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여행이 된 뒷산 나들이
설연휴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다. 벼농사를 짓고, 그것도 농한기에 들어선 농사꾼에게 연휴며 공휴일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관계’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명절을 맞아 떨어져 지내던 피붙이들이 잠시나마 회포를 풀 수 있는 것은 연휴 덕분 아니던가. 그나마 차례 지내고 세배를 끝내자마자 서둘러 뿔뿔이 흩어지는 게 흔한 풍경이고 보면 그 끝 무렵에 묻어나는 씁쓸함도 여간 아니지 싶다.
이런 씁쓸함을 달랠 겸 동네 친구들과 고창 방장산을 등반하기로 했었는데 때마침 산불 예방기간이라 입산이 금지되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일상에서 벗어나 바람이나 쐬려던 참이었는데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동네 뒷산을 오를 수 있으니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한 시간 남짓 뒷산 나들이는 산행이라기엔 심심하고 산책이라기엔 제법 땀이 흐르는 행차다. 몇 해 전 심혈관계 이상증세가 도지면서 유산소운동이랍시고 시작한 일이다. 한여름과 농번기를 빼고 매일은 아니라도 틈날 때마다 땀을 낸 덕분인지 지금은 증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몸 쓰는 일을 싫어하는 기질이라 건강회복을 위해 쓴 약 먹듯 운동하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물론 무병장수를 지고의 목표로 삼은 건 더더욱 아니다.
돌아보면 ‘인생 제2막’으로 생태적 삶을 일궈보겠노라 귀농을 한 지도 이제 20년에 가깝다. 그 세월을 따라 날렵하던 것들이 많이 뭉툭해지고, 싱그럽던 것들은 더러 덤덤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그만큼 무디어졌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제2막을 지나 제3막에 접어들 준비를 할 시점임을 절감하게 된다. 이른바 ‘노년’이라 불리는 시간. 노년기는 비단 건강문제에 그치지 않고 마지막 생애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점에서 얼마 전 우연히 손에 든 <나이듦에 관하여>(도서출판 비잉)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저자인 루이즈 애런슨(미국 노인의학 전문의)은 이 책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과 진단을 제시한다. 노년기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듯 불행한 것만은 아니며,(실제로 청장년층보다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고 한다) 노년의료서비스는 완치나 생명연장보다 인간존엄과 삶의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죽음’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통찰이 아니라도 인간은 늘 미완인 불확정적 존재이며 확실한 건 죽는다는 사실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죽는다는 사실을 애써 회피하거나 망각하지 말고, 매 순간의 삶을 의미 있게 실현하라는 것이 하이데거가 전하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호에 ‘기력이 닿는 한 벼농사를 계속 짓겠노라’ 했었다. 늘그막까지 물질적 욕망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인 이는 없을 것이다. 설마 벼농사 안 짓는다고 산 입에 거미줄 칠 일이야 있겠는가. 그렇다면 인생 제3막에서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는 남은 삶을 아름답게 채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서 나의 뒷산 나들이는 언제부턴가 ‘유산소운동’을 넘어서게 되었다.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일보다 세계와 삶의 근원을 찬찬히 톺아보는 사색여행으로 바뀐 것이다. 그 시간은 이제 입에 쓴 약처럼 부담스런 운동이 아니라 손꼽아 기다리는 일과가 되었다.
공자 가라사대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 했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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