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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잇는 포도원 만들고 싶어요” 2014-01-06

“100년을 잇는 포도원 만들고 싶어요”

“100년을 잇는 포도원 만들고 싶어요”
 
 
장인 포도농사 이어받고 있는 장재혁씨
 
 
딸만 셋인 34년 포도박사 장인
일 접고 내려온 큰 사위에 전수
농기센터 교육받으며 인맥 쌓아
자격증 취득 끊임없이 연구

 
“가지를 바짝 잘라해 해. 그렇지 않으면 포도송이가 닿아서 터질 수가 있거든.”
 
“이건 묵은 가지잖아. 아무 필요도 없어. 이런 건 잘 보고 잘라야 해. 나중에 포도송이가 닿게 생긴 것을 잘라내야 해.”
 
한 겨울 비닐하우스 속 포도밭에서 사위 장재혁씨를 상대로 한 이영식씨의 현장 포도강의가 한창이었다. 장인은 30년 넘은 베테랑 ‘포도박사’고 사위는 5년차 귀농인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나고 자란 사위 재혁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성남의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했다. 부인 역시 근로복지공단 직원으로 안정된 직장인이었다.
 
“처가가 딸만 셋이라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요. 와서 한 번 해보라 권유해서 귀농했습니다.”
 
그전에는 여름휴가 때나 주말에 가끔 와 일을 도왔는데 그때부터 차근차근 포도에 대해서 배웠다.
 
“부인이나 저나 괜찮은 직장이다 보니 망설여졌는데 아무래도 시골에 대한 향수가 강했나 봐요. 도시가 너무 답답하고 애들 키우는데 너무 안 좋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사귀는 도시의 삶이 싫었다. 차라리 시골에서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에 대해 배우기를 바랐다.
 
2010년에 귀농했다. 그때가 서른두 살. 첫 아이를 낳자마자 왔다.
 
“처음 귀농하려고 했을 때 걱정했던 게 멘토였어요.” 다행히 장인이 포도박사였다. 34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완주군 친환경연합회 연구모임 회장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대를 이어 포도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한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가업이 끊어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가까운 일본 만해도 2대 3대가 100년을 가잖아요. 제가 귀농 안하면 농사규모를 줄이려고 하셨대요.
 
“재혁씨는 고품질 포도를 생산하고 100년 가는 포도농장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100년 이상 가는 포도원을 만들어 3대 4대를 이어가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초창기에는 처가 식구 빼고는 아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완주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교육은 다 배웠다.
 
순환농업대학, 유기농기능사자격증반, 사이버대학 연구모임 등 교육을 받으며 인맥을 쌓아갔고 이들과 농사정보를 주고받았다.
 
유기농기능사 자격증은 작년에 취득했다. 유기농기사는 올해 딸 계획이고 농산물 품질관리사도 준비 중이다.
 
“살아남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농업보조금 줄어들 것에 대비해 자격증 취득 등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해요.”
 
포도농사는 무척 힘들다. 채소농사는 쉴 틈이 좀 있는데 포도는 휴식이 없다는 게 재혁씨의 설명이다.
 
“추석명절 잠깐 쉬고 곧바로 일해요. 남들은 겨울철에 쉰다고 하는데 포도는 쉴 수가 없습니다. 나무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은 하우스를 찾아야 해요. 과수출하 후 애들이 잘 크고 있는지 겨울잠을 위한 영양분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360일 정도 출근하다고 보면 됩니다.”
 
포도농사는 장인과 장모, 할아버지, 할머니, 아내, 그리고 재혁씨 이렇게 6명이서 짓고 있다. 4500평 규모에 소득이 억대라고.
 
포도농사는 해볼 만한데 출하처가 없으면 힘들다. 포도농사를 하려면 최대 3년은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과수는 한 번 잘못하면 피해가 크다. 채소는 금방 갈아엎을 수 있는데 과수는 그럴 수 없다. 잘라낼 경우 몇 년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일까.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을 그만두고 와서 그런지 (처가에서) 고마워하시는 것 같아요. 먼 미래를 보면 되레 우리가 고마운데 말이죠.”
 
장재혁1.jpg

사위에 포도농사 대물림 이영식·김춘자씨
 
“4500평 우리끼린 힘들어 … 열심히 하는 사위 기특해”
 
“좋으니깐 오라고 했죠. 열심히 하려고 해요. 그 전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못 도와주세요. 아버지 연세가 아흔 여섯입니다.”
 
4500평을 다 소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영식씨는 큰 사위 재혁씨에게 “니가  그렇지 않으면 포도밭을 줄이겠다”고 했다.
 
“처음엔 힘들었다고 봐야죠. 이런 걸 한 번도 안 해보다 하니.”
 
그는 원래 포도농사가 힘들다고 했다.
 
“대학교수들도 이야기 할 때 복숭아는 1학년생, 배는 2학년생, 사과는 3학년생, 포도는 대학원생이라야 짓는 거라고 했어요.”
 
잘 지으면 노나는 게 포도농사인데 잘못 지으면 쫄딱 망하는 게 또 포도농사다.
 
포도는 다른 작물에 비해 소득이 괜찮은 편이지만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작물이라고 했다. 수확을 다해야 안심할 수 있는 작물이라고.
 
“갈라지는 열과 터지는 현상을 장마 때 안 터지게 하는 게 기술이에요.”
 
그는 앞으로 조금만 더 하다 사위 재혁씨에게 맡겨놓고 돌아다닐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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