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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의 5일장] 4·9일 열리는 고산장2014-11-03

[완주의 5일장] 4·9일 열리는 고산장

파는 이도 사는 이도 이웃사촌 … “흥정도 정이지”

 

4·9일 열리는 고산장

 

10월 29일 오전 7시 30분 고산터미널 남문약국 사거리에 좌판이 하나둘 늘어갔다. 상강이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제법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지만 속속 도착하는 버스마다 짐 보따리를 든 어르신들의 걸음이 이어졌다. 경운기에 가득 싣고 온 배추를 좌판에 까니 번듯한 청과물상이 됐다. 간이 옷걸이에 옷을 걸친 승합차는 금세 옷가게가 된다. 고산장날이다.

 

고산, 경천, 운주, 동상, 비봉, 화산 6개 면을 아우르는 고산장은 4일과 9일에 선다. 그리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5일장의 명성을 잇고 있다.

 

“고산 삼기리 상삼마을에서 왔어. 채소를 파는데 모다 내가 농사지은 걸 가져왔제.”

 

장날마다 터미널 건너편에 자리를 까는 이영자 할머니는 이날도 이른 아침부터 채소 좌판을 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직접 재배한 배추와 무, 시금치, 쪽파, 대파, 양파모종을 갖고 나왔다. “오늘 아침 양파 10다발 가져왔는디 물어도 안보고 사가요. 내 물건은 물어볼 것도 없응께.”

 

고산장을 본지 30년이 됐다는 할머니였다. “(농사를) 잘 지어요. 여러 해 혀서 종자도 존걸로만 허고.” 할머니는 고산시장 터줏대감답게 찾는 이도 많고 말동무도 많다. 어떤 이는 지난 장날 진 외상값을 갚으러 왔다. 그렇게 오가는 이들과 농사며 사는 얘기를 두런두런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할머니는 아침 7시에 나와서 다 팔면 가는데 주로 음식점 하는 사람들이 단골이다.

 

이 할머니 바로 옆에는 화산 우월에서 온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았다.
봉황마을에서 왔다는 할아버지는 주로 약초를 파는데 가져온 물건을 느릿느릿 진열했다. 
“내가 캔 것도 있고 다른데서 좀 가져다 팔기도 혀. 한 15년 댕겼지.”

 

이분들의 기억 속 옛 고산장은 겁나게 컸다. 하지만 “인자 시원찮아졌다”며 못내 서운해 했다. 이 할머니도 전에는 많이 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가져온다고 했다.

 

 

고산장은 주변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집에서 먹고 남은 채소류를 가져와 파는 이들이 많다.

 

100여명의 좌판을 편 상인들과 상점들이 5일마다 동거를 하는 것. 파는 물건만도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비롯해 바닷것들과 옷, 신발류까지 다양하다. 지역에서 나는 물건들을 보면말그대로 대한민국에 바람을 불러일으킨 완주군 로컬푸드의 원조인 셈이다. 게다가 워낙에 6개 면의 중심이어서 장날의 위엄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장날이면 면 전체가 들썩인다.

 

“여그 짐 좀 맡겨야겠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온 한 할머니가 약사에게 말했다.
남문약국 약사 조명숙씨는 불편할 법도 했는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떻게 해요. 같이 살아야죠. 여기가 고산의 중앙이에요. 터미널 옆이라 사람들이 별거 다 맡기고 또 찾아 달라하며 그냥 제집처럼 드나들어요.”

 

조씨는 45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졸업하고 서울서 1년 전주서 1년 좀 못되게 한 뒤 여기로 왔다. “옛날엔 정말 장이 컸어요. 봉동장보다 훨씬 컸죠. 하여튼 길이 빡빡했어요. 저녁에는 막걸리 먹고 싸우고 그러는데 날 새고 보면 다 친척들이어서 웃고 넘겼죠. 고산 6개면 사람들은 거의 알아요.”

 

 

고산장은 전주 등에서 온 상인들이 어르신들이 농사지어온 물건을 저렴하게 구입해 되팔기 위해 대량 구매해 가기도 해서 작은 도매시장 역할도 한다. 그만큼 저렴하단 증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산장은 지역공동체를 성글게 하는 네트워크의 장이다. 살 물건이 없어도 사람들은 고산장을 찾는다.

 

화산에서는 아침 버스를 타고 나온 고중식 할아버지는 “장날에 맞춰 이발도 하고 목욕도 하려고 나온다. 오늘도 목욕하러 나왔다”고 했다. 볼일 다보고 사람구경 물건구경하다 지인이라도 만나면 막걸리 한 사발 걸칠 요량이다. 고산장은 이런 사람들로 북적북적 흥겹다. 자연스레 병원이나 이·미용실, 음식점도 크게 붐비고.

