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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사 전민수 이야기2023-05-16

한약사 전민수 이야기

누군가의 아픔과 슬픔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 


전민수씨(47)는 대학에서 한약학을 공부한 한약사다. 하지만 그가 운영하는 약국은 따로 없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나 가고 싶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꼭 필요한 만큼만 그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주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한약사 보다는 순례자 혹은 나그네로 불리길 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자신을 그렇게 불러주길 바라는지 알 수 있다.

 

원광대학교 한약학과에서 공부했어요. 임교환 약사님은 저의 첫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은 약사 세계에서 비주류였던 분이었죠. 진통제를 먹으면 안 된다, 항생제는 허구다, 전염병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던 분이니까요. 환자가 오면 약사가 약을 바로 제조해서 간단하게 복약 안내하고 빠르게 진행해야 하는데 왜 아프세요 라고 질문을 해가면서 시간을 너무 오래 끄니까 전에 일하던 약국에서는 저를 싫어했어요.


내가 뭐가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스승님에게 배우길 그렇게 배웠어요. 핵심은 그 사람의 아픔이 먼저 보여야 된다는 거죠. 요즘 의료문화에서는 돈부터 보는 이들이 있죠. 사심이 들어가면 판단력이 흐려져서 명확하게 진단을 내려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하는 경우가 많죠. 처음 만난 스승님께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이 좀 어렵죠. 스승님이 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이 기술 익혀서 돈 벌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고 다른 제자들은 다 흘려들었는데 저는 그 말만 들었네요.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가족들 살리고 저도 살았습니다. 돈의 길은 놓쳤지만 고지식하게 가다 보니 내 가까운 가족을 살렸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순례자 전민수씨는 실제로 강아지 네 마리와 함께 차를 타고 다니며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생활을 하고 있다. 행색도 상상하던 그대로다. 긴 머리에 두건 같은 모자를 쓰고 언뜻 보면 청학동에서 읍내에 볼일 보러 잠시 내려온 도인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삶은 사람의 몸, 병과 약, 사회와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닮았다. 대학에서 공부한 것에 그치지 않고 민중의학 분야의 이름난 재야의 고수들과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계속해서 공부하고 그만큼씩 자신을 변화시켜 왔다.

 

부산의 유명한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침을 배운 적이 있어요. 침을 진짜 잘 놓아요. 조선 침이라고 하는데 두께가 엄청 두꺼워요. 근데 안 아프게 정말 잘 놓아요. 워낙 많이 놓다 보니 그 침이 닳았더라고요. 할아버지 침 그렇게 많이 놓으면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난 침 놓은 적이 없다, 나는 그냥 도구다. 라고 말씀하셔요. 그때는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 철학적 깊이를 이해할 수 없었죠. 대학교 과정 이외에 무림의 고수들을 찾아서 전국을 떠돌아다녔죠. 김해의 어떤 할아버지는 정식교육을 받지 않아서 논리적 체계는 없으셨지만, 현장의 살아있는 감각이 있으셨어요. 정읍의 백학의 농원이라고 그곳에는 쳐다만 보면 병이 낫는다는 최영단 할머니가 사셨어요. 그분의 아드님이랑 같이 약국을 했었어요. 그 당시 할머님이 처방했던 처방전들이 다 남아 있어요. 2년 동안 있으면서 그 기술들을 다 봤어요. 박문기 선생님, 박용구 선생님 등 제야의 고수들이 어떻게 하는지 다 봤거든요. 수련의 과정이었죠.”

 

30대가 되어서야 대학에서 한약학을 공부한 전민수씨는 20대 때 실제로 청학동에 있는 관음법문이라는 단체에 들어가 수련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하는 것에 푹 빠져 삭발을 하고 산에 들어가거나 문중 재실에 머물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것들이 그를 그렇게 수련하듯 진지한 구도의 생활로 안내했는지 궁금했다.

 

진짜를 찾고 싶었어요. 그런데 진짜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있더라고요. 그 안에 있던 생각이 뭐였냐면 가정을 이루면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거였어요. 그게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족을 이루는 것. 그 전에는 제가 그런 것을 터부시했더라고요. 외부적인 일 그러니까 지구를 살리고 환경을 살라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그 외에는 세속적인 일, 삿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굉장한 오만함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깨닫고 나서 환자들을 보니 그때 눈이 떠지더라고요. 사람들과 상담을 해보면 드라마틱 하죠. 내 가족의 문제를 직시해서 들여다보고 열리는 경험을 한 뒤에 환자들 만나서 이야기 들으면서도 저 스스로 많이 배우는 거죠.”

 

전민수씨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지금은 완주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언제든 인연이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인연이 되는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감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또 많이 배운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유연함도 여러 시행착오와 실제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고 한다.

 

제가 시골집 살 때 고양이를 키우고 있을 때였어요. 고양이들이 파보장염이 걸렸었거든요. 그때 제가 자신만만했어요. 내가 낫게 할 수 있다고. 한방이 최고다고. 그렇게 한방치료하는 과정에서 한 마리가 죽었어요. 그때도 내가 옳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또 두 마리가 죽었어요


제 아는 지인은 동물병원으로 달려가 수액을 맞추고 살려거든요. 그런데 저랑 살던 고양이는 다 그렇게 죽었어요. 저의 오만함 때문에. 그 친구들이 원하는 것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강요했었죠. 그래서 환자를 만나면 환자의 정보를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나는 내 그릇에 내 정보를 가득 담아서 환자에게 주기만 했죠. 환자의 것을 가져와야 하는데 반성 많이 했어요


보통의 약국이나 병원이라면 환자 만나는 시간이 몇 분 안되요. 저는 처음 만나는 환자분들하고는 보통 4~5시간 정도 면담을 해요. 그렇게 연결된 환자들과는 수시로 전화 통화하며 감정 상태 등을 살피죠. 주치의이자 편한 형, 오빠가 되기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네요. 약사인데 약을 처방해주지 않는 약사인 거죠. 제가 지금까지 살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면 밥 먹고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결국 가장 좋은 약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성스럽게 듣고 말하는 것 아닐까. 사람의 감정은 약의 힘을 이겨버리기도 하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의 감정들을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며 관계 맺는 이런저런 공동체들이 어쩌면 가장 좋은 약일지도 모르겠다. 전민수씨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열린 마음이 되었으니 올해는 다 내려놓고 무슨 일이든 해보자! 하기 싫은 일도 해보자! 결심했다고 한다.


때마침 경기도의 한방제약회사에서 제안이 들어와 인삼재배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스스로 균형 잡힌 관점을 찾아가는 수련의 길 아닐까. 그는 어디서든 순례자처럼 지낼 듯 하다. 늘 진지하게 공부하고 수련하는 사람. 단단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일 테다. 그릇이 단단해야 아픈 사람들의 말을 많이 담아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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