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기획특집

> 이달 완두콩 > 기획특집

둥구나무 아래 그곳, 노는 바람을 보았다 2013-08-05

둥구나무 아래 그곳, 노는 바람을 보았다

둥구나무 아래 그곳, 노는 바람을 보았다
 
원용복마을 둥구나무
 
 
폭염주의보가 연일 발효되고 있는 여름의 한 낮. 짙푸른 들판에는 습한 안개가 자욱하다. 경천을 지나 운주로 향하는 17번 국도 변에 있는 원용복 마을. 거대한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다.
 
둥구나무 가까이에 다가가니 나무 품이 만들어 낸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 낮의 그 바람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강렬한 태양빛과 바람 한 점 없던 마을회관 앞마당에서 둥구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차원이 다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둥구나무 밑 의자에 한참 앉아서 나무 가지 사이로 노는 바람을 보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자 시원한 바람 찾아, 원용복마을 어르신들이 둥구나무 아래로 모이기 시작했다.
 
4-원용복정자목클로접.jpg
아래서 쳐다본 원용복마을 느티나무

 
둥구나무에 깃들어 사는 황구렁이
 
둥구나무 아래 정자에서 마늘을 까고 계시던 서화일(74) 할머니는 이 나무에 주인이 있다는 말을 했다.
 
“예전에 이 마을에 살던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 그 할머니 생전에 내가 들은 얘기여. 백년도  더 된 얘기지. 그 할머니가 젊은 시절, 쬐까난 애기 업고 둥구나무 근처에 있다가 둥구나무 임자를 봤다고 안혀. 전에는 이 둥구나무 밑 둥에 사람 하나 뽀도시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었어. 근데 그 구멍에서 노란 황구렁이가 슥 하고 나오는데 두 귀가 쫑긋하니 돋혔더라는 거야. 황구렁이가 나와서 둥구나무 앞에 한참 있다가 다시 구멍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안혀. 돌아가신 그 할머니가 그랬지. 그 황구렁이가 틀림없는 둥구나무 임자라고.”
도토리나무 숲에 깃들어 사는, 덩치는 크지만 제법 귀여운 숲의 정령과 일본의 농촌모습이 소소하게 그려졌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를 기억할 것이다. 순간 이웃집 토토로를 떠올린 건 나 혼자만은 아닐 테다. 서화일 할머니는 사람만이 이 세상, 온갖 것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야. 원래 깃들어 살고 있는 임자가 있고, 나무에도 임자가 있는 것이여.” 서화일 할머니는 아직도 둥구나무 밑 둥 어디쯤엔가 두 귀가 쫑긋한 황구렁이가 긴 잠을 자며 원용복 마을 둥구나무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하셨다.
 
 
둥구나무가 ‘웅웅웅’ 소리를 내며 울더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60여 년 전. 둥구나무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구멍이 메꿔져 없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하나 들어갈 만한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 꼬마들이 그 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곧 잘 놀곤 했는데 그 날은 꼬마들이 그 구멍 속에서 불장난을 한 모양이었다. 어린 시절 나무 구멍에 들어가 놀아본 적이 있다던 장세천(71) 할아버지는 둥구나무가 불타던 그 날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옛날에 그 나무속에 들어가서 보면, 사람하나 들어갈 자리가 텅 비어있었어. 근데 그 나무속이 솜처럼 부드럽더라고. 그러니께 불이 얼마나 잘 붙었겄어. 순식간이드만. 나무속에서 불길이 치솟으면서, 아 글쎄 이 둥구나무가 울더라니까. 아마 여기 있는 동네 사람들도 다 그 소리를 들었을 거여. 나도 똑똑히 기억이나. 웅 웅 웅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꼭 어른 남자가 우는 울음소리 같이 들리더라고.”
 
그 소리 때문에 집안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불타는 둥구나무를 발견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최순금(84) 할머니의 바깥어르신이었는데 현재는 돌아가셨다.
 
