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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추대감 강봉춘 이야기2023-10-17

왕대추대감 강봉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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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대추대감 강봉춘 이야기

왕대추대감 강봉춘 이야기



왕대추대감 강봉춘

원가천마을 가천농장 강봉춘 대표


완주의 가을은 감과 대추가 주인공 아닐까. 노랗게 물든 들녘도 진풍경이지만 집집마다 담벼락 위로 붉은 등을 달아놓은 것 마냥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과 대추를 보면 헛헛했던 마음이 뽀닷하게 차오른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에서 살게 된다면 나는 꼭 대추나무를 심고 싶다. 거친 나무수피에 연두색으로 피어나는 반닥거리는 잎이 빛나는 풍경도 근사하고 무엇보다 대추의 옹골찬 단맛이 마음에 든다.

온갖 과실수 중에 가장 마지막에 피는 꽃이 대추꽃이다. 6월 초순부터 대추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매화나 벚꽃 같은 존재감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대추꽃은 잎가지에 오종종 매달려 피고 크기도 아기손톱만 하다. 꽃잎 전체가 연녹색으로 피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대추나무에 꽃이 열려있는지 모르고 지나칠 때가 많다. 비로소 가을이 되고 주렁주렁 열린 빨간 대추를 보고서야 아 이 나무가 대추나무였구나.’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대추에 대한 상식은 여기까지다. 지금부터는 55년 동안 대추농사를 지어온 가천농장의 대표, 전국에서 왕대추대감으로 불리는 강봉춘(34년생)님의 시간이다.

 

완주 경천면 원가천마을. 구룡천에 코스모스가 한창이고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봉춘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가천농장이 눈에 보인다. 당연히 경천면이 그의 고향이라 생각했지만 31살 나이에 부인 양순례씨와 4, 2살 된 어린 아이를 안고 무일푼으로 이곳으로 온 것이다.

 

“1968년 내가 31살에 고향 익산에서 완주 경천으로 이사를 왔어요. 형제가 여럿 있었는데 가진 것이 서로 없었어요.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하는 형편이었지. 그 당시는 경천이 운주면에 속해 있었어요. 훗날에 경천면으로 분리되었지. 처음에 왔을 때 대추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내가 이어서 농사짓게 되었지. 아는 사람 없이 농사를 짓는 것이 힘든 일인데 이곳 어르신들이 나를 많이 끌어 줬지. 어르신들이 나보고 농촌지도자 회장을 해보라는 제안에 하라면 하지요.’ 그렇게 농촌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운주면 농촌지도소의 초대 농촌지도자 회장을 역임하게 된 거죠. 그 당시 이 곳이 취약했던 것이 산이 깊은 곳에서 가까우니까 빨치산출몰이 잦았어요. 익산 같은 곳은 3개월 인공이었는데 이곳은 수년을 겪었지.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죠. 그때 가장 중요했던 것이 식량 자급이었어요. 정부에서 통일벼 장려를 했는데 그때 시골 상황이 뭐시든지 불신하던 시절이었어. 가로막는 생각들이 많아서 새로운 품종이 침투하기 힘들었지. 내가 많은 힘을 들여 사람들을 아울러서 통일벼를 심게 되었지. 그 후에 운주면 곳간이 꽉꽉 찼지. 면장이 어디서 이런 보배가 들어왔냐고 날 끌어안고 좋아했어요. 만나면 막걸리 한잔 하자고 늘 그랬지. 대대로 면장이 날 보배대접해줬어요. 삼십대 초반부터 그렇게 인정받았지. 이 지역의 터줏대감 어르신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외지인이 터를 잡고 살 수 있었지. 내가 소통이 정확하고 바른 면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 72년에는 운주면장 추천으로 내가 독농가로 선발되어서 중앙으로 가서 교육도 받았어요. 전국에서 140명이 뽑혔어요. 그렇게 선발된 독농가는 농촌을 활성화하고 기둥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그가 경천면에 처음 이주했을 때도 이미 집집마다 대추나무를 많이 심긴 했지만 그것이 소득으로 이어질 만큼 활발하지 않았고 농사 규모도 작았다고 한다. 독농가로 선발되어 3주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왔을 때 정부에서 백만원의 정착자금을 지원해줬다고 한다. 그 당시 쌀 한가마니에 칠천원하던 때였으니 백만원 지원금으로 비로소 가난을 면하게 되었고 남의 농사를 벗어나 자신 몫의 땅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대추농사를 짓게 된 것이다.

