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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청년] 서울서 내려온 23살 엄지씨2014-09-03

[완주청년] 서울서 내려온 23살 엄지씨

 

“이젠 컴퓨터보다 풀이 더 좋아”

 

농촌 경험하러 서울서 내려온 23살 엄지씨

 

스물셋 이엄지씨에게 농촌은 아직 생경한 곳이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터라 낫이나 호미를 잡아본 것도 대학 농활 때가 전부다. 그런 그가 6개월째 완주에서 농촌생활 도전기를 쓰고 있다. 그것도 홀로.

 

8월 20일 오전 7시 40분 고산 지역경제순환센터 텃밭에서 엄지씨를 만났다. 이맘때 농촌은 아침저녁으로 붉은 고추를 따느라 분주한 때인데 엄지씨의 사정은 달랐다. 비에 넘어간 고추대를 세우기 위해 이른 아침 텃밭을 찾은 것이다.

 

“농사를 잘 모르다보니 장마 전에 해야 할 일을 해놓지 않아 이렇게 엉망이 된 것 같아요.”

 

엄지씨는 고추를 매단 채 땅바닥에 넓죽 엎드린 고추대를 일일이 세워 끈으로 묶었다. 그가 고추를 심어놓은 곳은 퍼머컬처 대학의 실습용 텃밭이다. 퍼머컬처대학은 지속가능한 농촌생활을 배우는 이른바 어른들의 대안학교로 올해로 벌써 4기째다.

 

텃밭은 4월초에 만들었다. 손수 밭을 고르고 모종을 골라 고수 상추 깨 등 이것저것 심었는데 나름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단다. “커뮤니티비즈니스(CB)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가까이 있다 보니 가끔씩 내다보게 되는 것 같아요.”

 

엄지씨의 농촌경험은 대학생 때의 농활이 전부다. “처음에는 지식이 없으니 토마토 지주대를 세우거나 수박의 순을 따는 일 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죠. 책보고 하는 건 한계가 있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의 요령을 깨우쳤다. “제 소중한 가지에 노린재가 빽빽하게 생겼을 때 깜짝 놀랐어요.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죠. 하나하나 다 잡아 죽였어요. 그런데 이젠 대수롭지 않아요.”

 

엄지씨는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상태에서 완주에 내려왔다. 신문광고에 난 퍼머컬쳐대학에 꽂혔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려오면 좀 무서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휴학상태로 한발 걸쳐 놓고 내려온 거예요.”

 

엄지씨에겐 하이힐 신고 커리어우먼으로 사는 것과 지역에서 소박하게 사는 두 마음이 있다. “도시의 삶은 좀 해봤는데 지역살이는 그렇지 않아 해보고 삶을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음, 아직은 지역에 산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스트레스가 적은 것 같아요. 생각보다 또래 친구들도 많고 재밌는 일도 많아요.”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불편한 점도 많은데 특히 집을 구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초기에 방을 구하려니 막막했어요. 방 구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외로울 때도 있는 데 그럴 때마다 “네가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시던 부모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고심 끝에 결심한 지역살이도 어느덧 8개월 차다. 그동안 마음 맞는 사람들과 달모임도 갖고 흙건축과 전통주도 배웠다. 처음 토마토를 수확했을 때의 짜릿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엄지씨는 내년 2월 복학을 위해 완주를 떠날 예정이다. 그가 졸업 후 다시 완주로 내려올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지역살이의 두려움이 조금은 깨졌다는 것이다. 엄지씨는 “이제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 밖에서 풀을 보는 게 훨씬 재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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