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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리에 겨울이 왔다 2013-02-08

고당리에 겨울이 왔다

 

피묵마을.
 
피묵에 겨울이 왔다. 피묵(皮黙)은 삼거리, 원고당마을과 함께 운주면 고당리에 위치한 산골로 버스가 닿는 마지막 마을이다. 산 너머는 충남이고 진안 운일암반일암과도 접경을 이룬다. 눈이라도 오면 버스가 끊기고 찾는 이도 드물어 바깥세상과 단절된다. 하여 피묵의 겨울은 여느 마을보다도 길다. 완두콩 12월호는 무거운 주제에서 잠시 벗어나 불편하면서도 호젓한 단절이 불가피한 피묵 사람들의 겨우살이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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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쌓인 고당마을.

피묵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12월 7일 토요일. 전날 오후부터 내린 눈은 산길에 눌러 붙어 주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간간이 굽은 곳에 뿌려놓은 모래만이 미끄러움을 방지할 뿐이었다.
피묵은 승용차로 운주면소재지에서 대둔산 방향 2차선으로 접어들어 게임과학고를 지나 곧바로 우회전으로 꺾은 뒤 8km 정도를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길은 어수선했다. 눈이 덮여 맨살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도로확장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굽어진 산길은 굴착기에 잘려나간 모습이고 여기저기 널 부러진 바위와 흙더미는 산길 공사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었다. 길이 넓어지면 주민들의 삶은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피묵에서 만난 손윤배씨는 “도로가 확장되면 생활은 편해지겠지만 그만큼 마을은 빨리 오염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맞는 말이다.
눈길을 조심조심 달려 좀 더 피묵 쪽으로 들어가자 겨울인데도 맑은 물이 꽤 많이 흐르고 있었다.
지난 여름 무더위를 피해 물가로 피신한 사람들의 차지였을 가든 평상들은 곶감과 무시래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평상의 쓰임이 여름과 겨울 뚜렷하게 대비되고 있었다.
어느새 차량은 고당리로 접어들었다. 고당리 초입 자연석으로 된 ‘삼거리마을’ 표지석이 눈길을 끌었다. 한 때 선녀와 나무꾼을 주제로 진행한 마을사업 관련 시설물이 객을 맞이했다. 눈 덮인 선녀의 물통은 왠지 쓸쓸했다.
삼거리마을을 지나자 길은 더욱 좁아졌다. 아직 도로공사가 초기단계여서인지 비포장도로 같은 느낌이었다. 좁은 길로 2㎞를 더 가자 원고당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원고당마을 역시 앞뒤가 모두 산으로 가로막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고요한 마을의 물가 평상은 역시나 곶감과 무시래기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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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피서객이 차지했을 평상에 무 시래기가 널려 있다.

약속한 원고당마을 김기용 위원장과 통화가 이뤄져 산 밑 무시래기 건조장으로 향했다.
칼바람 속에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래기는 일교차가 커야 맛있어요.” 김 위원장은 시래기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야 맛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두 동의 시래기는 내년 초 정월 대보름 전에 출하될 예정이다.
시래기 덕장을 뒤로 한 채 목적지인 피묵마을로 향했다. 피묵마을은 원고당에서도 2㎞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에 도착하니 전날 들어온 버스가 아침 눈길에 나가지 못하고 그제야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웬만한 눈에도 마을은 고립된다.
주변을 둘러보니 비가림시설로 지어진 집 한 켠에 쭈그려 앉아 키질로 콩을 고르는 할머니가 보였다. 이렇게 추운날 일을 하시느냐고 했더니 “가을에 비가 자주 내려서 일이 늦어졌다. 돈을 사려면 지금이라도 일을 해야 한다”면서 연신 키질을 해댔다.
한 할머니는 주말을 맞아 찾은 자식들의 차에 실려 보낼 배추를 캐오느라 눈발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양봉하는 최기화씨도 벌들이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분주했다. 벌은 특히 추위에 약하다.
피묵마을은 벼농사를 짓지 않는다. 전에는 한 200마지 정도 지었는데 타산이 안 맞았다. 삼농사도 했는데 지금은 여름 평상장사, 겨울 곶감농사, 시래기 판매가 주요 수입원이 됐다. 고사리도 많이 심었다. 많이 심으면 건조장 지어준다고 해서 심었는데 건립이 쉽지 않은 모양이다. 건조장 지으려면 마을 땅도 만들어야 하는 데 이도 쉽지 않은 숙제다.
장백동 피묵마을 이장은 산 밑 곶감건조장에서 곶감을 지지해주는 고리에 달라붙은 물렁한 감을 떼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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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묵마을 주민이 눈이 내린 가운데 키로 콩을 까불고 있다.
피묵마을 주민이 눈이 내린 가운데 키로 콩을 까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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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마실을 가는 피묵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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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당 주민이 눈을 치우고 있다.

마땅한 부업거리도 없는 피묵의 겨울은 무척 더디게 간다. 마을경로당은 이 시간을 견디게 하는 오락장이자 사랑방이다. 이날도 경로당에선 이야기꽃이 한창이었다. 남녀 어르신들은 각자 나뉘어 정치니 곶감이니 하며 저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었다. 슬쩍 앉아 사는 얘기 마을 얘기를 주거나 받거니 하다 보니 하나뿐인 경로당 화장실의 불편함도 넌지시 꺼내놓는다. 장완봉 할아버지는 “옛날엔 농기센터에서 와 기계도 고쳐줬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소박하지만 절실한 바람들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원고당마을 주민들은 집 앞의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김종기(63.원고당)씨는 메주를 달아매고 있었다. “겨울채비 다 했지. 삼농사하고 곶감 깎아 말리고, 김장도 담갔고, 메주 만들어 달고. 지금은 무말랭이, 시래기 말리고 있어.” 김씨는 호박꼬지도 했다. 겨울로 접어든 고당리의 시간은 멈춘 듯 보였지만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Tip
[피묵마을이 맞아요]
내내 피묵마을인지 피목마을인지 궁금했다. 결론은 피묵마을이 맞았다. 어르신들은 “원래 피묵인데 버스행선지가 피목이라고 돼서 그렇게 된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피목이라고 해야 더 알아준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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