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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2024-03-14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


우리네끼리 흥 많고 정은 더 많지


구이면 백여리 대모마을

구이면 백여리 정상인 상황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다섯 봉우리가 오봉산을 이룬다. 이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은 무척이나 고요하고 안락하다. 옛날에 마을 위로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큰못지’가 지금 와서 ‘대모’라 불리게 됐다는 게 이름의 유래다. 현재 마을에는 43세대가 살고 있다.


산수유 노란빛은 선명해지고

밤사이 내린 봄비로 대모마을 고샅 산수유 노란 빛이 더욱 선명했다. 사방이 산봉우리에 둘러싸 여 중천의 해가 짧게 느껴지는 오후였는데 마음 급한 농부들은 밭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지팡이 짚고 포대를 짊어진 한 어르신이 파랗게 올라온 풀을 가리킨다.

“집에 있으면 뭐해~. 풀이라도 뽑아야지.”


마을회관 뒤 정류장에서 젊은이가 양손에 검정 봉투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다가온다. 마을에서 젊은 편에 속한 최석규(52) 씨다. 석규 씨는 감자 밭을 일구는 어르신에게 새참을 권할 참이었다.

“마을에 젊은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지나가다 먹을 게 있으면 이렇게 가지고 나와서 드리죠. 어르 신들이 다들 좋아요. 자식처럼 생각해주니 저도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려고 하죠.”

대모마을이 대대로 평화롭고 화목한 이유다.


고개 돌려 산 중턱을 보니 밭을 돌보는 농부가 여럿 눈에 띄었다. 전지가위로 싹둑싹둑 뾰족한 나무를 자르는 모습이 진지하다. 3월은 복분자 나무의 눈이 자라나기 때문에 전정과 묘목작업이 한창인 것.

“복분자는 매년 농사가 달라요. 작년에 수확이 잘 됐다고 해도 올해는 또 다르죠. 그래도 사랑과 정 성으로 6월 수확 전까지 노력하고 있어요.”

나무의 줄기가 제멋대로 뻗지 않게 고정하던 김영석(78) 어르신은 대모마을 복분자는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고 맛과 향이 깊다고 자랑했다. 옆 밭에서는 유옥순(75) 어르신이 돌을 추려내며 고추 심을 땅을 고르게 하고 있다.

“큰 농사는 아 니더라도 자식들 나눠주고 우리 먹기 위해 하는 거지.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움직이는 게 좋아.”

구릉지에선 김진두, 황성숙 씨 부부가 복분자밭에서 가지를 묶느라 여념이 없다. 나중에 복분자 과실의 무게 때문에 가지가 쳐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호미질과 가위질 소리, 마을 고샅을 달리는 사발이 소리가 대모마을을 깨우고 있다.



서로에게 기대어 잘 늙어가는 삶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고요한 오후 3시쯤, 마을 회관 안은 어르신들로 북적북적하다. 겨울철 농한기나 오늘처럼 비가 와서 밭에 못 나갈 때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서 점심도 같이 먹고 이야기꽃도 피운다. 회관 입구 오른쪽에는 이야기방, 왼쪽은 TV 시청 방으로 나름의 규칙이 있다.

TV 시청 방에서 최고령자 강덕임(95) 어르신을 만났다. 어르신은 “회관에는 자주 모인다. 집에만 있으면 적적한데 회관에 나오면 동네 사람들도 만나고 좋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부녀회장 범진심(69) 씨 는 “우리 마을은 사이가 진짜 좋다. 모두 마을에 오래 살아서 가족 같은 느낌이 크다. 시간이 바쁘 더라도 회관에 모여 있는 날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택섭(94) 어르신은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다 시집온 사람들이지. 난 토박이고”라며 말을 얹었 다. 김 어르신의 할아버지 때부터 내내 대모마을 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장난스레 마을에서 입김 이 좀 세셨냐고 묻자 그는 “그럼 그렇지”라며 웃었다.

손 모내기하던 논이 밭으로 바뀌던 시절, 사람들이 함께 발로 꾹꾹 밟아가며 만든 대모 저수지, 특별한 날마다 풍물패가 돌아다니던 흥겨운 나날. 그 세월 속 마을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기로 했다.



산 다섯 봉우리와 대모 저수지

대모마을을 둘러싼 오봉산은 절벽 위에서의 수려한 전망을 지닌 513m 높이의 산으로, 그 너머로는 푸른 섬진강 옥정호가 펼쳐져 있다. 지금이야 오봉산 이곳저곳 잘 깎은 계단이 만들어져 있지만 50년 전에는 계단은커녕 무성한 수풀 사이로 길만 조금 트여 있었단다. 그런데도 대모마을 사람들은 그 산봉우리를 넘어서 잘만 다녔다. 대모마을이 워낙 산 안쪽에 위치한 분지라 다른 마을로 넘어가려면 산을 타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었다. 이런 마을의 어디에서 농사에 쓰고 마실 물을 끌어왔을까.

김택섭 어르신은 “산 다 안 넘어도 물 길어올 데가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큰 연못도 있었는데 그건 지금 다 말라서 없고 마을 산 안쪽을 넘어가면 저수지가 하나 있어. 만들 당시인 50년 전에는 기계나 도구가 별로 없었지. 행정에서 만드는데 진전이 없으니까 마을 사람들도 다 거기로 올라가서 공사하는 거를 돕고 그랬어. 손으로 직접 흙 파내고, 파낸 흙이랑 돌 나르고. 쌓은 둑 위를 발로 꾹꾹 밟아가면서 만든 거야.”

대모마을의 저수지는 물이 아주 맑아 새우, 물고기는 물론 조개까지 살던 곳으로 그 명성 때문에 한때 낚시꾼들이 자주 찾아오던 곳이었다.



흥부자들이 모여 살았던 곳

대모마을만의 특색 있는 문화가 있단다.

윤도수 (67) 마을 이장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풍물패가 돌아다녔다”며 “어린애들도 악기 한 가지는 무조건 할 줄 알았고 정월 대보름이나 섣달 그믐날 차례대로 마을 주민들을 찾아 그 집 앞마당에서 굿판을 벌였다”고 했다.

풍물패를 맞이하는 집은 좋은 굿에 대한 보답으로 객들에게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고 한다.

윤 이장은 “사람들이 방문할 때마다 상 차려 내가야 하니 옛날에는 여자들이 고생 많이 했다”며 “특히 가장 위쪽에 있는 집을 마지막에 방문하니까 풍물패가 우리 집에 찾아오면 자정을 훌쩍 넘긴 시 각이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야기를 함께 듣던 강덕임(95) 어르신도 직접 장구 잡고 풍물놀이 하던 때를 기억했다.

“그냥 보고 들은 것도 있고, 오래 치다 보면 박자만 쪼개서 할 줄 아는 거다. 마을 사람들이 나가서 춤도 추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연습도 하고 마을을 돌아다 니며 공연을 할 때 쓰던 악기는 현재 마을회관 안쪽에 보관 중이다. 주민 대부분이 나이가 많이 들어 예전처럼 풍물놀이를 자주 하기 쉽지 않고 가끔 큰 행사가 있을 때만 한다. 작년 9월 구이면민의 날 행사 때에는 대모마을이 대표로 풍물놀이를 선보였다고 한다.
김일례(76) 어르신은 “마을 사람들이 흥이 많고 같이 어울려서 노는 걸 좋아한다. 한 번 놀 때 인심도 넉넉해 마을 단위로 음식을 하면 우리 마을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푸짐하게 잔치도 했다” 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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