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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꿀 인생 53년 "나는 한국의 집시" 2013-07-09

벌꿀 인생 53년

 

김종복 할아버지가 벌통에서 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꽃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벌꿀을 치는 사람들이다. 완주에는 140여명의 사람들이 벌과 함께 살아간다. 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전국을 누비는 양봉인이 있고 전멸위기의 토종벌을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토봉인도 있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벌꿀 인생 53년 "나는 한국의 집시"
-완주 최고령 양봉인 김종복씨
 
“나는 평생 집시로 살아 왔어.”
산과 들의 빛이 짙어가고 밤꽃 냄새 그윽한 계절. 화산면 소재지에서 승치리 쪽으로 500m 정도 가다 다시 왼쪽으로 운전대를 춘산리 쪽으로 돌리니 논산 이정표가 나왔다. 2~3분 달리자 얕은 산들이 나왔다. 덕동마을을 끼고 다시 왼쪽 농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자 김종복(84) 할아버지가 서너 명과 함께 꿀을 따고(채밀)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일손이 모자라 전날 만난 술동무를 불렀다. 아내도 힘을 보탰다.

삼례 사는 김 할아버지는 덕동마을에 밭을 빌려 6년째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옷가지와 먹을 것 등은 자녀들이 주기적으로 배달한다. 할아버지는 화산면소재지에서 월동하다 5월 초순경 봄이 되면 아카시아 꽃을 따라 이서로 가 보름정도 있다가 밤꽃을 쫓아 지금 있는 덕동마을 골짜기로 돌아온다. 아카시아가 지면 때죽나무와 옻나무, 잡초가 오고 이후 밤꽃이 핀다. 할아버지는 이 자연의 사이클을 함께한다. 채밀은 5월에서 7월사이가 절정이다. 8월에는 산초와 북나무 꽃을, 9월에는 들깨 꽃을 쫓는다. 들깨가 끝나면 냇가에 있는 고마니풀과 물봉숭아 차례다. 채밀은 사실상 밤꽃이 마지막인데 나머지 꿀은 식량이다. 벌은 이 꿀과 설탕 등으로 겨울을 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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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면 춘산리 덕동마을 덕동저수지 아래에 자리 잡은 김종복 할아버지의 벌통들

“옛날에는 전국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힘이 없어 못 다니겠어. 나이 먹고 객지생활을 할 수도 없고.”
젊었을 때는 꽃을 쫓아 전국을 돌았다. 특히 강원도와 경상도 쪽을 많이 갔는데 강원도 일부와 경상도 영덕군 봉화군 청송군 영양군 등 근방 6개 군의 자동차 들어가는 길은 다 밟아봤다. 그게 6년 전이니 70대 중반까지 그렇게 전국을 누빈 것이다. 평생을 집시로 살아왔다는 말씀이 헛말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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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에서 잠시 쉬고 계시는 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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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복 할아버지가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한 사전과 공책

 

