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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향리 주막거리를 기억하세요?2014-07-17

소향리 주막거리를 기억하세요?

대아저수지 아랫동네 “소향리 주막거리를 기억하세요?”

 

말구루마-지게꾼들 쉬어가던 단골거리

 

7살때 길가 좌판서
막걸리 국수팔던 부모님 기억나

전쟁 겪으며 주막장사 주춤
낮엔 인민군들 탄피 주워다가
엿바꿔먹고 그러면서 컸지

땔감-자갈캐다 파는
말구루마 백여개가 왔다갔다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아녔지

- 오병순 할아버지의 45년 기억


18살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
도로 댐 학교공사 인부들 대상
27살부터 함바장사 해 재미

대아댐 생기고는 나들이객들에게
매운탕해서 팔아 생계유지
지금은 자가용타고 막 지나가버려

나들이 나오던 여자들의 한복
나풀나풀 참 보기 좋았지

- 이옥자 할머니의 50년 기억

 

45년간 소향리 주막거리를 지켜온 오병순 할아버지의 둥글상회 내부.

 

완주군 대아저수지 아랫동네 길가에는 작은 구멍가게 서너집이 있다.

 

오래된 가게와 세월을 함께 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구멍가게의 주인이다. 예전에 비하면 가게사정이 좋지 않다. 그래도 여름철 물놀이 하러 오는 피서객들이 있어 튜브장사, 평상 임대장사를 하며 지금껏 장사를 하고 계신다. 현재는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안남, 신상, 운용, 대향마을을 통틀어 고산면 만경강창포권역으로 부르고 있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신상부락 앞 주막거리가 더 익숙하다.

 

차를 타고 지나는 이들에게는 그냥 시골 구멍가게로 보이겠지만 이곳의 주인장들은 가게와 함께 늙어가며 많은 것을 기억하고 계셨다.

 

마을 앞 도로가 흙길이었을 때부터, 진안사람들이 운장산을 지나 고산장을 가기 위해 지나다가 쉬어가던 주막거리, 보수공사 전의 운치 있던 대아댐의 모습과 여름이면 피서객들을 잔득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버스. 소향리 아이들이 다니던 동초등학교, 제집 드나들 듯 구멍가게에 들리던 꼬맹이들까지.
오래된 구멍가게의 주인인 어르신들에게 그 기억을 들어봤다.

 

45년을 함께 한 둥글상회 오병순 할아버지

 

오병순(77세)할아버지는 청년시절 강원도에서 군복무하던 3년을 제하고 평생을 이 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소향리 토박이다. 어렴풋이 7살 때의 이 거리를 기억하셨다. 부모님이 국수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는 가게 건물이 없었고 길가에 좌판을 깔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국수, 막걸리를 팔았다고 한다.

 

 

둥글상회 오병순 할아버지.

 

“고산장 열리는 날이면 오는 사람, 가는 사람들이 여기 들러서 술 먹다가 자고 가기도 했지. 고산 오일장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차가 있어 뭐가 있어. 지게 지고 걷다가 해지면 여기서 술 먹고 자고 가는 거지. 그래서 이틀 장을 본다고 했어. 진안 주천면 사람부터 동산 끝터리 밤티에서부터 고상장에 오지. 그때는 고산장이 굉장히 컸어. 5개면 장터였으니까.”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전쟁을 겪으면서 세상이 흉흉하여 주막거리 장사도 주춤했다고 한다.

 

“여그가 6.25때는 말이여, 낮에는 대한민국, 해만 떨어지면 인민공화국이었다고 했어. 그렇게 빨치산이 많았어. 지리산 줄기 타고 여기까지 온거지. 마을 뒷산에 빨치산 일개사단이 있었어. 그들도 배가 고프니까 밤만 되면 마을로 내려오는 거야. 그래서 밤에는 마을 남자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그랬지. 밤에는 남자고 여자고 짐을 다 짊어지고 저기 고산 삼기리 쪽으로 피신가야 했어. 그때 사람들도 참 많이 죽었지. 나는 어려서 뭘 알았간디. 그냥 엄니 아버지 따라 왔다갔다 했지. 낮에는 인민군들이 쏜 총알 탄피 주어다가 엿바꿔먹고 그랬지.”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다. 소향리는 예전부터 땅에 돌이 많고 척박하다하여 ‘녹두밭 웃머리’라고 불렀다. 땅이 이러니 농사지어 먹고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소향리 마을 사람들은 산에 가서 나무일을 했다고 한다.

