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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 놀자판, 먹자판이 진짜 잔치다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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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 잔치는 끝났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나절까지 온종일 잘 놀았다. 온몸이 노곤하지만 기분 좋은 피로감이랄까. 원고마감일이 겹치는 바람에 뒤풀이를 못하는 불만이 없지 않다만.

 

사실 풍년기원 단오맞이 한마당이라는 이름이 오늘 잔치의 모든 걸 말해준다. 오늘 잔치에서 고갱이가 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모내기 체험’. 논에는 백 명 남짓한 아이와 부모가 못줄 앞에 나란히 늘어섰다. 두 패로 나뉘어 논배미 양쪽 끝에서부터 가운데 쪽으로 모를 심어온다. 예닐곱 살 아이들까지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앙증맞은 손으로 모를 제법 꽂아 넣는다. 울긋불긋 피어난 꽃송이처럼 논배미는 온통 모를 꽂거나, 진흙 장난을 하거나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왁자지껄했다. 5백 평 논배미를 심는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내가 짓는 논에서 행사가 펼쳐졌다. 잔치판인 동네 초등학교 바로 앞 논을 짓다보니 올해로 이태 째 논배미를 내놓게 됐다. 우리 모내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번외경기비슷하게 다른 논보다 일찍 논을 만들고, 써레질을 했다.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아직 덜 자란 모판을 떼어 날라왔다

 

기계 모내기가 일반화된 요즘, 손모내기는 현실성이 거의 없는 짓이다. 그러나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농사를 두루 체험하기에는 더 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일거리다. 맨살에 와 닿는 논바닥의 낯선 느낌, 끊임없이 허리를 굽혔다 펴는 육체노동, 못줄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협동심, 그 속에서 느끼는 연대의식인 두레정신, ‘내 아이를 챙겨 가면서 함께 모를 심는 엄마, 아빠들의 살아 있는 교육정신까지.

 

더구나 이번에는 전통 모내기를 되살려보자는 세시풍속보존회의 정성까지 더해졌다. 일주일 전부터 모내기 노동요를 익히고, 예행연습까지 하는 열의를 보여줬다. 통제하기 힘든 많은 인원과 모를 꽂기에 바쁜 아이들한테는 무리였는지, 소리와 함께 하는 전통 모내기는 아쉽게 시연으로 그쳤다.

 

그래도 모내기는 잘 끝났다. 새참으로 마련한 국수를 후룩후룩 들이켜는 손길들이 바쁘다. 누구는 감식초를 가져오고, 누구는 딸기 셰이크를 내고, 막걸리에 곁들일 파전을 부친다. 인절미는 참가자들이 손수 떡메를 쳐서 콩고물을 묻혔다.

 

예보에 없이 빗낱이 떨어지면서 땡볕을 피하게 됐지만 이어진 단오장사 씨름대회와 대동놀이는 보슬비를 맞으며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씨름대회는 왕년에 이 고장 씨름판을 주름잡던 어르신이 경기운영을 자문하고, 심판을 맡아 흐뭇하고 뜻이 깊었다. 수백 명이 함께 한 강강술래는 그것만으로 장관이었고, 신명을 자아냈다.

 

이 고장의 단오잔치는 올해로 13년째다. 처음 출발은 친환경 쌀 작목반의 도시소비자 초청행사에서 비롯됐다. 행사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 산 초등학교 쪽의 제안으로 공동주최로 되었다가 언제부턴가 학교가 떠맡으면서 아이들의 전통문화 체험행사로 치러져왔다. 이에 따라 지역공동체의 잔치판이라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는 논의가 이어졌고, 올해 4월 지역주민 중심의 추진위를 꾸려 행사를 준비해왔던 것.

 

잔치판이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려는, 그래서 보이기 위한 축제는 상업성 짙은 행사일 뿐이다. 그럴 듯하게 보여야 하니 모양새를 내야하고, 그러자면 돈이 든다. 여기저기, 특히 행정기관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그건 잔치가 아니다. 소박하더라도 스스로 놀자판, 먹자판을 만들어 즐기는 것이 참된 잔치마당이라는 얘기다. 비 갠 뒤의 저녁놀은 곱기도 하다.

 

/차남호(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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