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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食이야기 <23> 연재를 마치며2021-01-04

로컬푸드 食이야기 &lt23> 연재를 마치며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의 무게

- 연재를 마치며


로컬푸드 식이야기는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처음 기사를 기획할 때 취지는 완주로컬푸드 매장에서 팔리는 가공식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에게는 소비자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제품의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한 애정이 생길 수 있는 인간적인 스토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심도 있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많은 가공업체를 만나면 배울 점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2년 동안 취재를 다니면서 보람있는 순간, 아쉬웠던 점에 대해 느꼈던 점을 마지막 인사를 하며 회고해 보겠습니다.


 


특별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생업의 현장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첫회 취재를 나갔던 완주 시니어클럽입니다. 평소 김부각을 즐겨 먹었던 터라 궁금한 것도 많았습니다. 먹음직스러운 김부각이 잔뜩 쌓여져 있는 작업대 위의 사진을 찍는데, 일하시던 할머님께서 한번 잡솨봐라며 한움큼을 쥐어 주셨습니다. 김부각 매니아로서 뜨끈하고 바삭하게 튀겨져 나온 김부각을 배불리 먹을 수 있던 그 날, 성공한 덕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 기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돌아가, 많은 사람들이 고소하고 짭짤한 이 김부각 맛을 알게 되면 좋겠다며 많은 분량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요즘도 김부각을 먹을 때면 할머니들이 작업장에서 활짝 웃으며 사이좋게 일하시던 모습이 생각나곤 합니다. 작업장에서 인터뷰 할 때 할머님 한분이 하루에 단 3~4시간이라도 일할 수 있는 게 고마워라고 하셨는데, 다소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김부각이 맛있는 이유는 이런 마음을 담아 만들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매번 이런 생생한 스토리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도 컸던 것 같습니다.

 

완주에 있는 가공식품 업체를 알아보기 위해서 로컬푸드 매장에 다니며 찾았습니다. 연재 횟수가 늘어날수록 취재처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그럴 때는 지인들의 소개를 받아 현장에 나갔습니다. 평소에 거의 먹지 않던 제품, 처음 만난 업체인 경우에는 만나서 들은 이야기에 의존해서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기사에 그럴듯한 소재가 필요해 여러 질문을 했는데 단골 질문은 일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자랑하고 싶은 노하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가끔 먹고 살려고, 어쩌다보니 시작했다는 답을 듣고 난감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진실된 답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한 번쯤은 겪었을 고난과 극복의 스토리를 미화해서 적고 싶은 건 저의 욕심이었던 거죠. 특별한 사연이 있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장인정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낭만적인 이상주의에서 벗어나 현실을 올바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면 먹고 살기 위해일한다는 답을 듣는 순간, 그 속에 숨겨진 삶의 생생한 이야기를 캐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소소공에서 판매 중인 호두강정.


소소공 이야기

저는 동료들과 함께 소소공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소소공 사람들 3명은 모두 음식 만드는 일이 처음입니다. 우연히 만들어 본 호두강정을 주변에 나눠드리자 팔아도 되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산 미소시장 주말 장터에서 조금씩 팔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년부터 온라인 판매를 하면서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처음 우리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던 지인들은 점차 떠나고, 어디에 있는지, 누군지 모르는 익명의 고객들 앞에 서게 됐습니다. 돈을 내고 구입하는 고객은 그 누구보다 냉정한 심판관이었습니다. 고객이 한번 더 찾아오게 하려고, 매번 긴장하며 만들고 물건이 배송되고 상품평이 올라올 때까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쉽게 낙관하고 겁 없이 도전했던 때가 그리울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고, 이렇게 느려도 되는건가 싶을만큼 한없이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만 힘들다고 느낄 때, 혹은 우리가 제일 잘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식스토리를 취재하기 위해 만났던 분들을 보며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둘 수 있게 됐습니다. 가끔 호두강정을 만들며 고된 노동으로 지칠때마다 취재하며 만났던 분들의 일하는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답게 일해야겠다고 반성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요즘은 처음 만나는 분에게 제가 하는 일을 얘기할 때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습니다. 아직은 스킬이 부족하다며 겸손한 척했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더 큰 포부와 꿈을 가졌던 게 더 솔직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제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가장 고귀한 일임을 깨닫는 것, 그게 가장 큰 포부이자 꿈입니다

 

  


감사 인사

할미레시피를 연재했던 1년이 완주 사람들의 정서를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면, 식스토리를 연재했던 2년은 완주에서 다양한 형태로 생업을 이어가는 분들을 만나고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제 삶에 많은 본보기를 찾아볼 수 있는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바쁜 생업의 현장에 초대해 주시고, 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신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또한 매번 부족한 글솜씨로 겨우 써내려간 글을 예쁘게 다듬어 편집하고, 2페이지의 지면을 할애해 실어주신 완두콩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완두콩 100회 축하드리며, 저희도 완두콩과 함께하는 동안 완주에서 결실을 맺어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사진= 조율(조율은 2017년 말 완주로 귀촌, 고산미소시장에서 가공품을 판매하는 상점, 율소리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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