“아, 그 양반이 무섭지도 않은가, 불붙은 나무 구멍으로 막 들어 가드랑게. 바깥에서는 동네사람들이 양동이에 물을 길어서 나르고, 그 양반이 몇 번 그 물 받아서 불을 껐지. 불 끄고 나오니까 재를 뒤집어써서 온 몸이 까맣더라고. 그 양반 없었으면 이 나무도 다 타버렸을 거여. 순금이 숙모 바깥양반이 이 마을을 위해서 참말로 큰 일 했네.”
 
장세천 할아버지는 불났던 일이 마치 어제 일 인냥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용감하게 불을 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곁에서 화투를 치고 있는 최순금할머니의 화투패를 흘끔거리신다.
 
 
둥구나무 아래서 이제는 같이 늙어가네
 
원용복 마을의 타짜 어르신 네 분이 둥구나무 아래 가장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화투를 치신다. 마침 국동순(76) 할아버지는 광 팔고 화투판 말참견 중이시다. 
 
 “여름에 화투친 돈으로 겨울나야 하니께 부지런히 쳐야지, 껄껄껄.” 점 당 십원짜리 소박한 화투판이지만 점심 먹고 모여서 저녁상 차리기 전 까지 화투놀이를 하신단다. 과히 원용복마을 소문난 타짜 어르신들 답다.
 
많게는 십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허물없이 앉아서 화투 친구하며, 300년 넘게 살아온 둥구나무 아래서 남은 세월을 보내고 싶다고 하신다.
 
지금은 도로 위에 휴게소며 편의점 같은 것이 생겨 쉴 곳이 많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저 마을 앞의 아름드리 둥구나무가 길 떠나는 나그네의 휴게소이자 마을사람들의 사랑방 노릇을 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둥구나무는 여전히 그 곳에 있다.
 
 
둥구나무에 얽힌 옛날 이야기
 
옛날에는 동네에 놀거리가 있었간디요. 동네에서 딱지치기, 자치기 하고 놀고, 이 둥구나무 타고 제일 많이 놀았지요. 나무 가지 타고 올라가서 새 둥지에 알까놓은 거 건드리고, 지푸라기로 끈 만들어서 둥구나무 가지에 매달아 그네 만들어 타고 놀았지요. 칠월칠석날하고 백중날 주로 둥구나무 아래에서 동네사람들이 놀았죠. 회포를 풀고 이야기 하고 술도 한잔하고 꽹가리치고, 그런 풍습들이 남아서 요즘은 칠월칠석날 주민들이 모여서 음식 나눠먹고  우리 마을 잘되기를 기원하지요. /양승학 원용복마을 위원장
 
 
표-완주군 보호수 지정내역.jpg

 
※보호수와 노거수
 
완주군은 54그루의 보호수를 관리하고 있다. 보호수는 선정기준(자생식물 및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관리요령)에 따라 지정․관리되는데 소나무의 경우엔 수령 200년, 높이 20m, 둘레 1.2m 이상이어야 한다. 느티나무는 300년, 은행나무는 400년이다. 다만, 수령 100년 이상의 노목, 거목, 희귀목 중에서 고사나 전설이 담긴 나무나 특별히 보호 또는 증식할 가치가 있는 수종은 이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다.
 
완주지역 보호수종은 느티나무가 45그루(83%)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은행나무(3그루), 소나무(3그루), 팽나무(2그루), 버드나무(1그루)가 그 뒤를 잇는다. 유형은 정자목, 풍치목, 당산목, 기형목, 보목으로 나뉜다. 완주지역 첫 번째 보호수는 삼례읍 석전리의 은행나무(수령 400년)로 1982년 9월 20일 지정됐다. 가장 최근에 지정된 보호수는 운주면 산북리의 느티나무(수령 500년)로 2010년 11월 19일 지정됐다.
 
또한 완주군은 2009년부터 보호수 외에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노거수 25그루를 자체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그늘 넓이만 서마지기 반
다음글
“눈을 감고 누워보세요” 몸과 맘이 재충전되는 시간 1초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