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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24] 7부 선을 넘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 2023-12-21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24] 7부 선을 넘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

-故 이동엽 대표를 기억하며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면 전주한옥생활체험관 마당이 시끌벅적 소란해지곤 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진행하던 향음주례를 체험하러 찾아온 수험생들이 날뛰는 소리였다. 한옥생활체험관 대청마루에는 술과 안주가 마련된 십여 개의 소반과 방석이 두 줄로 놓여 있고, 병풍 앞 정면에는 준(술을 담는 그릇), 용작(술을 뜨는 기다란 국자), (손잡이와 발이 세 개가 달린 의례용 잔)이 놓인 탁자가 있다. 탁자 아래엔 물이 담긴 유기 대야와 수건이 마련되어 있다. 학생들이 도포를 입고 유건을 쓴 유생이 되어 자리에 앉으면 이날의 향음주례연을 여는 전통문화사랑모임의 이동엽 대표가 유생들을 맞이했다.


향음주례(鄕飮酒禮)는 관, , , , 상견례와 더불어 육례(六禮)로 정해 향교에서 고을의 어른들을 모시고 젊은이들에게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치는 의식이었다. 영빈례, 헌빈례, 여수례로 나뉜 절차를 요약해 체험이 진행되었다. 조선시대로 돌아간 듯한 공간에서 서로의 낯선 모습에 장난치던 학생들은 절하는 법부터 배운다. 공수, , 배와 같은 절을 따라 하게 되는데 처음엔 오합지졸이다가 집사의 구령에 맞춰 도포 자락이 마루에 쓸리는 소리만 가득 차는 경이로운 순간이 오게 된다. 여수례의 시간이 오면 학생들은 유기 주전자에 든 술을 잔에 따라 서로 주고받게 된다. 아마도 처음으로 마시는 공식적인 음주일 것이다. 술을 맛본 아이들의 반응은 대개 으웩!”소리가 연달아 나왔지만, 간혹 우와~! 맛있다하는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다시 소란해지는 와중에 이동엽 대표는 수능이라는 큰 시험을 끝낸 학생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일이니 학교가 아닌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소중한 일원이 되어달라 강조하며 탁자 밑에 있던 특별한 술잔을 꺼냈다.


계영배(戒盈杯)는 밑바닥에 구멍이 있어 잔의 7부만 따르면 술이 채워지는데 가득 채우면 모두 새어버리는 잔이다. 이동엽 대표는 두 학생을 불러 직접 계영배를 시연시키는데 구멍이 난 잔으로 술이 채워질 때도, 술을 가득 따랐을 때 술이 구멍으로 새어 나올 때도 마술쇼를 보듯 모두 신기하다는 탄성을 연발했다. 학생들에게 계영배가 지닌 의미를 물으면 술을 적당히 마셔라, 욕심내지 말라는 등등의 대답이 나왔다. 질문에 답을 얻은 이동엽 대표는 특유의 하회탈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계영배의 뜻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게 된 유래, 정성껏 빚은 술을 마시는 자세와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상대가 술을 권하는데 더는 마시고 싶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술이 세다고 과시하는 마음도 어리석지만, 거절하지 못해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대학생이 술을 마시다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이 노인은 며칠간 아픕니다. 술을 경계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이어서 가슴에 큰 멍이 들어요. 기분 좋게 마시되 내 주량의 한계인 7부 선을 넘어가고 있다 싶으면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여러분 마음속에 가지고 있길 당부드립니다. 모두 그래 주겠소?”


십 년도 넘은 기억이니 ~”라고 외치던 학생들은 이제 서른이 넘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겠다. 사회라는 치열한 전쟁터에 나가 그들이 마주했을 숱한 술자리에서 한 번쯤은 새하얀 도포를 입은 한 어르신과의 약속을 떠올려 자신만의 7부 선에서 과음도, 과욕도 멈출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것은 또다시 연말, 해가 저문다고 술을 마시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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