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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0] 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2022-10-24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0] 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

벼가 익는 들녘의 색, 청주 

 

한 잔의 술을 받아들면 먼저 색을 감상하고, 향을 음미하고, 그리고 입안에 머금어 맛을 느낀다. 술이 어떤 빛깔을 띠고 얼마나 맑고 투명한가는 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먼저 눈으로 술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술 청주는 벼가 익을 무렵 초록과 황금빛이 뒤섞인 가을 들녘의 색이다. 대중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와인, 맥주, 사케 등 나라마다 자랑거리인 술들은 독특한 색으로도 정체성을 가지듯이 담황색 청주 역시 세계 어느 술과 견주어도 지지 않는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하다.


막 짜낸 백색의 탁주를 병에 담아 놓으면 2~3일 안에 맑은 술과 바닥에 가라앉은 하얀 침전물이 층을 이루게 된다. 맑은 술만 조심스럽게 따라 다른 병에 옮겨 담아 2~3주 더 숙성시키면 잔여 침전물이 마저 가라앉는다. 뜨거운 물로 소독해 햇볕에 말려둔 유리병에 맑은 술만 다시 부어 마개를 닫으면 청주를 얻으려는 술 빚는 사람의 일이 일단락된다. 비로소 완성된 청주의 색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전통방식으로 청주를 얻으려면 용수를 사용한다. 술독 내부는 가벼워진 밥알과 밀 껍질이 표면에 떠 있고, 가운데 부분은 액화된 술이 차 있고, 바닥엔 무거운 밥알, 누룩 지게미, 발효되지 못한 전분 등이 가라앉아 있다. 이때 대나무 살을 엮어 만든 용수를 술덧 속에 박는다. 액화된 술이 용수의 대나무 살 틈새로 쪼르르 모이게 되는데 처음엔 탁한 술이 고였다가 며칠 지나 침전물이 완전히 가라앉으면 조심스럽게 청주를 뜬다. 인위적인 압력을 가해 술을 짜서 침전시키는 방법보다 자연스럽게 가라앉혀 떠내는 것이 가장 맑은 청주를 얻는 방법이다. 다만 대나무로 만들어진 용수는 삶아 햇볕에 잘 말려두어 용수에 있는 잡균이나 잡내가 술에 배지 않도록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청주(淸酒), 맑은 술이다. 대개 밀 누룩으로 빚는 우리술은 누룩 속에 든 한 줌의 밀과 양조용 쌀이 발효되어 조화된 옅은 노랑색을 띤다. 양조에 사용된 누룩의 양이 많을수록 노랑 빛깔이 진해지고, 알콜 도수가 낮거나 잔당이 많아 단맛이 강할수록 술은 맑지 않다. 그러니 누룩을 적게 쓰고 알콜 발효를 잘 시켜낸 술일수록 연노랑 빛깔을 띠며 맑고 투명하다. 술을 잘 빚는 고수들이 빚은 청주를 보고 있노라면 숲의 요정들만 드나드는 깊은 황금 연못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햇빛을 온전히 투과시켜내는 맑고 투명한 담황색은 보는 것만으로 술이 지닌 향과 깔끔한 맛, 높은 알콜 도수를 가늠하게 되는데, 예상은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 일제강점기 이후 백 년에 걸친 우리 술의 암흑기를 지나오면서 우리는 술의 가치를 와인이나 위스키, 사케와 비교해 평가하는 기이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히려 요즘 젊은 세대에게서 편견을 떠나 우리 술을 느끼는 대로 평가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쌀로 빚은 와인(rice wine)’이라는 영역에서 한국 술의 진수라 할 청주가 그 아름다운 색으로 전 세계를 매료시킬 때도 머지않았음을 예감하는 변화이기도 하다.

 

벼가 익는 가을 들녘의 색을 담은 청주를 만나거든 투명한 유리잔이나 백자 잔에 따라 조금은 길게 눈으로 먼저 맛보시길 바란다. 술잔에 담긴 맑고 투명한 색을 발현시키기 위해 곡식을 키워낸 대지와 햇살, 비와 바람, 농부의 일, 술을 빚어낸 이의 노고, 미생물들이 만들어낸 시간의 변화를 눈으로, 그다음은 코로, 입으로 천천히 느껴보시길 바란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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