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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는 길이 하나 설경마을] 겨울엔 눈 구경 봄에는 꽃구경2019-04-01

[오가는 길이 하나 설경마을] 겨울엔 눈 구경 봄에는 꽃구경

 

금바위산 등에 지고

겨울엔 눈 구경 봄에는 꽃구경

 

낮 기온이 18도라고 했다. 걸으면 조금씩 땀이 나는걸 보니, 겨울이 떠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용진읍 상삼리 설경(雪景)마을은 산 하나를 두고 소양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겨울철 눈이 내리면 마을 뒷산인 금바위산 풍경이 아름답다고 해 설경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의 뒤는 산으로 막혀있어 마을을 오가는 길도 하나. 이 조용한 마을엔 20여 가구가 산다.

 

눈 내린 풍경 아름다워 설경마을

마을 초입에서 쥐똥나무를 캐러가는 김종국(67)씨를 만났다. 울타리용 나무인 쥐똥나무를 임시로 딴 곳에 심었다 팔 요량이다. 그는 바지런하다. 마을을 거닐다 일하는 누군가가 있어 알은척을 해보면 또 김씨다.

요새는 날씨가 좀 풀려서 일거리가 많아요. 예전에 이 동네가 나무농사를 많이 지었어요. 지금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못해요. 일을 안 하면 몸이 근질근질해요. 좀이 쑤신다고 하죠?”

털털털. 김종국씨가 경운기를 타고 떠난다. 소리가 경쾌하다. 봄이 왔구나.





설경마을에도 봄꽃이 피기 시작했다. 곳곳에 개나리가 보인다.



용진로컬푸드직매장과 인접한 용진의 마을들은 로컬푸드에 상품을 출하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설경마을도 세가구가 로컬푸드에 물건을 내놓는다. 박은순(63)씨도 그 중 한명. 그는 마당에 앉아 파를 다듬고 있었다.

요새는 로컬(푸드)에 풋마늘, 파 정도만 내놔요. 가지나 당근 같은 건 아직 땅속에 있어요. 로컬을 다니니까 겨울에도 못 놀아요. 농사도 깨끗하게 해야 하니 힘들어. 그래도 못 쉬고 힘들어도 좋아요. 재미나거든.”


홍의영(61)씨는 집 앞에 주차된 차 먼지를 털고 있었다. 막 트랙터로 일을 하고 온 참이다. 봄볕이 생각보다 뜨거웠지만 모자를 쓰지 않았다. 어차피 까만 피부라 모자는 뭣 하러 쓰냐며 무심하게 말한다. 이날은 미세먼지 나쁨 표시가 뜬 날. 홍씨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콤바인, 트랙터를 몰 때 먼지가 한 가득이라 어차피 자신 같은 사람은 먼지에 면역이 됐다나.

지금 엄청 바쁠 때죠. 오늘 새벽 6시부터 일했어요. 로컬푸드 다녀오잖아요. 앞으로 더 바빠지겠죠. 겨울이 좋아요. 봄여름가을에 실컷 벌어서 그때 다 까먹는 거죠(웃음). 오후에는 농사 짓는 친구 로타리 치는데 도와주러 가려고요.”

날이 풀리면서 농부들은 논과 밭으로 나간다.


날 풀리니 다들 논으로 밭으로

경로회관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 멀리 밭에 앉아 비닐을 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전주에서 온 신용호(73) 어르신이다. 어르신은 퇴직 후 설경마을에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전문 농사꾼은 아니지만 어느덧 농사를 시작한지 9년차가 됐다.

보통 아침 아홉시쯤에 와서 일해. 지금은 참깨 심을 자리에 비닐 씌우고 있지. 혼자서 밭을 일구긴 하지만 틈틈이 하니까 많이 힘들진 않아. 집에서 놀면 뭐해. 술 먹고 고스톱 치는 것밖에 더 하나. 차라리 이렇게 일하고 수확물도 얻는 게 좋지. 자식들한테 주는 재미가 있어.”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들뜨는 계절. 그게 봄인가 보다.



신용호 어르신이 일을 하던 중 잠시 쉬고 있다. 가을에 수확하는 작물들은 자식들에게 줄 생각이다.


설경마을 사람들은 친절하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도 크지 않다. 밭에서 완두콩을 심고 있던 이종학(85) 할아버지는 유독 사람을 반가워했다. 어디서 왔어? 차 한 잔 줄까? 우리 집으로 가.

허리가 낫처럼 굽은 종학 할아버지는 바닥이 닳은 낡은 지팡이를 옆에 두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간다. 눈가와 입가에는 기분 좋은 웃음 주름이 선명했다. 앵두나무를 앞에 두고 콧노래도 불러본다. 오랜만에 동네를 찾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종학 할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한다. 마을을 찾은 낯선 사람들을 보고 콧노래를 부르신다.


나는 사람이 오면 좋아. 이 늙은이가 말이 좀 많아서 미안혀. 내가 시간 뺏었지? 자슥들한테 늘 하는 소리가 있어. 돈 아껴 쓰고 친구 잘 사귀라고. 그리고 부모한테 잘 해야 복이 온다고.”

눈이 내리면 아름다워 설경이라 불린다는 마을. 홍중선(74)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봄은 봄대로 예쁘다.

설경이 예쁘다 해서 설경마을이긴 하지만 여긴 봄에도 예쁜 곳이야. 예전에 야산에다가 벚꽃나무랑 복숭아나무를 심었거든. 그래서 봄 되면 꽃이 펴서 마을이 환해지지. 예뻐.”


4월 봄바람이 좀 더 살랑대면 설경마을은 꽃대궐이겠지. 벌써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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