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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반사와 용동마을의 승리]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2023-09-20

[이지반사와 용동마을의 승리]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

[이지반사와 용동마을의 승리]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

[이지반사와 용동마을의 승리]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



마을 뒤 절터에서 고샅길 위 보금자리까지

농사로 일군 삶

 

삼형제 댁 김순복 어르신 

 

무더운 여름. 해가 중천에 올 무렵이면 김순복(65) 씨는 밭일을 멈추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들녘 풍경과 마주 앉은 골목 어귀의 외딴집. 대추나무와 호박넝쿨이 기척을 반기듯 담장 너머로 이파리를 내밀고 있다. 대문이 없어 마당이 훤히 보이는 곳이다.


김순복 씨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그늘진 빨래터. 이곳에 앉아 열기를 식히며 안팎으로 오가는 이웃들과 논밭의 초록을 눈에 담는다순복 씨는 스무 살 되던 해 고창에서 용동마을로 시집을 왔다. 그의 첫 번째 집은 마을 언덕배기에 자리한 보현암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절터가 되었으나, 과거에는 순복 씨네 보금자리였다.

“2002년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어. 농사지어 조금씩 모은 돈으로 구했지. 귀한 집이야. 여기서 아들 셋 다 키우고, 장가도 보내고.”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순복 씨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끊임없이 일했다. 그로 인해 이제는 오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몸 곳곳이 상했다. 몇 해 전부터 심장병을 크게 앓았고 지금까지도 통원 치료를 받는다.

남편하고 같이 날 밝기 시작할 때부터 일하고 나만 점심때 들어와. 잠깐 쉬었다가, 집안일하고 또 잠깐 쉬고. 그러다 저녁때 되면 우리 아저씨랑 막내아들하고 같이 밥 먹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출가할 때까지 순복 씨는 40년의 세월을 용동마을에서 보냈다. 삶의 대소사를 함께해 온 마을 지키기 위해 돼지 농장 재가동 중단을 위한 활동에도 힘을 보탰다. 하루, 이틀이 모여 몇 년에 이른 긴긴 싸움. 순복 씨는 지난 날을 회상하며 혼자 아니라 여럿이서 하니까 지치는 줄도 몰랐다며 미소지었다.

온 마을에 악취가 풍기고 벌레가 들끓어서 사람 살 곳이 아니었어. 이렇게 다 해결이 되니까 큰 짐을 내려둔 것처럼 홀가분해.“

마을 일도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 그에게 남은 바람은 아들 셋이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뿐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지금껏 농사짓는 이유도 키운 작물을 아들 가족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살면서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당 한편에는 순복 씨가 수확한 깻잎과 고추가 햇빛을 머금고 마르는 중이다. 며칠 뒤 깨와 고춧가루로 만들어 보내줄 참이다.

자식들이 외지에 나가 사는데, 부모로서 많은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한 마음뿐이지. 농사지어 먹을 거라도 꼭 챙겨주려 그래. 올해는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양이 적어 걱정이야. 오늘 장에 가서 좀 더 사다 건조해 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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