환씨의 눈은 먼 곳을 보며 전통장의 맥을 이어가겠다는 이상을 향해 있었지만, 발밑에 둔 현실은 세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오늘의 매출에 실망하며 주저앉아 있는 시간도 사치였고, 그 옆에는 든든하게 응원해주는 아내가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싶다는 바램은 지키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기고을 식품도 함께 성장해 귀농 10년차인 지금에서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음식 솜씨 좋은 장모님과 아내 김화영씨가 함께 개발한 시래기청국장과 시래기된장국이 히트를 치고 있다. 장맛이 좋으면 음식맛도 좋다지만 한식 국물 요리만큼 까다로운 것이 없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준비과정도 복잡한데다가 오랜 연륜 없이는 쉽게 맛을 낼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의 식탁에서 한식이 점차 멀어지는 것도 그런 이유인지도 모른다. 기고을 식품의 시래기청국장과 시래기된장국은 맹물에 한팩 그대로 넣고 끓이면 엄마가 해준 것만큼, 혹은 더 맛있는 한끼 식사가 완성된다. 멸치로 육수를 우려내지 않아도, 한 번 먹고 냉장고에서 오랜 시간 보관해야 할 각종 야채가 없어도 인심좋게 들어간 무청 덕분에 누구에게 내놔도 손색없는 요리가 된다. 물론 혼자 밥해먹기 귀찮은 혼밥족에게도 충분히 매력있는 간편식이다.

 

일을 하면서 내 뜻과 달리 억울하고 화나는 상황이 많이 생기기도 해요. 하지만 이럴 때 맞서서 경쟁하기 보다는 더 좋은 신제품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려고 해요. 결국 경쟁을 하면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고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한 뜻과 멀어지게 될거에요. ”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면서 그간의 고충을 한마디로 압축하며 그다운 결심을 말해주었다.

 

우리는 싸고 좋은 것을 찾는다. 하지만 옷이나 다른 공산품은 가성비 좋은 제품이 있을지 몰라도 음식만큼은 예외다.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를 써서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만들어야 하는데, 당연히 이런 과정은 시간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다. 비싼 국내산 재료를 쓰고, 남들보다 더 많은 공정을 하더라도 내가 만든 음식이 먹는 사람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들. 올해 식스토리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돈버는 일보다 제대로 만드는 일을 더 잘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어느것하나 게을리 할 수 없이 바쁘고 고된 일상을 견뎌내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정성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내년에도 더 많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숨겨진 보물같은 좋은 음식을 먹도록 발굴해 내려고 한다.


 

기고을식품은 이런 제품을 만들어요.

 

메주, 된장

작은 항아리 하나 분량인 이 메주로 된장 14키로를 얻을 수 있다. 최소 1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아플라톡신이라는 발암물질이 나올 수 있다. 1년 이상 숙성하면 이 물질이 없어져 김성환씨는 최소 2년 이상 숙성된 된장을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메주는 매년 1월에 판매하며 5(7키로) 기준으로 12만원(택배비 5천원 별도)에 판매된다. 메주를 사면 된장 만드는 법을 함께 배울 수 있다.



 


간장

간장은 숙성기간에 따라 햇간장, 중간장, 진간장으로 나누는데 5년 이상되면 진하다고 해서 진간장이라고 부른다. 잘 만들어진 진간장은 새카만 색 위에 황금빛이 돈다. 이런 색을 띄는 간장은 씨간장으로 제격이다. 흔히 간장을 달여 쓰거나 파는데, 김성환씨의 간장은 잘 숙성되어 변질 염려가 없어 끓이지 않는다. 장독대에서 바로 먹어본 간장맛인데 맛간장처럼 달달한 맛이 있다. 이 간장맛을 본 사람들은 조미료를 넣었냐고 의심하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시래기청국장, 된장

청국장에 시래기와 간장, , 마늘, 새우, 홍합, 고춧가루 등으로 조미해 물만 부어서 바로 끓여먹을 수 있는 제품이다. 맹물에 청국장 한봉지를 넣고 끓였는데, 여태껏 청국장으로 유명하다고 소문난 백반집의 청국장과 비교해도 손색 없을만큼 맛있었다. 담백하면서 고소한 청국장 고유의 맛은 살아 있고, 적당량의 시래기가 풀어져 있어 다른 부재료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다양한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한식을 좋아하지만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청국장을 먹고 난 뒤에 남는 쿰쿰한 냄새가 적어서 좋았다. 로컬푸드에서 두부와 버섯을 사와서 함께 끓이면 찌개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음식솜씨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2년 이상 숙성된 재래된장을 쓴 된장국은 레시피에 적힌 물의 양대로 넣어 끓이면 염도가 적당하면서도 된장의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생산 시기에 따라 3년 숙성된 된장을 맛보는 행운을 얻을 수 있는데, 이번에 맛본 된장국은 유난히 구수해서 물어보니 3년 숙성된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 청국장보다 더 맛있어서 엄마에게 선물해 드렸다.


*구입문의 : 010-6309-3617

홈페이지 : https://kigogeulfood.modoo.at/


/글·사진= 조율(조율은 2017년 말 완주로 귀촌, 고산미소시장에서 가공품을 판매하는 상점, 율소리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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