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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마을의 만추] 김길중 할아버지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김길중 할아버지

한지 팔러 등짐 지고 서울까지 갔지


젊은 시절 마을 한지공장서 일해

사기피해만 네 번 "여보, 속 썩여 미안"

 

김길중(81) 할아버지는 입석마을이 고향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향마을이 고향이다. 현재 행정구역상 입석마을에 속하는 지향마을은 과거에 36가구 가량 살던 큰 마을이었다.

지향에 살던 토박이들은 거의 다 나가고 이제는 몇 집 없어요. 저 태어났을 때는 지향마을이었는데 커가면서 입석마을이 됐어요. 입석마을이 된지도 오래됐죠. 어릴 때랑 마을 풍경도 많이 달라졌어요. 그때는 길도 없고 차도 없었어요.”


한지로 유명했던 마을에서 한지기술자로 일했던 김길중 할아버지. 열심히 살아 자식 여섯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마을은 예부터 한지로 유명했다. 할아버지 집 근처에 한지공장이 크게 있었는데 지향마을은 물론 입석마을, 학동마을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사람들이 서울에 한지를 팔러 갈 때는 등짐에 한지를 짊어지고 밥을 끓여 먹을 단지 밥그릇을 챙겨서 갔다 왔어요. 서울을 갔다 오면 한 보름 걸렸죠. 먹고 잘 때를 빼고는 계속해서 걸은거에요.”


당시 한지공장에는 닥나무를 삶는 굉장히 큰 솥이 있었다. 크고 두꺼워 총을 쏴도 뚫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길중 할아버지는 그 솥을 형무소로 가져갔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사람들 밥 끓이는 용도로 가져간거죠. 얼마나 컸으면 그랬겠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이곳의 한지는 유독 색이 좋았다. 길중 할아버지의 표현에 따르면 유리창처럼 깨끗하고 맑은 빛깔의 종이였다.



물이 좋아서 그렇대요. ‘서출동류수라고 서쪽에서 동으로 흐르는 물이 흔치 않은데 이곳 물이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위에서 구정물이 내려와도 물색이 좋았어요. 전주, 서울 어느 지역을 가도 우리 마을 종이가 최고급 대우를 받았죠. 나라에서도 우리 한지를 사갔어요.”


할아버지는 스물다섯에 같은 마을에 살던 여성과 결혼했다. 결혼 후 아버지와 형님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서른 때 분가를 했다. 그때 지은 집이 현재 옆집인 김유옥씨가 오가는 흙집이다.


그때 집을 같이 지었던 목수님은 돌아가셨어요. 집 짓는데 한 달 정도 걸렸나. 아내하고 제가 손발이 잘 맞거든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집을 지었어요. 그때는 한창 한지 일 하면서 돈도 잘 벌 때라서 잠도 안 왔어요. 3, 4시간만 자고도 일했죠.”


돈은 한참 잘 벌었지만 할아버지는 네 번 정도 사기도 당하며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땐 돈을 쓰는 게 어려웠지 버는 건 쉬웠어요. 하지만 제가 배운 게 없다보니 귀가 어려요. 제 단점이에요.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의심하지 않다보니 살림을 네 번 정도 엎었어요. 아내한테 미안했죠. 여보, 내가 더 벌게요. 걱정하지 마소. 몸만 건강합시다. 이렇게 이야기했죠.”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더 열심히 살았다. 표고버섯 재배도 하고 곳감 농사도 지었다. 그렇게 자식 여섯을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우리 안식구가 차도 없을 때 학교 다니며 자취하는 아이들 밥 먹이려고 토요일이면 전주를 나갔어요. 일주일치 반찬을 해서 그걸 짊어지고 갔죠. 그렇게 고생해서 자식들도 대학교까지 다 나오고, 지금은 다 부모에게 든든히 잘해요. 매주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와요.”


이제는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다는 길중 할아버지. 짧은 이야기로는 담지 못할 자신의 인생을 슬며시 떠올려본다.


할아버지 집에 온지 얼마 안된 강아지, 아직 이름도 없다


저는 제 인생에 대해 만족해요. 나는 한다면 기어코 하는 사람이거든요. 손주가 11명인데 이놈들이 오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꼭 안아요. 전화도 자주하고요. 사랑을 주면 그것도 다 돌아오더라고요.”


할아버지에게 아내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없는지 여쭈었다.

여보, 내가 속 썩인 거 미안해요. 당신 몸만 건강하면 좋겠어요. 건강이 제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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