 

이런 고산시장이 요즘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작년에 개장한 상설시장이 문화관광형시장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형시장은 전통시장에 문화와 관광 콘텐츠를 입혀 소비자가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가시적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주말장터나 벼룩시장,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면서 점차 고산시장을 찾는 발길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 마음으로 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상인들의 의지가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장날마다 항상 붙어 있당게~

 

우린 고산시장 삼총사

 

채소를 파는 유춘식(80·고산 오산리), 박용례(75·고산 오산리), 이인수(73·고산 어우리) 할머니는 고산시장 3총사다.
고산장날이면 항상 나란히 앉아 오순도순 물건을 팔기에 붙여진 애칭이다. 유춘식, 박용례 할머니는 같은 마을에 살아 각별하고 남을 잘 웃기는 이인수 할머니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어 셋 중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 할머니들은 모두 직접 지은 농산물을 판다.

 

은행을 들고 나온 박용례 할머니의 사연이 재밌다. “고샅에 떨어진 것 들고 나왔어.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 선생이 은행나무 묘목주면서 키워서 농 짜갖고 장가가거라 혔는디 이렇게 커서 은행이 열려.” 할머니의 큰 딸이 내년에 환갑 돌아온다니 아주 오래 전 얘기다.

 

셋이서 모이면 이런저런 온갖 얘기를 다하는데 유춘식 할머니는 “곶감 다섯 접을 깎아 널었는데 툭 끊어졌다”며 올 곶감농사 걱정을 털어놨다.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 이인수 할머니.
“아이고 사진 찍을라면 머라도 사고 찍어야제. 웃자 한 소리여. 우린 단짝이여. 내가 막내. 우린 장날마다 나오제.” 어머니가 우리 인숙이 호적에 잘 좀 올려달라며 이장에게 돈까지 줬는데 받침을 다 때고 올려 남자 이름이 됐다는 이 할머니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시장통에 울려 퍼졌다. 할머니의 입담은 정평이 나있어 사람들이 행사 때마다 웃기라고 끌고 간다고. “주둥아릴 하도 나불나불거려 뱃속에 병이 없어.”

 

고산장 터줏대감들이 다 그렇듯 할머니들도 옛날의 고산장을 잊지 못했다. 더 크고 장사도 잘됐던 그 때의 고산장.

 

“마트 생기기 전에는 전주 익산에서도 왔어. 지금은 안와.”

 

3총사 할머니들은 뭔 사진이냐며 손사래 치면서도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했다. “김치~” 이렇게 고산시장 3총사의 하루가 간다.


 

옛날 고산시장은

 

“돼지 비빔밥 최고였제”
“1970년대 우시장 있을 땐 번창했었지. 지금 읍내 중앙교회 옆 공터가 우시장 자리였어. 그때는 고산장은 6개(고산, 경천, 운주, 동상, 비봉, 화산)면 장이었어. 다른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다 몰려왔지. 사람이 많아서 어깨가 서로 부딪혀 다니고 그랬어. 그때 장에서 장사할 때 참 맛나게 먹었지. 우리 애들이 그때 돼지머리 비빔밥을 못 잊어. 그 할매가 욕도 참 잘했어. 투가리에 김치, 돼지고기 볶은 것, 콩나물, 고추장, 기름 넣고 손을 내두르면 밥이 뚝딱 비벼져서 나와. 투가리 던져주면서 많이 쳐 먹으라고 욕하고 그랬지. 그 할매가 이제는 80살이 넘었으니까 늙어서 장사를 못했지.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지나가다가 우리 가게에 들러. 그 할매가 자기는 못 챙겨먹고 넘 챙겨주느라 병났어. 우리 애들이 그 욕이 그립다잖아.”

/고산시장 삼성상회 서금순씨
 
“밤 경매도 했었다니까”
“장날이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밀쳐서 갔어야 했었어. 사람들이 읍내 형제기름집에서 차부(고산터미널)까지 있었는데. 그렇게 밀렸당게. 내가 78년부터 고산에 살았응게. 그때 온 게 그러드라고. 밤장, 밤을 수북히 쌓아놓고 경매하고 그랬어. 소 시장도 있었고. 감이며 대추, 밤 많았지.”

/조광상사 마나님 이이순씨

 

“제일 유명한 건 곶감이었지”
“오일장에서 제일 유명했던 품목은 곶감이랑 소. 돼지머리비빔밥 집 하던 그 양반이 젤로 잘됐어. 지금도 하면 잘 돼. 맛있어. 돼지머리 비빔밥, 국산으로 참기름 넣어갖고 맛있지. 옛날에 손님 많았었어. 지금은 그 양반 나이 잡순 게 안혀. 그게 그 양반께 젤로 맛있었지.” 

/조광상사 조융희 남자사장님

 

“장 같은 장이었지”
“여그가(고산이) 6개면 본부였제. 한마디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돼얏어. 소비가 잘 된 거지. 6개면 장이니까. 내가 읍내에서 여행사 하기 전부터 옷가게도 했는데 명절에, 추석 돌아오면 옷도 잘 팔렸어. 한마디로 장 같았지. 소 시장, 뻥튀기할 거 없이 여러 가지가 잘 됐어.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동상 곶감도 있고.”
/부잣집김치 정말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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