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 아래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노래
(24) 돈 맥클린의 [빈센트 Vincent]
노래의 첫 줄 가사 “별이 빛나는 밤에”는 마치 큰 화폭 하나를 펼치는 듯합니다. 노래의 화자는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이해하려는 이입니다. “이제 나는 이해해”라는 후렴의 고백은 단정이 아니라 도달하려는 다짐입니다. 이해는 완결이 아니라 과정이며 그 과정이 리듬과 선율, 이미지와 비유를 따라 차분히 진행됩니다.
화자는 고통을 대신 증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대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제정신을 위해 얼마나 싸웠는지”를,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 했지만 그들이 듣지 못했음을” 기억해 내려 합니다. 이 기억의 어조가 노래의 윤리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전유하지 않고, 그 고통이 건네려 했던 말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방식으로 추모합니다.
가사는 명사보다 동사가 적고 설명보다 묘사가 많습니다. “파란색과 회색을 팔레트에 그려요” “나무를 스케치해요” “불꽃처럼 타오르는 꽃” “소용돌이치는 구름” 같은 구절들은 반 고흐의 붓질을 문장으로 옮긴 것입니다. 감정은 서술되지 않고 색과 질감으로 번역됩니다. 우울은 ‘파란색과 회색’으로, 격정은 ‘타오르고’ ‘소용돌이치고’ 연민은 ‘사랑의 손길’로 그려집니다.
밤하늘의 소용돌이는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황갈색 곡식”은 아를과 오베르의 밀밭을, “고통으로 지친 얼굴”은 농부와 우편배달부 그리고 자화상들에 새겨진 주름을 떠올립니다. 특히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죠”의 반복은 그림 앞에서 멈추어 서지 못했던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과 태만을 강조하고 있지만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슬픈 사실 하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화자의 절제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노랫말 중 가장 아픈 대목은 “아무도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죠.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진실했어요”일 것입니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는 역설. 이 가사에는 반 고흐의 전기적 맥락을 떠나 예술이 이 세계와 갖는 일반적인 관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해받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불가능해도 그려야만 하는 어떤 사랑. “이 세계는 그대처럼 아름다운 이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체념이 이어지지만 노래는 이 체념조차 조용히 수정합니다. 사랑의 효력은 외부의 호응이 아니라 내부의 진실에서 나온다는 것을, 곡 전체의 낮은 볼륨과 꾸밈없는 멜로디가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기타의 잔잔한 아르페지오와 절제된 현이 노래의 바닥에 흐릅니다. 리듬은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완만한 파동으로 진행됩니다. 이 파동은 반 고흐의 나선형 붓질과 대구를 이루지만 표현 방식은 정반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소용돌이의 긴장을 밀어 올린다면, 노래는 그 소용돌이를 부드럽게 눌러 앉힙니다. 선율은 과장 없이 좁은 음역을 오르내리고 후렴의 하행 진행은 이해의 감정이 고조가 아니라 안착임을 암시해 줍니다.
이런 편성의 미덕은 여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강한 박의 강조를 피함으로써 듣는 이가 가사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빈자리를 남깁니다. 그림에서 굵은 붓질 사이의 칠해지지 않은 캔버스가 숨구멍이 되듯, [빈센트] 노래는 침묵과 여백으로 숨을 쉬게 해줍니다.
노래는 죽음을 말하지만 죽음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노래는 격정을 증폭시키기보다 감정을 이해의 호흡으로 정리합니다. 분노와 비통을 외치지 않고 이미지와 리듬으로 배치함으로써 마음의 동요를 질서로 바꿉니다. 다스림은 억압이 아니라 배열입니다. 가사가 선택한 어휘, 선율의 완만함, 편성의 절제가 함께 정돈된 애도를 완성합니다.
이 노래는 반 고흐의 삶을 전기적으로 재현하지 않습니다. 대신 몇 개의 결정적 이미지들—밤하늘, 해바라기, 밀밭, 얼굴의 주름—을 집약하여 기억할 수 있는 형태로 묶어줍니다. 잊히지 않는 것은 자세한 정보가 아니라 잘 조직된 이미지입니다. 이 노래는 기억이 헤매지 않도록 표지판을 세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수 돈 맥클린을 스타덤에 오르게 해준 명곡입니다. 반 고흐를 더욱 사랑하게 해주는 추모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잘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해석보다는 머묾을 권하고 싶습니다. 한 소절을 듣고 그에 대응하는 그림을 떠올려도 좋고, 같은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도 좋을 것입니다. 특히 후렴에서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죠”가 반복될 때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 가능합니다. 나는 무엇을 끝내 듣지 못했는가? 내 곁의 누군가가 건네던 신호를 어떤 이유로 간과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이 생기는 순간, 노래는 과거의 한 화가를 추모하는 곡에서 현재의 삶을 뒤돌아보는 노래로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렇게 뒤돌아 볼 수 있어야 진정 새해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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