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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6.06.12

고산면 자포마을 이말례 할머니 이야기

할머니의 낙원, 감나무가 있는 작은 밭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6.06.12 15:38 조회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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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둑을 끼고 감나무 몇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할머니의 작은 밭 너머에는 고산천이 흐르고 그 너머에는 안수산이 우뚝 서 있고 또 그 너머에는 6월의 하얀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감나무가 있는 작은 밭으로 향하는 이말례 할머니의 뒷모습
감나무가 있는 작은 밭으로 향하는 이말례 할머니의 뒷모습

감나무 잎사귀들이 만들어 놓은 그늘 아래 아주 작은 움막이 하나 있고 그 움막 안에는 호미와 낫, 소쿠리 같은 손때 묻은 농사 도구들이 있다. 어디서 날아와 싹을 틔웠는지는 몰라도 몇 해 전부터 저절로 자라고 있는 금낭화 핀 옆자리가 이말례(84세) 할머니의 자리다.

그 자리에 앉아 집에서 챙겨온 베지밀도 마시고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쐬고 오고 가는 동네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눈다. 상추 대궁이 벌써 올라왔고만, 씨가 잘 여물었나, 날이 왜 이렇게 가물다냐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이 밭에 농사지은 것이 한 십 년 되었나 봐. 우리 둘째 아들이 엄마 심심하니까 농사 지으라고 땅을 샀어. 한 오백 평 되나 봐. 저기 매실나무 있는 데까지 우리 땅인데, 저기 양파 심은 곳은 땅 놀리기 뭐해서 양파 심으라고 땅 빌려주고 나는 여기 감나무 둘레 밭에만 농사짓지.

여기는 감나무 밑이라 뭣이 잘 안 돼. 빨강상추는 지금 씨가 영글고 있어. 이 씨는 몇 년이 되었나는 몰라. 참 오래된 씨야. 이 상추를 먹어 본 사람들이 이 씨가 어디서 났냐고 물어봤싸. 이 씨는 살라고 해도 없어. 여러 사람이 부탁을 했싸.

이 씨는 어디서 났냐면 나 젊어서 저그 새뺑이라고 지금은 율소리에 있는 친구 밭에 가서 상추를 뜯어다가 팔았더니 맛나다고 잘 팔려. 그래서 ‘나 그 씨 열 개만 줘라’ 그랬더니 친구가 씨를 주면서 이 상추씨가 나 어려서부터 심었던 상추씨다 그러더라고.

그 친구도 나랑 동갑이니까 이 씨가 얼마나 오래되었겠어. 상추가 맛있고 대궁이 후딱 슨다고 그려. 하여튼 맛있어. 친구한테 얻은 씨를 심어서 먹고 또 씨 받아서 심고. 이제 대궁이 서긴 했는데 씨가 잘 여물랑가 어쩔랑가. 이제 올해 상추는 끝났고 내년 봄을 기다려 봐야지.

내가 파는 상추는 진짜 맛있어. 저 담배상추는 겉절이 하면 꼭 배추 겉절이 같어. 배추 같이 아삭아삭 혀.”

할머니는 새벽 5시면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 드시고 밭으로 나온다. 몸이 불편해 4~5년 전부터 타기 시작한 전동차가 할머니의 발이다. 오전 9시까지 밭일을 하다가 집에서 좀 쉬고 시장옷집에서 또래들이랑 어울려서 점심도 먹고 같이 놀다가 오후 5시면 다시 밭으로 나간다.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저녁을 드시러 집에 들어가는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편안하고 좋은 삶이다. 집에만 있으면 잠도 안 오고 여기저기 아파서 차라리 멀리 산도 보이고 바람도 쐴 수 있는 감나무 아래 작은 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더 아파. 오늘도 파 다듬다가 피곤해서 방에 누워 한소끔 자야겠다 하는데 잠도 안 오고 오히려 더 아파. 그럴 때는 일단 나와서 시장 옷집에 가서 또래들이랑 놀다가 해 질 때 되면 밭으로 가는 거지. 밭에 나오면 집에 있는 것 보다도 시원하고 좋아. 심심하지도 않고.

맛있다고 소문난 빨강상추. 대공이 올라와 씨가 여물어가고 있다.
맛있다고 소문난 빨강상추. 대공이 올라와 씨가 여물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오다가다 밭 구다보고 뭣이 잘 되었네, 어찌네 말을 붙이는 거지. 씨를 얻어 가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보니 시아버지도 많고 시어머니도 많지. 이 밭은 감나무 그늘이 져서 작물들이 잘 안 커. 그러니까 남 빌려주기 뭐해서 내가 지어 먹는 거지.