 

내 성질이 원래 굉장히 부지런하고 관심있게 관찰하고 한 번 보면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이 풀어질 때까지 계속 연구하는 스타일이에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담임선생님이 나보고 봉춘이는 장래에 과학자가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뭐시든지 사색을 하는 힘이 있다고. 언제든 공부하는 데 앞장서는 아이였지. 그 습관이 농사할 때도 똑같아요. 농촌지도자 회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보들을 축적하고 내 식대로 응용을 한 거죠. 새로운 나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어르신들도 더러 있었어요. 그 당시 전국적으로 대추 빗자루병이 돌았는데 그것도 전국적으로 사람들 만나서 치료약을 연구했어요. 그럼 내가 어르신들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방법을 보여주곤 했지. 경천면만 그 병을 방어할 수 있었어요. 대추값이 금값이 되면서 경천에서 생산되는 대추를 좋은 값에 팔 수 있었지. 밭두렁 논두렁까지 꽉 들어차게 심어서 경천면이 대추 일색이 되었어요. 왕대추는 20년 전부터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몇 해 정도 농사지어보니 열매가 굵고 맛도 괜찮고 경쟁력이 있을 거 같더라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심고 면적을 넓혀갔지. 대추나무는 처음 7년은 초보자도 풍년을 만들 수 있어. 열매도 스스로 열고 가꾸기 쉽게 생각하는데 7년 지난 뒤에는 기술력인 역량이나 노하우가 있어야 대추농사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거야.”

 

강봉춘 대표는 내년이면 아흔을 맞이한다. 그즈음이 되면 대부분 은퇴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여전히 전성기다. 더 넓은 앎을 위해 70세에 운전을 배우고 컴퓨터를 배웠다. ‘요양원 갈 양반이 공부를 시작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렇게 늙었어도 뭐시든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지금도 계속 뭔가를 하는 거죠. 뭐든 교육받을 때 나는 맨 앞에 앉아요. 모르면 바로 선생님한테 물어봐야 하니까. 2008년도에 완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유기농업기술사반 들어가서 1년 공부하고 국가시험인데 유기농업기술자 자격증을 땄어요. 2009년도에 는 천연농약전문인 인증을 받았고요. 그 뒤로 농업인대학다니면서 소셜마케팅 수업도 계속 들어왔죠.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이 나보고 인간문화재라고 그래.”

 

오늘은 가을 들어 최저온도 처음으로 13도까지 대추당도가 좋아진다. 가을이 익어가는 때 가을장마가 장애물이다. 102일 첫 수확 날짜 잡혔는데 장마로 잘 못 익는다. 장마가 아쉽네요.

 

강봉촌 대표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올라온 그의 짤막한 글의 일부분이다. 짧고 건조한 문장인데 읽다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찡하다. 아흔을 바라보는 농부가 겪게 되는 기후의 변화에 대한 단상이 담겨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춥거나 너무 가물거나 너무 비가 많이 내린다. 그 현상을 가장 가깝게 느끼는 것이 농부인데 강봉춘 대표는 늘 그랬듯 방법을 생각해내고 방어한다.

대추농사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찾아오면 그는 기꺼이 내어준다. 그렇게 친구가 생기는 것이 행복하다. 단 하나 수줍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강봉춘의 왕대추대감 유튜브나 블로그에 좋댓구알 하기!^^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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