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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행보(5) 자기소개自己紹介2016-06-08

완주행보(5) 자기소개自己紹介

자기소개自己紹介

바닥 씨가 완주로 온 까닭

 

농부는 점점 바빠진다. 나는 여전하다. 시골에 내려와 산다고 하면 농사는 안 지어도 마을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렁더울렁 지낼 거라 넘겨짚는 도시 사람이 있는데 나는 사무실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고 큰길가 아파트에 산다.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고 공휴일이 일요일과 겹치면 아쉬운 평범한 월급쟁이다. 아파트 주민답게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 분양 받은 다섯 평 밭에 모종만 심어놓고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텃밭농부도 못 된다.

 

도시 생활과 다를 게 없다고? 베란다 앞에는 논이, 현관문 앞에는 보리밭이 보이고 아침이면 새소리가 들린다. 요즘은 해질녘부터 밤새 개구리가 운다. 걷거나 자전거로 강둑을 따라 출퇴근하고 야근은 손에 꼽는다. 많은 날들이 여유롭고 무난하다. 축복받은 풍경 안에 산다. 그래서 어떠냐고? 너무 무탈해서 무료할 때도 있다고 대답하련다. 가까운 곳에 어울릴 친구가 없고, 퇴근 후 놀러갈 데도 없다. 있다 해도 차가 없어서 다니기 어렵다. 그렇다면 나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걸까?

 

마냥 좋고 행복하던 시간이 지나니 외롭고 심심해서 지금은 그만그만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조용한 생활은 평화롭고 아늑한 한편 서럽고 답답해하기도 하니까. 마음은 흐르고 변하는 게 당연하니 이유를 찾거나 해결하려고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을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완주행보는 새로운 삶터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즐겁거나 놀랍거나 특별한 것들에 더해 오르락내리락 하는 마음상태까지 포함해 솔직하고 일상적인 오늘도 기록하려고 한다. 시골살이를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성공과 실패 사례처럼 현재진행형인 고군분투를 골고루 들려줄 수 있도록.

 

사실 나는 성급한 사람이다. 이전에도 직장생활을 잘 견디지 못해 짧게는 몇 달, 겨우겨우 버텨서 1, 길어야 2년 정도 다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곤 했다. 이직과 퇴직, 구직과 사직을 반복하느라 이력서를 지저분하게 만들면서 언제나 신입사원.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 작정하고 백수로 살기도 했다. 돈도 기술도 없었지만 급한 성격 덕에 몸과 마음을 바삐 움직이다 보면 기적처럼 좋은 기회들을 만났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곳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벌어놓은 돈을 최대한 아껴썼고 중간중간 감당할 수 있는 돈벌이를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먹고 자면서 청소하고, 바닷가에서 커피를 팔았다. 길에서 만난 인연으로 행사장에 초대되어 커피도 팔고 노래도 했다. 아이도 보고, 고양이도, 자기소개서도, 빈집도 봐줬다. 500원짜리 책도 만들어 팔았다. 일거리를 줄 수 없으면 그냥 후원금이라도 달라고 해서 밑도 끝도 없이 돈도 받았다. 월급쟁이나 자영업자가 아니더라도 대안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4년여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한 직장에서 그만큼 있어본 적이 없으니 백수를 가장 오래한 셈인데 아무리 적성에 맞는다 해도 돈을 벌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나에겐 세 가지가 필요했다. 지속적인 수입이나 경제력, 재미를 느끼는 일, 함께 놀 친구. ‘비규정직 대안직업생활인으로 각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재미있게 살 수는 있었지만 돈에 대한 불안을 해결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500만원을 다 쓸 때까지만 놀 생각이었다. 3년차 때 적금을 깨 300만원을 더 썼다. 4년차가 되자 더 이상 백수로 살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통장잔고가 줄어가는 걸 보면서 전전긍긍 돈걱정을 하고 있을 때 완주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돈을 벌 수 있고, 친구가 있고, 처음하는 시골살이에 호기심이 생겼으니 생활에 필요한 세 가지 조건도 충족되는 편이었다. 다행히도 생각보다 오래 그럭저럭 다니고 있다.

연고도 없는 곳에 좋아하는 친구 한 명만 보고 오겠다는 결정은 성급하게 내렸으나 이 생활을 정리하겠다는 결정은 전처럼 성급하게 내리기 어렵다. 집을 구해 냉장고와 세탁기를 들이고,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장을 보고 살림을 오롯이 챙기며 살게 되니 전혀 몰랐던 생활인의 세계가 보인다. 보통의 하루를 위해 묵직한 매일을, 먹먹한 매순간을 지나야 한다는 것. 독립생활자로 살면서 늦게나마 철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도 독립생활자로 살았더라면 완주살이와 비교하기가 더 쉬웠을 텐데 아쉽고, 처음 완주에 살기시작할 때의 기쁨과 설렘은 건너뛰고 그저그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해서 아쉽다. 아쉬우니까 그만큼 더 생생하게 느끼고 깊게 생각하고 성실하게 기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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