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0] 조용한 힘을 모은 비봉에서의 1년2021-06-17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0] 조용한 힘을 모은 비봉에서의 1년


오월 모일 날씨 흐리고 갬

솔잎효소를 만들어 보았다. 똑똑 꺾은 솔잎을 삼일간 물에 담는다. 설탕과 물은 절대 저으면 안 된단다. 들은 설명대로 작은 불로 끓었다.

방 안에 푸른 향이 가득하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화내고 답답한 공기를 솔잎 향이 씻어 주는 것 같다. 집에서 소나무 삼림욕을 한 하루가 되었다.

 

오월 모일 날씨 비 온 뒤 흐림

옥수수가 많은 밭은 그대로 그림엽서가 될 수 있다. 많은 청보리, 많은 유채꽃도 그렇듯이

버스가 다니는 집 앞 도로를 따라 해바라기를 심었다. 이랑, 고랑이라는 말을 배운 후 몇 명과 함께 검은 비닐을 먼저 깔았다. 긴 비닐은 보기보다 훨씬 무겁고 바람에 휘날린다. 둥근 구멍에 하나 걸러 모종을 심었는데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장화나 호미에 흙이 묻어 무거워진다. 노란 풍경을 꿈꾸어 시작 했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여러 노력 끝에 아름다움이 생기는구나.

 

오월 모일 날씨 맑음

비봉에 이사 와서 일 년이 휙 지나갔다. 작년에는 장마가 길고, 비가 쏟아져 일을 하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수박이나 옥수수를 난생 처음으로 배 불게 먹었다. 조생종 밤을 주웠다. 밤송이에서 알을 꺼내면서 문득 눈을 들어 올리니 코스모스 밭이 펼쳐져 있었다. 해 지기가 빨라진 무렵에 김장을 했는데, 냉장고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이웃들에게서 받기도 했다. 눈이 아물아물 날아오는 하늘을 창가에서 멍하며 바라보는 사이에, 땅 밑에서는 봄 준비가 끝나 시냇물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두릅이나 오가피 나무순, 미나리, 방풍나물 등으로 만든 비빔밥을 맛보았다. 옻나무 순을 먹었다고 일본 친구들에게 자랑했더니 다들 부러워했다. 새소리로 잠을 깼다. 진달래와 매화, 벚꽃, 개나리가 피고, 철쭉이 진 다음엔 오디나 자두가 익어가고 있다. 크나 큰 자연 앞에서 별의 반짝임 같은 한 해였다.

아쉽게도 갑자기 일본에 가야 하게 되었다. 산뜻한 산과 숲, 시냇물 소리가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조용한 힘을 내 속에서 모은 세월이었다. 그 모든 것에 감사를 올린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안녕!


글쓴이의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나카무라의 비봉일기는 이번호를 끝으로 종료합니다. 함께 해주신 나카무라님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생활 10년차 나카무라 미코는 2020년 5월 한국인 남편과 비봉면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시민교류를 추진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며, 비봉에서는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이근석의 완주공동체이야기] 땅강아지
다음글
[신미연의 시골생활 이야기 12] 부엉이와의 조우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