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품앗이칼럼 · 2026.07.13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꺼지지 않는 불씨를 위하여

(31) 방의경·양희은의 「불나무」

지역과 삶, 문화와 일상에 대한 다양한 필자의 생각을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칼럼 공간입니다.

등록 2026.07.13 17:10 조회 5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19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에는 한 편의 시에 가까운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방의경이 만들고 양희은이 깊은 울림으로 불러 생명력을 얻은 「불나무」가 있다. 거듭 들어도 가사 내용이 잘 잡히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서 있는 불나무, 밤바람, 불꽃송이, 꺼진 불마음, 어둠이 내리는 산길….

노래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상징을 던져 놓고 듣는 이가 자신의 삶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게 만든다. 그래서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불나무」를 만든 방의경은 1970년대 이화여대에 재학하며 활동했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의 노래에는 당시 포크 음악이 지녔던 문학적 감수성과 시대의 고독이 깊이 배어 있다. 「불나무」 역시 유행을 겨냥한 대중가요가 아니라 시인이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 빚어낸 노래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나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이 낯선 상징 하나가 노래 전체를 끌고 간다.

노래는 산꼭대기에 홀로 선 불나무를 보여준다. "산꼭대기 세워진 이 불나무를/ 밤바람이 찾아와 앗아가려고/ 타지도 못한 덩어리를 덮어버리네." 산꼭대기는 높지만 외로운 자리다. 그곳에 선 불나무는 아직 활활 타오르지도 못했는데 밤바람이 덮쳐 온다.

이루어 보기도 전에 접어야 했던 꿈, 꽃피워 보지 못한 재능, 끝내 전하지 못한 사랑…. 인생에는 그렇게 타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불씨가 얼마나 많은가. 이 짧은 첫머리만으로도 노래는 삶의 안타까움을 응축해 놓는다. 그러나 이 노래의 중심은 2절에 있다.

"덩그마니 꺼져버린 불마음 위에/ 밤별들이 찾아와 말을 건네어도/ 대답 대신 울음만이 터져버리네." '불마음'이라는 말이 참 미묘하다. 무엇인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마음, 사람을 믿었던 마음, 세상을 향해 열려 있던 마음일까? 그런데 그 마음이 꺼져 버렸다.

더 애잔한 것은 밤별들이 말을 건넨다는 대목이다. 별은 희망이고 위로일 것이다. 누군가 다가와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울음만 터져 나온다. 깊은 상처 앞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설명보다 눈물이 먼저다. 반복되는 질문이 이 노래를 오래 잊지 못하게 만든다.

"오 그대는 아는가 불꽃송이여/ 무엇이 내게 죽음을 데려와 주는가를." 이 죽음은 분명 육체적인 것은 아니다. 꿈을 잃는 죽음, 감동을 잃는 죽음,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죽음. 노래는 무엇이 인간의 불꽃을 꺼뜨리는지를 묻지만 끝내 답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질문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대답을 품게 한다. 3절에 이르면 노래는 한 폭의 수묵화가 된다. "산 아래 마을에도 어둠은 찾아가고/ 나 돌아갈 산길에도 어둠은 덮이어/ 들리는 소리 따라서 나 돌아가려나." 젊은 시절에는 눈으로 길을 찾는다. 목표가 분명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눈보다 귀에 의지한다. '들리는 소리 따라서' 돌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양심과 기억, 신념의 목소리를 따라 살아간다는 뜻처럼 들린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이 노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노래를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하게 읊조린다. 그래서 더 슬프다. 울부짖지 않는데도 가슴이 저리고, 분노를 외치지 않는데도 시대의 상처가 들린다. 그의 음성은 산길을 혼자 걸어 내려오는 사람의 뒷모습처럼 오래 남는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하나씩의 불나무가 있다. 세월과 현실의 바람에 흔들리고, 때로는 거의 꺼진 듯 보일지라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작은 불꽃. 그 불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불나무」는 그냥 포크송이 아니라, 삶의 가장 깊은 밤에도 마음속 불씨 하나만은 지켜야 한다고 조용히 일깨워 주는 한 편의 서정시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이 노래가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산길을 걸어가지만 끝내 우리를 집으로 이끄는 것은 눈앞의 밝은 길이 아니라 가슴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그 작은 불빛이기 때문이다.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