 

“땅 하나 있는 것이 돌이 많아 빠갈빠갈 하고 흙도 없어. 돈 벌이가 있었간디. 젊으니까 몸뚱이 하나 믿고 산에 가서 나무 베어다가 나무장사 했지. 이 동네로 나무 사러 오는 장사꾼들이 많았어. 그래서 자연스럽게 땔감시장이 만들어진 거지. 말 구루마 끌고 와서 땔나무를 띄어다가 고산시장에 가서 팔고 그랬지. 땔나무 장사를 많이 했었지. 그때는 길도 없었어. 돌만 천지고 비포장 도로에다가. 여기 마을 사람들이 강변에 가서 자갈을 지게에 짊어다가 길에 깔고 그랬지. 하루에 말구루마가 백여대가 왔다 가고 그랬으니까 여기가 얼마나 난장판이었것어.”

 

 

 

 

함바집에서 매운탕집까지, 50년을 함께 한 삼례상회 이옥자 할머니

 

18세에 이곳 소향리로 시집 온 이옥자(77세) 할머니는 27세 때부터 장사를 시작하셨다. 길가에서 볼 때는 작은 상회로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꽤 넓은 곳이다.

삼례상회 이옥자할머니.

 

“이 앞이 본체고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넓히면서 살았지. 사람들이 놀라. 밖에서 볼 때 작은 줄 아는데 들어와서 보면 넓으니까.. 민박집도 했었지.. 피서객들 받으려고 한 거보다는 공사하러 오는 인부들이 많이 지내고 갔지. 이 앞에 도로포장하는 인부들. 댐 공사하는 인부들.. 동초등학교 지을 때 인부들도 여기서 내가 함바집하면서 다 밥 해먹였지.”

 

가게 뒤쪽으로 나가보니 작은 양어장과 메뉴판의 흔적이 있었다. 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에는 대아리댐 유원지로 나들이객들이 많이 왔다고 한다. 이들을 상대로 한때는 매운탕을 해서 팔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게 안쪽에 있던 부엌이 제법 크다.

 

대아리댐 유원지는 청춘남녀 만나는 장소였지

 

1922년에 완공된 대아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댐이라고 한다. 완공이후 여러번의 개보수 공사를 하였지만, 더 이상 보수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댐의 내용연한도 다하여, 기존 댐의 300m 하류 지역에 지금의 대아저수지를 건설한 것이다. 현재도 대아저수지는 풍광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드라이브 코스정도로 스쳐지나갈 뿐이다. 이옥자 할머니는 예전의 대아댐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대아리 댐이 버스 종점이었어. 버스에 사람들이 짐짝같이 실려서 오고 그랬어. 도로 포장이 안되어 있으니까 덜컬덜컹 난리지…. 옛날에 자유당시절에 댐이 참 예뻤어. 꼭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생겼었어. 여그가 젊은 사람들 연애장소 였지. 폭포처럼 물 떨어지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안온하니 좋았지..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서 연애도 하고. 나도 많이 봤어. 그리고 나들이 나온다고 여자들이 나풀나풀 한복을 입고 오면 참 보기 좋았지. 옛날에는 예뻤어. 저수지 주변으로 꽃도 많이 피었고….”

 

이옥자 할머니는 꽃놀이를 가고 싶어도 이제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슬며시 웃는다.

 

“여기서 50년 장사하면서 여름에 피서객들 보면 마음이 참 그렇지. 물론 돈 받고 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한번도 못가고 넘 좋은 일을 하는 구나. 까마득한 이야기네. 꽃다운 청춘들이 사라져갔네….”

 

지게를 지고 지나던 길, 말 구루마를 끌고 땔감나무를 사고 가던 그 길을 이제는 자동차들이 달린다. 한복 입고 꽃놀이, 물놀이 하러오던 예전의 대아리댐 유원지는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이옥자, 오병순 어르신은 여전히 이 거리에 계신다. 어르신들은 인터뷰 끝에 하나같이 똑같은 말을 하셨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그때는 밥만 먹고 살아도 제일 부자였어.”

 

 


신상마을회관 어르신

 

“절은 없어지고 부처상만 남아 부치댕이라고 불렀지”

 

마을회관에서 들은 주막거리얘기

 

지금 수력발전소 있는 곳에 부치댕이라는 마을이 있었지. 왜 부치댕이라고 불렀냐면 옛날에 거기에 큰 절이 있었데. 호랑이가 중을 하나씩 하나씩 잡아갔는데 마지막 남은 중이 용이 되어서 나갔는데 그 자리에 물이 들어차고 개천이 생겼다고 했지. 그래서 예전에는 여기를 용바우라고 불렀어. 그 자리에 절은 없어지고 부처석상만 남아있어서 부치댕이라고 불렀었지. 부치댕이에도 주막이 많았어. 진안 용담면 주천에서 고산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기서 많이 자고 갔지. 지게들고 걸어서 산넘고 물넘어 왔다갔다 했지. 


/글·사진=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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