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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마을엔 세 할머니가 산다2013-03-18

먹방마을엔 세 할머니가 산다

 

3가구의 할머니 3명이 살고 있는 완주군 구제리 먹방마을. 경칩이 지나고 먹방마을에 봄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산골짜기 세 친구 오손도손... "고라니, 토깽이도 우리랑 살지"
 
 
17번 국도를 따라 대둔산 방향으로 가다 수청마을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구제리가 나오는데 그 곳에서도 산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한참을 더 들어간 곳에 먹방마을이 있다. 이곳 먹방마을엔 세 가구 세 할머니가 산다. 아니 세 할머니만 산다.
먹방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산 여든넷 문안녀, 운주 안심 산골에서 태어나 먹방으로 시집온 일흔 아홉 김삼순, 충청도에서 시집온 일흔 여덟 심금순 할머니. 2013년 봄, 자연을 벗삼아 무욕의 삶을 살아가는 먹방마을 세 할머니를 찾아갔다.
 
운주면 구제리 먹방마을을 찾아가는 길. 버스에서 내려 개울을 건너고, 산을 넘었다. 그런데도 민가는 커녕 검은 차양을 덮은 인삼밭 밖에 보이는 게 없다.
원구제 마을 곳곳에 미로처럼 얽혀 있는 능선은 화산 승치·미남·대재에서 양촌, 운주로 또 운주에서 고산으로 넘나드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생존의 길이다. 산길을 넘어 고산 장터에, 충청도 양촌 장터에 오고 갔을 것이다. 고개를 넘어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고, 나물을 팔고 생필품을 머리에 이고 지고 고개에서 가쁜 숨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렇게 20여분 남 짓.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이런 곳에 어떻게 집을 지었을까 싶을 정도의 두메산골 외딴 곳에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듯 멀끔한 양옥집을 중심으로 양 옆에 파란색과 초록색 양철지붕으로 된 집이 먹방마을의 전부다. 이곳에서 팔순을 훌쩍 넘겼거나 팔순을 눈 앞에 둔 할머니 3명이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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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순 할머니네의 농기구가 한쪽에 가지런히 걸려 있다.

“우리는 이웃집 숟가락, 젓가락은 물론 옆집 할매 고쟁이 색깔도 알지.” 먹방마을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터줏대감 문안녀(84) 할머니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먹방마을에서 정말 신기한 건 그 흔한 울타리가 없다는 점이다. 끝에서 끝집의 마당의 훤히 내다보였다. 지금이야 도시 아파트에 살며 엄지에 침 발라 셀 돈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해지자, 담을 쌓고, 비디오 카메라로 감시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몇 년 전만해도 이웃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 벌인지 훤했던 시절, 지나치는 눈 인사만으로도 내 이웃의 희로애락이 눈에 보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던가. 사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거니와 세 할머니서 수십 년을 살다보니 더 이상 울타리가 필요 없어 보였다.

오솔길 옆 손바닥만한 밭뙈기에는 콩, 고추, 파, 생강 등 할머니들의 소박한 욕심까지 한데 심어져 있었다. 마치 냉장고 채소칸을 들여다보는 듯 참 재미난 밭이다. 집과 가까운 작은 밭뙈기를 이를테면 양념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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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꼍에는 호박돌을 쌓아올려 얕은 돌담으로 경계를 짓고, 장독대를 만들었다.
손수 담근 간장, 된장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을 터였다. 따뜻한 봄볕에 겨울내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졸졸졸 흘렀고, 할머니들이 모여앉아 옷가지를 빨던 빨래터의 풍경이 정겨웠다.

“여기는 네 식구가 같이 살아.”(문안녀 할머니)
어랏? 할머니 3명이 오순도순 사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누가 더 있나?
“멧돼야지, 고라니, 토깽이(토끼)랑 우리랑 같이 살지.” 문 할머니의 재치있는 답변에 웃음이 나왔다.
산골짜기에 울타리도 없이 살다보니 이젠 마당에 놀러온 야생동물이 한 식구처럼 느껴진단다.
바람이 불어대자 ‘쨍그렁~, 딱~딱~’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들짐승 날짐승을 쫓기 위한 시설들에서 나는 소리다. 찌그러진 냄비뚜껑, 쟁반, 세숫대야 등 생활 속에 구할 수 있는 폐품은 총동원 됐다.

또 밭 곳곳에 빗물을 받는 널찍한 양철 슬레이트와 물통이 놓여 있다. 그야말로 천수답이다. 사람이 온전히 서 있기도 힘들 만큼 급경사에 일궈 놓은 밭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먹방마을 일원에는 멧돼지 같은 날짐승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땅의 마른 정도로 봐서 간밤에 후비고 지나간 무리들의 자취다.
먹방마을 인근은 고원지대에 통풍이 잘되고 배수가 잘되는

땅으로 인삼이 자라기엔 최적지다.
“예전엔 심마니들이 망태 들고 많이 왔었지.”(심금순 할머니)
새가 먹고 배설한 인삼 씨가 발아한 것이 산삼이다. 산이 깊고 인적이 드물다 보니 간혹 산삼을 캤다는 소리가 들려온단다.
팔순의 촌로 셋이 세월을 나는 곳. 적적하진 않을까.
“모여서 밥먹고 기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면 하루가 금방 가.”(김삼순 할머니)
가끔씩 민화투도 하고, 잘 익은 묵은지를 안주삼아 반주도 하신단다. 할머니들은 요새 진달래꽃 피기만을 기다린다. “둥글납작하게 빚은 찹쌀 반죽 위에 얹어 기름에….”(문안녀 할머니) 어렸을 때 해먹은 화전 얘기에 웃음꽃이 핀다.

눈 뜨면 산 눈 뜨면 산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의 마을. 하지만 그 풍광은 가히 동양화 속의 작은 민가처럼 주변 산세가 수려했다. 그보다도 먹방마을의 큰 가치는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다. 세 가구 삶을 꾸리는 사람들이 그렇고, 그들이 일구는 급경사 다락밭이 그러하다. 새삼스럽게 삶과 자연,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실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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