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진상품 고종시의 고장2019-11-13

[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진상품 고종시의 고장


 

울긋불긋 감, 미롭게 물들어가네

 

집집마다 깎은 감 주렁주렁

한국전쟁 이후부터 면소재지 돼

 

동상면은 유독 가을이 아름답다. 그리고 이 풍경화에 빠질 수 없는 게 감나무가 아닐까. 동상의 산과 들 어디에나 감나무는 있고 그 나무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계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동상면 신월리 거인(巨人)마을에도 가을이 왔다. 떠난 이도 남은 이도 백발이 되어가지만 가을은 한결같았다. 늘 그렇듯 부드러운 볕이 마을을 감싸고 사람들은 묵묵히 일을 한다.

 

햇살이 따사로운 계절

최진남(63) 어르신 마당에는 깨가 널어져 있고 손수 깎은 감이 매달려 있다. 그리고 집 담장에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해던가 학생들이 와서 벽화를 그렸어요. 담장이 예뻐지니 집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 좋죠. 저는 이 동네서 태어나서 다른 지역서 살다 20여 년 전에 다시 고향으로 왔어요. 우리 동네는 빈집이 많아요. 외지 사람도 없고. 공기 하나는 좋죠.”




아내 홍경애(57)씨는 햇살을 쬐며 마당에서 쪽파를 다듬고 있었다. 그늘에서 하시지, 하니 따뜻한 햇살이 좋다며 움직이질 않는다. 경애 씨는 우리는 농사를 많이 짓진 않지만 먹고 사는 건 다 한다. 콩하고 깨, 쪽파도 하고. 차가 없으니까 로컬푸드는 못 내고 봄 되면 전주 모래내시장에 871번 버스타고 나가서 조금씩 판다고 말했다.

거인마을의 최고령 어르신이신 강순희(95)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산다. 고양이 민트도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말씀도 잘 하시고 기억력도 좋으시다.

내가 열일곱에 시집왔어. 시방 구십다섯이야. 이 마을서 60년 넘게 살고 있지. 아버지가 기집애라고 공부 안 시키고 산속으로 시집보낸 거야. 고향이 삼례인데 가마타고 버스타고 다시 고산면에서 가마타고 여까지 왔어. 요새는 날이 좋아서 이렇게 밖을 자주 봐.”

순희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밭을 가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이 가을날과 퍽 잘 어울린다. 낯선 객에게 내어준 오렌지 주스도 시원하고, 참 달다.

 

청년보부상 등장에 마을이 들썩

지난 금요일, 거인마을 경로당이 왁자지껄하다. 일이 많은 요즘 같으면 경로당이 텅텅 비어있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일주일에 한 차례 생필품을 실은 청년보부상 차가 오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차가 올 시간을 맞춰 경로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생필품을 판매하는 청년보부상 차량이 들어오는 날이면 경로당 앞은 분주하다.


완주공공급식지원센터가 운영하는 청년보부상은 로컬푸드와 생필품을 량에 싣고 마을을 순회하며 판매하는 이동 마켓이다. 손주 뻘 되는 청년들이 물건을 가지고 오는데 라면, 장류, 빨래비누 등 먹거리부터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이 차에 가득이다. 한분이(83) 할머니는 이날 간장, 찹쌀가루, 설탕을 샀고, 윤철순(72) 할머니는 짬뽕라면을 샀다. 철순 할머니는 이 동네는 닭도리탕 같은 거 파는 데만 있지 음식점이 없다. 짬뽕이 먹고 싶어서 샀다고 말했다.

김연순(82) 할머니는 무거운 거 안 들고 다니고 여기서 사니까 참 좋다. 다른 데서 사면 혹시나 다음부터 안 올까봐서 일부러 여기서 산다고 웃었다.

보부상한테 필요한 살림살이를 산 어르신들은 이내 경로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정임(65) 어르신이 본인이 농사지은 고구마를 삶아낸다. 김이 폴폴. 고구마 단 냄새가 풀풀.




호박고구마 잔챙이가 있어 삶은 것인데 동네 어른들보다도 내가 더 잘 먹었어요.(웃음) 우리 마을은 겨울에도 맨날 밥을 함께 먹는데 요새는 일할 철이라 모이기가 쉽지 않아요. 오늘은 보부상 오는 날이니까 그 핑계로 모였네요.”

간만에 이웃들이 모이니 옛날이야기도 스르륵 나온다. 진남 어르신은 옛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고산으로 장을 많이 다녔다. 마재재를 넘어 나룻배 타고는 대아리로 넘어가야 했다. 과거에는 마을서 복조리를 많이 만들었다. 농토가 없어서 농사를 많이 안 지으니까 복조리 팔아 먹고 살았다고 말했다.

 

감 따고 깎고 말리며 가을을 지내네

동상면 감은 씨 없는 고종시로 과거부터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다른 마을과 달리 대다수의 감나무가 산에 있다.

남병관(56) 이장 내외도 오전 7시부터 산에서 감을 따고 있었다. 그는 우리 감나무도 산 중턱에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전 시대였던 것 같은데, 당시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산에 감나무 접을 붙이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감나무가 산에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 권오경(53)씨는 전지작업 중이었다. 오경 씨는 농촌은 늘 바쁘지만 10, 11월도 정신없이 바쁘다. 10월에는 감을 따고 11월에는 감을 깎고, 12월에는 말리고 판매한다. 감 따는 것도 지금 2주째 하고 있다. 오늘도 캄캄해질 때까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종시의 마을답게 가을의 거인마을은 감을 깎느라 분주하다.


을에서 감농사를 크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집집마다 감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이길례(80) 할머니도 마당에 앉아 감을 깎고 있었다.

지금 곶감 맹그러. 이것도 다 때가 있어서 너무 일찍 깎으면 안 돼. 마르면 냉장고에 넣어야 해. 요즘 남의 집 감꼭지 따주는 일 하고 있어. 뚜껑에 구멍이 있으면 못 팔아. 그거 버리면 아깐 게 대야로 하나 가져왔어. 그걸로 곶감 해먹을라고.”

건너편 집에 사는 한분이(83) 할머니도 마당으로 나왔다. 이웃이 깎고 있는 감 중에도 무른 감을 골라 객들에게 건넨다.

좀 떫으려나? 잡숴봐. 쪼개 물렁거리는 게 맛있어. 우리 동상 감은 씨가 없어서 더 맛나. 수십 년을 먹었는데도 질리지가 않아. 이거 하나 더 줄까? 더 먹어봐. 하하하.”

 

[박스] 거인(巨人)마을은

거인마을은 마을에서 어질고 큰 사람이 많이 나오길 염원하며 지어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인근에 묵계마을과 먹바위, 필동, 벼루소 등 선비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지역들이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이 예부터 인재들을 소중히 여겨온 것을 알 수 있다.



거인마을은 과거에는 70~80호가 살던 큰 마을이었다. 현재는 40여 가구가 거주한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신월리가 동상 면소재지였지만 전쟁 이후부터 거인마을이 면소재지가 됐다. 면소재지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이 많고 주민 수도 많아 당시 마을에 주막만 5~6개가량 있었다.

매년 10월이면 동상면 사람들이 거인마을의 감나무 아래에서 무탈한 감농사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큰 사람 난다 거인마을] 한분이 할머니
다음글
[나누면 행복] 공유공간 ‘끄트머리’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