그늘진 곳에다 취 심고 상추, 아욱, 파, 도라지, 강쟁이콩(강낭콩) 같은 걸 심어. 감나무 옆에 포도나무는 아들이 심어 놓은 거야. 이 금낭화꽃은 내가 심은 것이 아니라 어디서 씨가 날라왔는가 이렇게 나더라고. 이 꽃이 산에서 나는 꽃이거든. 근데 어디서 날라와서 나 쉬는 자리에 이렇게 나네.

예쁘니까 안 뽑고 그냥 놔뒀어.”

할머니의 고향은 고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비봉면 대티(산고개). 지금은 무슨 마을로 불리는지 모르고 그저 대티라는 말만 기억난다. 어려운 살림살이였고 8살에 전쟁이 나서 피난다니고 학교 대문은 쳐다도 못 봤다. 스물둘에 고산 자포마을로 시집을 왔고 아홉 살 차이나던 남편은 할머니 이십 대 후반에 돌아가셔서 지금껏 혼자서 육남매를 키우고 살아왔다.

“큰아들이 환갑, 진갑 다 넘어갔어. 아들만 다섯, 맨 끄터리 막내딸 하나 해서 육남매 낳았지. 셋째, 넷째는 먼저 떠내려갔지. 나 8살 때 전쟁 나서 피난 다니고 뭐 학교는 쳐다도 못 봤지. 눈 뜨고 봉사여. 머스마들만 가르치고 딸내미들은 글자 가르치면 친정으로 편지했쌌고 집 나간다고 안 가르쳤디야.

아무튼 중매로 시집와서 고생 징그럽게 많이 했지. 육남매 먹여 살려야 하니까 내가 욕봤지. 고산 장날에는 장터에 나와서 장사하고 그 아닌 날에는 맨날 대가리에 이고 지고 장사 다녔어. 그때만 해도 고산은 읍내니까 더 시골로 머리에 이고 지고 팔러 다니는 거야. 화산, 비봉으로 많이 다녔어.

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드물었어. 안 해본 장사가 없어. 생선장사, 새우젓 장사, 과일장사도 하고. 그런 것을 전부 머리에 이고 촌으로 걸어 들어가서 팔았지. 지금은 참 까마득해.”

2016년 12월 고산고 다니던 손주가 고산장날에 도라지 파는 할머니를 직접 찍은 사진
2016년 12월 고산고 다니던 손주가 고산장날에 도라지 파는 할머니를 직접 찍은 사진

이말례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10년 전쯤이다. 고산고 아이들과 영화 수업하러 장날 촬영을 하던 중 한 아이가 ‘어 할머니다’ 하고 인사를 나눴던 그분이 바로 이말례 할머니다. 손주 가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할머니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호탕하게 웃어 주었다.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꼿꼿하던 할머니의 허리는 굽었지만 여전히 밭에서 기른 작물을 가지고 고산 장날에 나온다. 무려 오십 년의 세월 동안.

“요즘은 자식한테 의지하는 시대가 아니야. 옛날처럼 자식들이 무조건 부모 모시고 사는 세상이 아니야. 몸이 조금 힘들어도 나 혼자 이렇게 밭에 나와 싸드락 싸드락 거리고 사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아. 내 인생 중에 좋았던 시절은 그래도 젊을 때가 좋았지.

고생은 징그럽게 했어도 자고 나면 아침에 몸이 가뿐하고 또 신이 나게 일하러 나가고 그랬지. 머리에 이고 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닐 때 부끄러울 틈이 어디 있어. 내 몸을 움직여야 일곱 식구 먹고 사는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생선사세요~ 뭐 사세요~ 그러면서 돌아다녔어.

그러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돼. 지금은 누구 밥 해먹일 사람 없고 한갓지고 좋아. 이렇게 밭에 앉아서 휙 둘러보고 그것이 좋아. 여기 앉아 있으면 사방이 터져서 여름에도 참 시원하고 좋아.”

할머니의 작은 밭은 동네 친구들과 함께 걷는 나의 오래된 산책길에 면해 있다. 가끔은 가르마처럼 하얗고 길게 이어진 농로 위를 빨간색 전동차를 타고 조심스럽게 미끄러져오는 할머니와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감나무밭 그늘 아래 금낭화 핀 옆자리에 앉아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곳은 할머니의 작은 낙원이었다. 할머니가 아끼는 오래된 내력이 있는 빨강 상추의 대궁이 더 여물면 나도 씨앗을 몇 개쯤 얻어볼까 한다.

/글·사진=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피기 시작한 금낭화 옆에 앉아 쉬고 있는 이말례 할머니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피기 시작한 금낭화 옆에 앉아 쉬고 있는 이말례 할머니

현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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