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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에 옥포마을] 비가 오고 해가 뜨고2019-10-14

[가을날에 옥포마을]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좋은 날이다 좋은 날, 일하기 좋은 날

 

뭍에서 물로, 다시 뭍으로

저수지와 함께 흘러온 삶이

가을볕에 천천히 익어가

 

가을비가 내린다. 부슬부슬.

화산면 종리마을을 지나 경천저수지를 안고 한참을 들어가니 한 마을이 보인다. 비가 와서인지 유독 고요하다. 마을 이름은 구슬옥에 개포 자를 써 옥포(玉浦). 예부터 어부가 있는 마을이다. 지금은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한 두 가구 정도만 가끔 물고기를 잡는다.

 

어부가 있는 옥포(玉浦)마을


오늘 비가 제법 오네. 지금은 일기예보가 있으니까 좋아졌어. 그 전엔 라디오서나 가끔 듣지, 밭일하다 비 맞고 그랬어.”

여정화(78) 할머니는 지붕이 있는 마당에서 마늘을 까고 있었다. 직접 농사지은 마늘이다. 남편은 얼마 전 돌아가시고 이 집에서 혼자 산다. 할머니의 남편도 어부였는데 집에는 물고기를 잡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처음 본 어린 객이 그 사진을 보고 싶다니 선뜻 집안으로 데려간다.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보여 달라는데 안 보여줄 수 있나라며 정이 가득 담긴 말씀을 건네면서.

사진 속 젊은 남편은 자욱한 안개 속에서 나무배를 타고 그물을 치고 있다.

우리 아저씨가 저때 67세였나. 그 나이까지 물고기 잡고 그러셨어. 저땐 먹고 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심심하면 잡은 거지. 누가 사진을 저렇게 멋있게 찍어줘서 걸어놨어.”





붉게 익어가는 감나무에서 마당에 널어놓은 대추에서 결명자를 터는 노파의 손길에서 옥포마을의 가을이 느껴진다.


시간이 벌써 점심이다. 할머니가 냉장고를 벌컥벌컥 여신다. 배고플건디 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시럽네 하시며 할머니는 내 두 손에 음료수 3병을 챙겨주신다.

화산면 운제리 옥포마을은 1953년 경천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원 옥포가 수몰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주민들은 수몰된 지역을 옥포뜰이라 부른다. 현재는 19세대가 사는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과거 마을에 살던 30여 가구 중 3분의 1 정도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았는데 그중 한 명이 김두연(87) 할아버지이다.

"소나무를 베어서 목수들 데려다가 배를 짰었어. 5명도 탈 수 있는 배였는데 위험하니까 마을 사람이랑 나랑 둘이서만 탔어. 저녁에 그물을 쳐놓고 새벽에 거두는 거야. 그럼 물고기가 잡히는 거지. 겨울에는 한 달 이상 저수지가 얼어서 거기서 썰매도 타고 걸어도 다니고 그랬어. 지금은 날이 따순가 잘 안 얼더라고.”

과거에는 붕어가 가장 많이 잡혔다. 메기, 쏘가리, 잉어도 있었고 새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많지 않다. 이동례(83) 할머니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외국에서 배스 종자를 들여왔어. 그놈이 우리나라 물고기 씨를 말린 거야. 저수지에 물고기가 있긴 있어도 거의 없으니까 이제는 잡는 사람도 별로 없어라고 말했다.

 

가을은 일하기 좋은 계절이야



다시 찾은 옥포마을. 다행이 날이 맑았다. 낮 기온 22도에 햇살이 강하지 않아 선선했다. 경천저수지는 외지에서도 낚시를 하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임종현(32)씨도 대전에서 낚시를 하러 옥포마을을 찾았다.

대략 열두시에 와서 여섯, 일곱 시까지 낚시하다 가요. 원래 여기서 큰 고기가 잘 나오는데 요즘은 잘 안 나와요. 경천저수지는 2년 전부터 오기 시작했는데 올해만 열댓 번 왔어요. 낚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기가 유명해요. 공기 좋은 데서 낚시하면 이렇게 경치도 보고 기분이 좋아져요.”




종현 씨가 낚시를 하는 그 시각, 주민들은 일을 하느라 분주하다. 김명자(50)씨는 하우스 안에서 양파를 손질하고 있었다. 지난 5, 6월에 수확한 양파를 손질해 판매하기 위해서다. 무른 양파는 골라내고 바람을 이용해 껍질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크기별로도 분류하고 껍질이 상한 양파도 따로 골라내요. 오늘 아침 9시 못 돼서 나왔는데 저거 다 해야 집에 가요. 올해 13마지기 정도 양파 농사를 지었는데 양파 값이 너무 싸네요.”

누군가의 소쿠리에서 대추가 말라간다. 어떤 집은 마당에서 빨간 고추와 감을 널어놨다. 한 할머니는 마당에 너른 결명자와 깨를 털고 있다. 탁탁. 꼬순 냄새가 난다. 가을 냄새다.

배추에 약을 주고 있던 유옥순(73) 할머니는 이 계절이 마음에 든다.

눈 뜨면 밥 먹고 일하는 게 생활이야. 어제는 비가 와서 일을 못했어. 그래서 지금 더 바쁜 거야. 배추 약 주고 나면 뭐하냐고? 몰라. 생기면 해야지. 일은 만들어서 하는 거야. 요새는 해가 안 뜨면 일하기 좋아. 참말로 일하기 좋은 계절이네.”

 

 

[박스] 운제리 옥포마을은


 


= 화산면 100년사 화산별곡에 따르면 운제리 옥포마을은 수몰 이전에는 300호가 살던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과거 운제현의 핵심 거점이었다. 조선시대 역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옥포 주민들은 한때 경천저수지를 한국은행이라고 불렀다. 아무리 돈이 떨어져도 그물만 갔다 넣으면 몇 만원씩 돈이 나온다고 해서 그렇다. 임희백 전 이장은 가장 재수가 좋았던 기억으로 하루에 100만원까지 벌었다고 한다. 이런 날은 가뭄에 콩 나는 날이다.

 

= 동아일보 1973515일자에 따르면

일제 때인 193512월 거대한 경천저수지가 완공되면서 마을의 논밭은 대부분 물속에 잠겨버리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에서 로 옮아갔다. ‘어부가 밭 갈기도 어렵겠지만 쟁기 잡던 손으로 노 저어 가기가 더 어려웠다고 김연익 노인(73)은 직업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던 30여 년 전의 어려웠던 때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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