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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마을의 새해] 미소가 고운 정화신 할머니2020-01-09

[기동마을의 새해] 미소가 고운 정화신 할머니

- 정화신 어르신이 대문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담장에 '어서오십시요' 문구가 눈길을 끈다.


힘들었던 시절만큼 이젠 웃고 싶네

 

입 덜겠다고 열일곱에 시집와

나물캐고 노점에 민박까지

사별후 6남매 억척스레 키워내

 

어디, 나 살았던 이야기 좀 한번 들어볼텨?” 정화신(82) 할머니는 집 구경도, 이야기도 해주겠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는 화신 할머니 집은 대문부터 바깥벽까지 온통 꽃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한겨울인데도 아직 봄 같다.

할머니는 열일곱이 되던 해, 금산군 진산면에서 기동마을로 시집 왔다. 집안에 식구가 점점 많아진 탓에 입하나 덜겠다고 하며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때는 도망갈 줄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어. 가기 싫어서 사흘을 굶었는데도 부모님이 그냥 보내드라고. 그래서 왔지.”



시집을 왔어도 생활고에 시달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시부모님과 어린 시누이들, 오히려 식구들이 늘었고 낯선 곳에서 홀로 고달픈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섣달에 시집 와서 농사를 했어. 수확을 하니까 쌀이 좀 나오대. 그래서 쌀밥 좀 먹겠거니 했더니만 빚을 갚고 나니까 없잖아? 농사지어도 빚 갚느라 다 썼어. 그러면 또 빌려야 되고, 또 갚아야 되고 그랬지.”

할머니는 하던 말을 멈추고 먹을 것이라도 좀 줄걸 그랬네 하며 급히 가시더니 두 손 가득 귤을 내왔다.

힘들 때는 엄청 힘들었어. 남편은 제대로 집에 뭐 가져다주지도 않고 돈만 썼지. 그래도 그냥 살았는데 갑자기 나이 오십 먹더니 먼저 떠났어. 아직 밑으로 6남매가 있는데 그랬으니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

시어머니의 구박과 어린 시누이의 심술어린 장난도 그저 업이려니 하고 살아왔는데 남편이 쉰 살 되던 해 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딸 둘에 아들 넷을 혼자 힘으로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스스로 억척스러운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다른 집 허드렛일은 물론이고 어린 아이를 업고 나물하러 산을 올랐다. 식당일부터 농사, 노점 장사, 민박집까지 돈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다 해왔다. 그렇게 빚을 다 갚았다.

풀매고와서 마당에 보리를 말려놓는데 그대로 울다가 잠이 들었어. 근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니까 보리가 다 떠내려갔잖아. 그래도 어떡혀. 주워서 다시 말렸지. 내가 우리 애들한테는 참 미안하지. 뒷바라지를 잘 못해줬으니까. 그래도 삐뚤어지지 않고 큰 게 나는 참 자랑이야.”


- 할머니의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앨범


- 방바닥에는 잘게 썬 무를 말리고 있다.


너무 고생하고 사는 이야기만 했다며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학교 갈 형편이 안 되었던 할머니는 만약에 글을 배웠다면 한국의 정치를 바로 세우지 않았을까하며 크게 웃었다.

배우고 싶은 건 말도 못해. 너무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 그전에 양학당(서당)이라고 있었는데 일하느라 못 갔어. 열두 살 먹었을 때인가 윗집 사는 애는 부잣집이라 학교를 다녔는디 재순이라는 내 친구랑 둘이서 갸한테 가서 하루저녁에는 이름을, 하루저녁에는 숫자를 배웠어. 그냥 공부하는 게 좋아서 10, 1000번도 더 썼어.”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친구를 따라 무작정 학교에 따라갔다. 출석을 부를 때 몰래 따라 온 것이 들켜 선생님께 혼이 났음에도 친구의 도움으로 그날 하루만큼은 책상에 앉아 친구처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고생한 날을 생각하면 눈물부터 고이는 할머니. 힘들고 지칠 땐 혼자 기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많이 웃고, 어떤 어려움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힘들었던 시절만큼 웃고 싶다는 할머니. 그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이번 겨울에 눈이 내릴 새가 없었나보다.

앞만 보고 한 평생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너무 서글퍼. 내 청춘 다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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