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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나이 있나요] 운주 원완창마을 한글 깨치기 삼매경2014-10-06

[배움에 나이 있나요] 운주 원완창마을 한글 깨치기 삼매경

마음이 글이 되니 수업 내내 ‘깔깔깔’

 

운주 원완창마을 한글 깨치기 삼매경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 배움에 나이가 있나~요.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

 

운주 원완창마을 마을회관이 대낮부터 때아닌 트로트 노랫가락으로 들썩인다. 한글학당 어머니들이 수업 중 잠시 ‘내 나이가 어때서’에 얹어부르는 공부찬가다.

 

둥그런 상 두세 개를 펴고 너 댓 명씩 둘러앉은 이들은 어머니 학생들. 대부분 70대에 여든을 넘긴 이도 있다. 칠판에는 한글로 ‘해버 나이스데이’라고 적혀있다. 여기 저기서 자랑하느라 보여주는 낱장 종이에도 또박또박 한글이다. 내용은 가훈, 힘이 되는 말, 혹은 가족에게 쓴 편지다.

 

 

“아들에게.
나한테 태어나서 고생이 많았지? 돈이 없으니까 집도 못 사주니까 다른데 마음 쓰느냐고 너를 엄청 때렸다. 화풀이해서 미안하다.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용서해다오. 저 세상에서는 부자로 만나자. 사랑한다. 또 이 말밖에 줄 것이 없다.”

 

강사가 읽어주는 편지에 또 웅성웅성한다.

 

“자식들에게 많이 못주니까 미안하다는 대목에서 눈물이 날려고 한다”며 한 마디씩 감상을 보태다 금세 또 얼마 전에 보도 된 패륜아 얘기로 옮겨간다. 얘기가 슬쩍 옆길로 샜다.  그러다가도 강사가 이끄는 대로 또 또박또박 한글을 따라 읽는다. 읽다가 또 깔깔거린다. 헬렌켈러. 발음도 어려운 외국여자 이름 때문이다. 한글은 한글이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한글. “헬렝… 헬… 켈…” 서로 읽는 모습을 보다 또 깔깔깔, 하하하.

 

운주 원완창마을의 한글수업 풍경은 유쾌하다.

 

 

어려운 국어책도 없고 가나다라… 열 번씩 적어대는 10칸 공책도 없이 그저 어머니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글들로 수업 내내 빼곡하다.

 

어머니 학생들은 요즘 영어도 배운다. 쓴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리는 수준이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당황하지 않고 “해버 나이스데이”를 말 할 정도는 된다.

 

신문에 낼 사진을 찍자며 잠시 밖으로 나가자고 청하니 “밭 매다가 와서 얼굴도 못 씻고 왔는데 어쩐데….” “옷도 난린데….” 여기저기 원성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얼굴에 주름이 깊고 반백머리는 염색으로 감췄지만 여적 아이 같은 마음은 숨겨지질 않는다.

 

한 시간 수업인데 두 시간을 넘기기 일쑤인 선생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가끔 직접 따온 홍시 몇 알, 포도 몇 송이, 밤 한 두 봉지가 대신한다. 시골 사는 어머니 학생이니 가능한 마음표현이다.


 

편지받은 남편 답장 대신 “장하다”

 

이예순 할머니(76)

 

운주 원완창 한글학당의 신사임당, 이예순 할머니. 올해 3월부터 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씨는 글이면 글, 그림이면 그림 못하는 게 없는 자타공인 학당모범생. 과거 야학으로 한글을 뗀 뒤 글을 놓고 지내다 올 3월 다시 학당을 만났다.

 

 

 

“아이들이 저희들끼리 ‘언니! 이 것 좀 봐, 엄마가 이것을 썼어’하면서  돌려보고 좋아라 했쌌는데.. 아휴, 부끄럽지.”
남편에게 쓴 편지의 답장은 받았느냐는 물음에 답장대신 “장하다”는 한마디면 충분했다고. 최근 뇌수술을 한 할머니는 글 공부에 빠져 아픈 것도 잊고 지낸다. 아직 다 낫지 않아 말하는 것이 다소 불편하고 어렵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는 동안 힘이 나는 것을 보면 이 수업이 내겐 용기 잃지 않고 기쁨으로 살 게 하는 진통제인 셈”이라며 감사한 마음뿐이다.

 


“자녀들과 문자 주고받는 그날까지”

 

마을학당 강사 최숙자씨

 

“제게 한글을 배우시는 어르신들이 자녀들과 문자나 카톡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그날까지!”
원완창마을 한글강사 최숙자씨의 한글교육 최후의 바람이다.

 

최 강사의 수업방식은 남다르다. 가나다라 같은 기본은 이미 갖춰진 학생들이 많아 격언이나 의미 있는 글귀 등을 중심으로 생활에 힘을 주는 데 중점을 둔다.

 

“이런 수업을 통해 삶이 행복해졌다, 표정이 밝아졌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더 기쁘고 행복해진다”고 뿌듯해 한다.원완창마을은 애초 한글수업은 안하마 했었다. 하지만 최 강사의 설득으로 첫 수업엔 두 명이었다가 다섯 명, 일곱 명, 열 명으로 점차 늘어나더니 지금은 스무 명 가까이 빠지지 않고 나와 되레 강사를 놀래켰다. 문해교육사가 천직 같다는 최씨는 처음 한냇물학당에서 재능기부로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격을 취득하고 지난해에는 우석대 대학원 한국어지도학과를 졸업해 탄탄한 전문성도 갖췄다.
“친정어머니가 올해 아흔다섯이신데 글을 못 배우셨다. 그래서 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 같은 어르신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다 드리고 싶다”며 깊은 애정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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