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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 대흥마을이 좋아!] 소양천 줄기 따라 뻗어내린 마을2023-01-09

[소양 대흥마을이 좋아!] 소양천 줄기 따라 뻗어내린 마을



한지를 말릴때면 온 마을이

흰 파도치듯 출렁였지


소양천 줄기 따라 뻗어내린 삶의 터전

 

연일 영하권의 추운 날씨가 이어지던 지난 평일, 밤사이 푹푹 쏟아진 함박눈으로 온 마을이 하얗게 물들었다. 소양천 줄기 따라 자리한 대흥마을에도 어김없이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있다. 그 사이를 한순철(74) 이장의 빨간색 오토바이가 분주히 오고 간다. 이날 마을회관에서 지급되는 완주군 제6차 재난지원금 수령을 위해 필요한 준비물과 시간 등을 집집마다 알리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온 주민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둘러앉아 그간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눈다. 한적했던 마을회관에 웃음소리가 가득찬다. 손녀와 함께 온 박영희(78) 어르신은 지급 받은 카드를 보며 우리 집은 딸이랑 손녀랑 세 식구가 사는데 생활비에 보탬이 많이 되겠다고 웃었다. 이종례(80) 어르신은 날이 상당히 추워져 주유소에 기름 사러 가려고 한다. 요새 기름값이 많이 올라 걱정이었는데 이걸로 한시름 걱정을 덜었다고 말했다.

 

그림책 대흥마을이 좋아!’ 출판기념회 열려

지난 1221일 오후,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 내 그림책 교육문화 공간(이하 그림책공감)’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림책 대흥마을이 좋아!의 출판기념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림책 '대흥마을이 좋아!' 속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을 주민들이 책을 선물받고 즐거워했다.


대흥마을은 지난 2021년 완주군 마을로 청년 인큐베이팅 공모사업을 통해 미운영 시설인 마을찜질방을 개보수해 그림책공감문을 열었다. 이곳은 마을과 지역 주민들이 그림책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이자 교육문화공간이다. 이날 그림책공감에는 그림책의 주인공이 된 마을주민들과 그림책 작가인 소양중학교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책 출판을 기념하고 축하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순철 이장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주고 책으로 만들어주니 감사한 마음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림책공감은 지난해 전라북도 생생마을플러스사업에 선정되어 <그림책 출판 캠프>를 진행하면서 이번 그림책을 만들었다. 소양중학교 학생들이 기자단을 꾸려 대흥마을 곳곳의 대문을 두드리며 마을 어르신들의 삶을 경청했고, 그들이 인터뷰한 마을 주민의 삶을 그림과 글로 엮어 한권의 그림책으로 만든 것이다.

대흥마을 김진선 어르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소양중학교 김보민(15) 양은 그림을 그릴 때 이야기의 시점이 옛날이다 보니 과거에 중점을 두고 그렸다. 원래는 그림에 별로 자신감이 없었는데 쉽게 도전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전주고등학교 정현빈(19) 군은 소양중학교를 졸업하고도 아직도 종종 작은도서관을 찾고 인연을 이어가다가 그림책 작가로 참여하게 됐다. 윤석영 개발위원장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옛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렸다어릴 때나 그림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림책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림책공감 박미경(42) 대표는 요즘 세대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이렇게나마 소양 지역의 어르신과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어서 의미 있게 생각한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마지막엔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하이얀 한지 물결 일렁이던 풍경

대흥마을 한순철 이장의 고향은 소양면 해월리다. 그곳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후 서른 살 무렵 이곳을 찾았다. 그는 옛날 대흥마을은 한지 산업 호황으로 규모가 매우 컸고,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으로 북적이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마을은 날마다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왔다가 빈집이 없어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위_ 하늘에서 바라본 대흥마을의 모습.

아래_ 오랜만에 회관에 모두 모이니 얼굴도 보고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좋다는 어르신들.


지금은 인근의 대승한지마을이 더 유명하지만, 한지 제작하기로는 대흥마을이 최초였어. 주민들 중 닥나무 껍질 한번 벗겨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지. 옛날 한옥은 문하고 벽, 장판에 모두 한지를 사용했고 명절이면 대부분의 집들이 창호를 새로 발랐으니까 수요가 풍부할 수밖에 없던 거야. , 전국 각지로 한지를 제작해서 차에 실어보내기도 했어.”

익산 왕궁에서 대흥리로 시집와 40년 넘게 살았다는 박영희 어르신도 그 무렵 한지를 만들었다. 그가 낳은 막내둥이가 갓난쟁이일 때부터, 큰아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이어졌으니 기나긴 세월이었다. 대흥마을의 주민들은 대부분 한지를 통해 자식교육을 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깥양반이랑 오랫동안 한지 만드는 일을 했어. 남원에서 종이가 오면 돌가루를 풀이랑 넣어서 방아 찧고, 판판해지면 기계로 기름칠해 풀을 붙여 말렸지. 주문이 계속해서 들어오니까 하루도 쉴 틈 없이 일했던 것 같아. 한지 덕에 이렇게 먹고 살았지, 이 일을 안 했더라면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야.”

한지를 건조할 땐 대나무 발을 사용하여 뜬 종이를 차곡차곡 쌓은 후 물기를 제거했는데, 주로 바람이 통하는 냇가나 볕이 좋은 곳에 두다 보니 마을 곳곳에 한지가 널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주민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언덕에 올라가 풍경을 내려다보면, 한지가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 꼭 하얀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위_ 완주군재난지원금 수령을 위해 한데 모인 마을 주민들.

아래_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순철 이장.


이러했던 대흥마을의 한지 산업은 1988년 이후 농촌주택개량화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점차 규모가 감소되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창호를 대신했고, 새롭게 등장한 벽지와 화학 장판이 한지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단 두 가구만이 남아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제는 마을을 찾는 사람들도 적어졌을 뿐더러 함께 한지를 만들던 주민들도 연로하여 예전과 같은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세 살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이사왔다던 김정애 어르신도 어느덧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니까. 백중날 당산나무에서 그네도 뛰고, 모정서 음식도 같이 해서 먹고, 농악놀이도 하고. 가만 생각해보면 번성했던 마을이 그리운 게 아니라 여럿이 함께하면서 정겹던 풍경이 그리운 것 같아.”

 

[박스] 그림책 대흥마을이 좋아!’

그림책공감에서 기획·제작한 그림책 대흥마을이 좋아!’는 소양면 대흥마을 주민 일곱 명이 마을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소양중학교 학생, 졸업생이 그림으로 그려 엮은 책이다. 이는 2022년 전라북도 생생마을플러스사업의 지원으로 제작되었고 이육남 작가의 그림 지도도 함께 이뤄졌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순철, 윤덕영, 안봉선, 박영희, 김정애, 김진선, 권원덕이다. 이들은 각자 어려웠던 시절 옛 이야기부터 마을에 오게 된 이유 등 과거와 현재를 들려주었고 학생들은 이를 글과 그림으로 풀어냈다. 삶의 터전인 대흥마을에서 평생 토박이로 살아온 사람들과 운명처럼 이끌려 새로 정착한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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