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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면 사봉리 조인식 이야기2023-02-16

동상면 사봉리 조인식 이야기

내가 가야 할 길이 땅에 있소


농업이 국력이라는 말은 내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읽었던 문장이다. 그 말은 내가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기술력이 국력, 반도체가 국력, 우주산업이 국력 이라는 알 수 없는 말들로 대체되었다. 먼 나라의 전쟁은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근 몇 년 사이 우리는 모두 느꼈을 것이다. 최신 스마트폰을 소유해봤자 충전할 수 있는 전기조차 끊길 수 있다는 것을. 국력의 근간을 이루는 기술력들이 아무 소용없는 상황이 올 수 있음을.


조인식씨와 나눈 이야기들이다. 조인식씨는 1968년생 원숭이띠로 천생농부다. 농부들이 대접받지 못하고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인 요지경 같은 세상 속에 있지만 그는 여전히 흙을 만진다. 흙 속에 살면 고생한다고 어린 자식 도시로 유학을 보냈건만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득달같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키워서 수확을 할 때 그 행복한 마음은 농부밖에 몰라요. 소득이 크냐 작냐를 떠나는 거예요, 그 맛을 보면 그거를 멈출 수가 없는 거지.”



나는 기어코 시골로 간다.

연석산과 대부산, 학동산이 둘러싸고 있는 동상면 사봉리 묵계마을. 조인식씨는 고향이자 일터인 이곳에서 동상산골농원을 운영하며 곶감농사를 짓고 있다. 곶감일은 가을부터 설 전 까지가 바쁜 때여서 지금 그의 곶감 덕장은 고요한 겨울을 즐기고 있다.

어머님이 농사짓지 말고 전주로 나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데 취직하라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유학을 보냈는데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죠. 처음에는 젊은 자식이 농사를 같이 짓는다고 하니까 반대를 많이 했죠. 근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고 사는 게 꿈이었어요. 나는 시골로 간다라고 마음을 먹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이 여기 시골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인식씨는 제법 이름난 곶감 농업인이다. 전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 납품한 적도 있고, 정부 기관에도 여러 차례 선물용 곶감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곶감 농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도 대단하다. 밭에 감나무를 심으면 더 쉽게 곶감을 생산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산비탈에 감나무를 심어 더 풍미 있는 곶감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고 농가 소득을 위해 재배하기 좋은 작물을 연구하고 공부하고 있다.


저는 지금도 산 높은 곳을 고집해요. 맛 자체가 틀려요. 산 높은 곳에 있는 감은 살도 단단하고 당도도 높아요. 연석산 줄기 600~700고지에 감나무를 심었죠. 트럭을 타고 가서 포크레인 바가지에 사람이 올라가서 감을 수확해요. 예전에는 사람이 지게 지고 산에 가서 감나무 타고 올라가서 수확했어요. 고종시는 껍질이 얇아서 멍이 들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거든요. 수확할 때 와인 잔 다루듯 조심해야 해요. 곶감 농사를 먼저 짓던 형님들이 완주 곶감에 대한 붐을 일으켰죠. 농산물 특산품화를 목적으로 하면서 상품의 질도 많이 높이려고 노력을 했고 곶감의 질이 좋아졌죠. 저 같은 경우도 덕장에 에어컨 냉난방 기계 달 때 다 미친놈이라고 그랬어요. 여기다가 이렇게 돈을 쓰냐. 내가 아마 최초로 했을 거야. 에어컨으로 냉난방 해결하고 비 오는 날은 제습 할 수 있으니까. 기후변화 때문에 농업도 예전 그대로면 힘들어요.”





수입으로 따지면 포크레인일이 주업이지만 인식씨는 자신의 주업은 농업이라 말한다 덕장 앞에서. 트럭을 타고 산비탈을 올라 감작업을 하고 포크레인을 싣고 벌목작업을 다니는 등 인식씨의 중요한 수단이다. 윗동네 어르신이 조인식씨의 덕장 시스템을 구경하러 오셔서 설명 중이다. 인식씨가 이장이 되면서 마을사람들과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색다른 간판을 제작했다


아버지처럼,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늙어 가고 싶어요.

한 때 동상면사무소 직원들은 조인식씨가 나타나면 3대 천왕이 왔다고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 이장협의회 총무, 체육회 사무국장 일을 함께 하고 있어서 생긴 별명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일에 집중하느라 지역사회 활동이나 봉사활동도 거의 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지역의 일들을 하나씩 챙기게 됐고 지금도 기회만 되면 주민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챙겨보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그만큼 동상면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내가 동상면에서 3대 천왕이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 이장협의회 총무, 체육회 사무국장 일을 동시에 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너무 벅차기도 하고 2~3년 하는 임기를 다 채워서 내려놓고 이장협의회 총무는 그대로 하고 있어요. 동상면 주민자치위원회는 2018년 동상면 발전위원회로 발족 했는데 그때부터 열심히 활동했었죠. 한때 농어촌공사에서 동상저수지에다 태양광 설치한다고 할 때 우리가 동산면 주민발전위원회를 만들었거든요. 제가 그때 사무국장 할 때인데 진짜 힘들었어요. 우리 고장의 이 아름다운 곳에다가 태양광 설치한다고 농어촌공사에서 데모하고 군청에 가서 집회하고 했을 때 환경에 대해서 공부를 참 많이 했어요. 뭘 알아야 제대로 구호도 외치고 그러죠.”

 

조인식씨는 작년부터 마을 이장 일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도 이장 일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는 너무 경험이 없어서 이장 일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제대로 그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이장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는 봉사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어요. 요즘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생각해요. 포크레인 가지고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주는 거죠. 몇 년 전에 집중호우가 와서 난리 났을 때도 제 포크레인 끌고 가서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기름 값도 안 받고 일했어요. 요즘은 대아저수지 주변 벌목작업을 하고 있어요. 벌목해서 생긴 나무를 동산면 마을마다 땔감으로 골고루 나눠주는데 봄 오기 전에 마무리 해야죠. 그리고 우리 동네 앞에 냇가가 좋아요. 제가 우리 동네 어른들을 설득시켰어요. 우리 동네 냇가는 우리가 지키자고요. 일급수에 사는 물고기나 다슬기도 무분별하게 우리부터 잡지 말고 지키자고요. 우리 동네 냇가에 먹바위와 벼루소라는 좋은 곳이 있죠. 소나무도 한그루 있는데 그게 꼭 붓 같이 생겼지요. 동네의 유명한 지명 유래를 개발해서 문화컨텐츠도 만들고 싶어요.”

 

도시에서는 만나기 힘든 농부들을 완주에서는 실컷 만나게 된다. 사는 것이 무의미할 때, 앞날이 불안할 때 농부들을 만나보시길.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안심이 된다. 하늘과 땅, 물과 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배어나는 특유의 기운 때문일 것이다.


조인식씨는 자신의 시가 실렸다며 두꺼운 동상면지를 꺼내 보였다. ‘아버지의 지게라는 시다.



그저 몸으로만 농사를 짓던 시절. 아버지 따라 지게 지고 감 따러 산비탈을 오를 때, 네 다발을 지게에 지고 나르던 그 뒷모습이 얼마나 커보였을까. 비로소 아버지와 같은 짐을 지고 연석산 5부 능선까지 올랐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조인식씨. 고향마을에서 큰 욕심 없이 흙을 만지며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살다 고향땅에 묻힌 아버지처럼. 홀로 앞서서 빛나기 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고생하며. 먼저 그렇게 살다 가신 분들처럼 늙어가고 싶다고 한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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