할아버지는 서른두 살 때부터 벌을 키웠다. 고향이 군산인데 6․25전쟁 이후 삼례로 이사했다.
“32살 이전에는 아무것도 안했어. 벌을 시작한 것은 삼례로 와서인데 거기가 우리나라 벌 수도여. 우리나라에서 벌 젤 많이 하고. 옛날 제주도에 벌 800차가 들어갔는데 삼례 벌이 138차가 들어왔더라고. 8분지 1을 삼례에서 한 것이니 대단했지.”
양봉의 규모를 재는 단위를 차라 하는데 1차는 8톤 트럭 1대에 실리는 통의 양이다. 대략 단상기준으로 100여 통이 들어간다.
할아버지는 삼례에 벌 키우는 사람이 많았던 까닭은 일제시대 때 삼례봉동에 자운영을 많이 심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일본사람들이 자동차로 실어 와서 자운영꿀을 따고 씨를 채취해 일본에 보급했다. 할아버지는 당시에도 제주도에는 유채꽃이 많아 개화기에 벌 키우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집결하곤 했는데 삼례 사람들의 비중이 상당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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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맨 처음 한사람들이 수계리 유전옥, 와리 유방수, 유일영, 유동수씨지. 이분들이 양봉 1세대여. 이분들을 따라서 한 동네에서 40여차 이상했으니깐 상당했지.”
70년대 중반쯤이다. 벌을 잘 키운다고 소문나서 서울서도 보고가고 그랬다.
“벌이 기어 다니면 뭔 병으로 죽는가 알아보러 다니고 이사람 저 사람에게 묻고 의사들에게도 묻고 했는데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약을 잘 쓴다고 그래.” 언젠가 이상현이라는 사람이 제주도에 벌을 가져왔는데 그 사람이 부자였다. “한 40년 전 양봉업자 중에 지프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 혼자였는데 벌이 기어서 다 죽는다고 그래. 내가 노제마병 걸렸구만 그랬지.” 할아버지는 내게 약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해서 그에게 약을 줬다. “그 후로 서울행사에서 만났는데 의사 선생님 왔다고 그러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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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벌 좀 보고 낮에는 좀 나두고 저녁때 보고 그러는데 요새는 뜨거워서 일하기가 그렇다. 해서 저녁때 좀 관리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너무 자주 봐도 안 다”며 “4~5일에 한번씩 보면 된다”고 했다. 벌이 작업할 때 될 수 있으면 안 건드리는 게 좋기 때문이다.
꽃이 좋을 때는 아카시아의 경우는 2~3일에 한 번씩 꿀을 수확(채밀)한다. 아카시아는 특히 수확량이 좋은 꽃이다. 하지만 올해는 기후의 영향으로 꽃이 좋지 않았다. 아카시아도 그렇고 밤도 마찬가지다. 때죽도 조금 나왔다. 할아버지는 예년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나오고 있다고 했다. 37년 만에 왔다는 4월 추위 탓인가. 
“벌이 요물이여.” 할아버지에 의하면 사람은 몰라도 내일 비오는 걸 벌은 안다. 비 올라고 하면 유독 작업을 잘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게 레이다가 달려 있잖아. 전파 때문에 혼동을 일으킨다고 하더라고. 혼동을 일으켜서 그전하고 틀려. 분봉하면 3분의 1만 나오고 그래. 될 수 있으면 안테나에서 멀리 떨어져 놔두라고 하더라고.”
벌통은 생각보다 무거운데 계상의 경우는 위 아래통을 합치면 50kg이 넘는다고 했다.
 
 
 
“둘이 들어야 하는데 안식구도 늙어서 힘에 부쳐해.”
할아버지는 단상 30통, 계상 44통을 치고 있는데 내년에는 서른 댓개만 해야겠다고 했다. 통 당 5만에서 6만 마리의 벌이 들어있다.
하지만 나이 들어 하기에 이것만큼 좋은 일도 또 없다. “사실 밀원만 있으면 얼마나 좋은 사업이냐. 노인들이 놀아서 뭐해. 노동 중에는 젤 편한 노동이야. 단상 같으면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누가 이렇게 늙은이에게 일을 주겠냐며 “저거 앞에 벌 있잖아. 초등학교 교장 정년퇴임한 사람이 우리한테 3통 사다가 나둔 것이야. 지금 노인들도 활동 있는 사람은 2~3통 놓고 키우면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거냐는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해야지. 나는 죽도락까지 한다고 그래”라고 답했다. 할아버지는 10월 20일경까지 덕동마을 밀원에서 천막생활을 하다 화산면소재지로 돌아가 겨울을 난다.
 
양봉에 관한 오해와 진실 
양봉하면 가장 오해를 많이 받는 것이 설탕을 주냐 안주냐이다. 양봉인들은 이에 대해 벌도 먹어야 살기 때문에 월동기나 무화기, 장마기간에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벌이 설탕을 먹더라도 꼭 시중에 판매되는 모든 꿀에 설탕이 들어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양봉인들은 진달래 벚꽃이 필 때 받은 꿀은 안 따고 벌을 강하게 하기 위한 먹이로 쓴다. 채밀은 아카시아 꽃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6월 밤나무꽃까지는 설탕없이 필요 없다. 꿀이 벌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양봉인들은 설탕이 섞일 가능성이 있는 꿀은 채취 전에 미리 제거하는데 이를 정리채밀이라 한다.
 
굳은 꿀은 설탕물? 
꿀이 굳을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설탕으로 오해한다. 양봉인들에 의하면 꿀 자체가 살아 있는 성분이라 세포를 만드는데 이게 포도당이라고 한다. 그 성질이 차가울 땐 굳는다. 양봉인들은 굳은 꿀이 되레 더 좋은 꿀이라고 주장했다.
 
벌 이야기 
벌은 날씨와 진짜 밀접하다. 너무 추워도 안 되고 너무 더워도 안 된다. 벌은 비가 내리면 아무것도 못한다. 비가 많이 오면 로얄젤리도 안 나온다. 벌은 굉장히 많이 움직인다. 시속 70km로 나는 벌은 직선거리로 2km, 왕복 4km를 가는데 여름에는 이 보다 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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