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웃어라 공동체

[사람의 노래] 5. 순지마을 해진스님2021-02-09

[사람의 노래] 5. 순지마을 해진스님

해진 스님과 강아지 카오


밥그릇 물고 쫓아 오던 강아지 꿈

요놈 카오를 만나려고 그랬나


용진 순지마을 산자락에는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내는 대라공주와 함께 먹을 갈며 곁을 나누는 왕자오빠가 살고있다. 논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희안한 길을 지나야 다다르는 그들의 마당에는 고양이 양생원과 엄마염소 나타샤, 아기염소 윤복이, 강아지 겸재와 북산이 그리고 이름없어도 할 말 많은 닭들이 함께 살고있다.

듣기만해도 북적북적한 대라공주에게 가는 길 바로 왼쪽 앞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잔뜩 걸린 작은 절이 있고, 그 양지바른 문 앞에는 3-4세대에 걸쳐 너도나도 다 노란색털로 뒤덮힌 고양이 무리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아기 고양이들이 이유없이 신난 뜀박질을 할 때마다 쉬지않고 앙칼지게 짖는 강아지 이름은 카오고, 내 팔뚝 반정도로 작은 카오는 애지중지 자신을 소중히 안은 품을 떠나지 못하는데, 카오에게 따스한 품을 내어주시는 그 분은 해진 스님이다.

사람들이 잔뜩 모인 자리에서 처음 서로 말을 나눠 본 해진스님은 털하나 남지 않은 반들반들한 머리와 잿빛 옷이 스스로 풍기는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무색무취의 사람처럼 평안해보이셨고, 아무 소리 나지 않는듯한 존재감을 풍기셨다.잔잔하게 노란 고양이들의 사연을 알려주시고, 직접 키워 덕어 낸 오가피 차를 우리시면서 작은 강아지 카오를 틈새없이 담요로 덮어주시는 손길, 사람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서도 내 다리 저릴까 다리 필 자리를 마련해주시는 모습에 따스한 마음이 전해진다.

작은 강아지 카오를 알기 전부터 닮아버린 동그란 얼굴에 살짝 쳐진 눈웃음이 내재된 귀여운 얼굴로 스물다섯 나이에 법을 따르기로하여 행자 삼년, 시봉 삼년 그리고 긴 수행생활과 더불어 자의와 무관하게 속가와 연결된 인연들과 육체가 만들어내는 인생의 굽이굽이를 나는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렇게 하얀 강아지가 작은 스뎅 밥그릇을 입에 물고 자신을 쫓아오는 꿈을 꾼 후 네살의 카오를 품게되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담요 속 따스히 데워진 카오를 쳐다보는 눈빛을 함께 보는것만으로도 내 용량은 가득찬다.

공부에 한참 빠져있을 시절의 생각이 기억났다. 공부를 할 수록 나의 지식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것만 더 확실해진다며 갑갑해 하던 날들처럼, 스님의 세월과 눈빛 그리고 어르신들의 사연과 울림있는 노래를 들을 수록 내가 얼마나 가볍고 얄팍한지만 더 깨닫게 된다.나에게 당장의 영향을 주는 노래가 아닌, 노래를 마친 후 더 많은 선율로 끌고 가주는 긴 노래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사람의 노래] 4. 집들이와 피아노
다음글
[웃어라공동체] 완주 책박물관 특별기획전 ‘문자의 바다’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