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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2024-02-20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소양면 화심도요 임경문 도예가

 


만덕산 서북쪽 끄트머리, 이 동네 어르신들은 사기장골이라고 부르는 옛 가마터에 화심도요가 있다. 40년 동안 도자기를 빗어온 임경문 도예가와 그의 오랜 제자이자 친구이자 아내인 도헌이 이곳에 살고 있다. 낯선 사람을 보고 짓던 개들도 이내 꼬리를 흔들고 나른한 고양이들은 다리 사이를 오가며 사람을 반긴다. 고양이와 개들의 다정함에 홀린 듯 집 뒤편으로 무심코 따라 들어갔다가 눈이 부셔 순간 걸음을 멈췄다.

열네 칸의 흙가마 사이로 오후의 햇살과 가마의 흙빛이 어우러져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구릉같기도 하고 고귀한 왕릉 같기도 한 가마의 위엄에 한참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선생님이 직접 만든 가마에요. 벽돌을 직접 찍으셨어요. 흙이 백톤 정도 들어갔죠. 찍어낸 벽돌을 말린 후 축조해서 흙으로 덮은 후 가마에 불을 떼서 벽돌을 익힌 거죠. 다 직접하세요. 허투루 하는 것이 하나 없어요.”

그들의 작업실은 절박했다. 사람의 자리, 쉼의 자리가 아니라 온통 흙과 도자기의 자리였다. 흙을 처음 만진 뒤 온 삶이 도자기로 가득 찼다.

 

선생님은 절박하게 작업하시는 분이에요. 유년시절부터 정말 눈물나는 이야기들이 많아요. 식사하시다가 생각나면 이야기해주시고 틈틈이 제가 곁에서 다 듣는 거죠. 눈물나는 이야기부터 장난꾸러기 같은 이야기도 많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제 안에 많이 담았죠. 나중에는 책으로 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도헌의 입으로 그의 인생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나와 도헌은 그와 눈을 맞추며 통역 잘하고 있죠?” 되물으면 그는 소년처럼 베시시 웃는다.

임경문 도예가는 선천적인 청각장애로 상대의 입모양을 보고 말을 읽는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낸 그들은 어려움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그것은 말과 말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것이기에 더 깊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나도 그들 사이에 고양이처럼 다소곳이 앉아 그 어느 때보다 정성스럽게 이야기를 듣는다.

 

그 시절의 흙을 찾아 이곳에 깃들다.

2005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지금의 화심도요가 있는 곳 일대에서 15세기 중엽 지어진 분청자 가마터가 발굴됐다. 근처 골프장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분청자가마 1기와 소형가마 11, 분청자가마와 관련된 파편들이 발견된 것이다. 전체 길이가 33.4m에 이르는 분청자가마는 국내 10여 기의 분청자가마 중 길이가 가장 긴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관요가 설치되기 전 공납용 자기를 생산했던 중요한 가마였을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그 당시 출토유물은 발굴조사를 진행해온 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보존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마터는 이미 사라졌다.

가마터가 대대적으로 발굴되기 전 젊은이였던 임경문 도예가는 이미 이곳을 다녀갔었다. 2014년에 다시 이곳을 찾았고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던 가마터 곁에 자신의 가마를 지었던 것이다.

임경문 선생은 청화백자로 유명한 고수자기 라희술 선생과, 강진청자로 유명한 광주 무등도요 조기정 선생에게 수년간 청자 재현 방법을 수련 받았죠. 조기정 선생님은 청자유약재현을 해서 무형문화재를 받으신 분인데 우리 선생님이 열심히 배우는 제자여서 가마터 연구를 할 때 늘 데리고 다니셨데요. 그러면서 파편 공부하는 방법을 그분한테 배운 거죠. 전남과 전북의 가마터를 다니면 던 중에 지금의 이곳 가마터도 와서 보신 거죠. 그때는 훼손 없이 도자기 파편들이 집채만큼 쌓여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곳이 거대한 가마터였어요. 그 기억으로 다시 이곳을 찾아 와서 화심도요라는 가마를 짓게 된 거죠.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도 가마터가 있던 곳에서는 흙이 나와요. 그때 당시 만들었던 흙이.

예전에는 운송수단 같은 것들이 없잖아요. 가마터를 짓는 조건이 주변에 흙과 물과 나무가 있어야 하거든요. 선생님이 파편 공부를 하면서 이곳의 백토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백토재라고 하는 곳이 골프장으로 매립이 되었죠. 안타까웠죠.”

 

아무래도 도공의 영혼이 깃든 것 같소

문화재 재현을 위해 몇 세기 전의 도자기 파편들을 보고 만지며 흙을 찾아 돌아다녔던 젊은이는 이제 예순살이 되었다. 전시실에 걸려 있는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한참 바라보았다. 눈빛은 형형하고 마른 얼굴이 날카로워 보인다. 지금의 그는 개,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돌보고 잘 웃는 동네 아저씨 같은 데 말이다. 하지만 작업을 시작했다 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한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문화재 재현의 가치와 도자기의 근본이 뭐냐면 재현을 찾아가다보면 그 속에서 천년가까이 내려온 비법들을 만나게 된다는 거에요. 어느 순간에 불쑥 만나게 된데요. 계속 그 길을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거래요. 선생님은 그 길을 찾고 싶은 거죠.

함께 살지만 스승이잖아요. 아직도 지독하세요. 도자기에서는 편법이 없어요. 요즘 도자기 하는 방법으로 색도 넣고 무늬도 새겨 넣으려고 해도 절대 허락을 안 하세요. 기본을 이해하고 그것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창작을 하면 애써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선이 살아날 테고 거기에서 꽃이 필 텐데. 모가지만 꺾어서 꽃병에 꽂아 놓듯이 맛보기로만 하는 방식이 잘못된 거라고 말씀하시죠.

어려운 길이에요. 진짜로. 가끔은 울컥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결국 만들다 보면 선생님 말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선조들이 만들었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며 찾아가다보니까 기본적으로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흉내만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다못해 찻그릇을 만들 때도 찻잎이 고이지 않게, 물줄기가 어떻게 떨어지는 지, 왜 그런지 항상 연구를 해야 해요. 그냥 모양만 그럴 듯 하게 만들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죠.”

 

도헌은 스승이 작업할 때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고 한다. 초인적인 힘으로 같은 자세로 앉아 하루 종일 작업하는 사람 곁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 때문에 감히 곁에 가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생활 할 때는 보청기를 껴서 희미한 음의 높낮이를 느낄 수 있지만 작업할 때는 그 소리마저 방해가 되니 아예 보청기를 빼놓고 작업한다고 한다. 더 고요해지기 위해.

도헌은 한가한 틈을 타 스승에게 물었다. 작업할 때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도공 영혼이 들어와요. 내 의지가 아니라 저절로 만들고 있는 느낌이에요.”

 

-화심도요 임경문, 도헌 도예가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 됩니다.


/ 글·사진=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정보] 화심도요 공식 인스타그램 @hwasimdoyo

완주군 소양면 상관소양로 838-20

hwasimdo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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