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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농촌청소년단체를 이끌었던 윤도수 이장2024-03-14

[다섯 봉우리에 둘러싸인 대모마을] 농촌청소년단체를 이끌었던 윤도수 이장


농촌청소년단체를 이끌던 청년

이장으로 귀향


윤도수 이장


3월 4일 오후 3시쯤 비 오기 전 안개가 옅게 깔린 대모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 중심부의 마을회관 뒤편에 앉은 어르신 세 분이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중 한 어르신의 아들이 대모마을 이장이다. 이곳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찾아가 보라는 어르신 덕분에 대모마을 윤도수 이장을 만나볼 수 있었다.


윤 이장은 4대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토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후 1년간 마을에 머무르면서 ‘4H’를 활발히 주도했다. 윤 이장은 대모마을에서 처음으로 농촌청년단체를 만들었고 각 마을의 단체들을 모아서 완주군 구이면 연합회 회장까지 맡았었다.

“대모마을이 농사짓기에 좋은 곳은 아니에요. 그래서 밭농사를 크게 짓지도 않았는데 농사 외에는 할 게 없어서 먹고 살기 힘들었어요. 어떻게든 더 잘 살아보겠고 좀도리쌀 모으기 운동도 하고. 그때는 마트처럼 여러 물건을 한 번에 살 곳이 없어서 집마다 돌아다니며 서로 필요한 물건 대신 사고팔아 주기도 했어요.”


농촌생활을 개선해 보고자 노력했던 만큼 애향심 때문에 이장을 맡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젊을 때 마을 에서 그런 활동을 여기저기 하고 다녔던 것을 마을 어르신들이 기억하고 계셨나 봐요. 귀향하기 전부터 어머니를 통해 마을 어르신들이 이장 네가 해야 한다고 말이 많았어요. 그리고 여기 오자마자 만장일치로 이장직을 맡았어요.”


젊은 시절의 그는 항상 다른 지역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패기가 가득했다. 그리하여 부산까지 가 40여년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한 후 3 년 전 대모마을로 돌아왔다.

이장으로서 한 일 중에 어떤 것이 기억에 남는지 물자, 윤 이장은 “작년에 사방댐 공사를 했다. 산사태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막아주는 사방댐을 물을 가두는 용도인 줄만 알았던 주민들이 공사를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댐 보수 공사를 하지 않으면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설명하고 또 설득했다. 그 덕분에 사방댐 공사를 무사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윤 이장은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며 손 봤다.


“옛날에는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렸는데 이번에 제가 면사무소에 얘기해서 보관창고도 마련하고, 수거비 내면서 정기적으로 마을 쓰레기도 가져가게 했어요. 이전보다 마을이 많이 깔끔해져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도로 옆 축대부터 하천 공사, 농로 포장, 저수지 관리까지 윤도수 이장의 올해 마을 환경정화 계획이 촘촘하다.


원체 할 일이 많은데 그가 마을을 위해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수익성 사업을 마련하는 것 이다.

“예전에는 산 전체를 개간해서 농사짓고 수확한 작물 팔아서 살았는데 지금은 다들 나이도 많이 드시고 힘들어서 못 해요. 지금처럼 농한기에는 딱히 할 일 없이 누워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작은 일이라도 있으면 시간도 보내고 활력도 돌잖아요. 노인 분들이 무리하지 않고 용돈벌이 겸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있으면 좋겠어요. 어떤 게 좋을지는 계속 고민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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