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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고산천을 1시간씩 걷는 성실한 동네주치의! 2022-08-16

매일 고산천을 1시간씩 걷는 성실한 동네주치의!



 고산 성모의원 이원용 원장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적당히 먹고 충분히 쉬고 부지런히 운동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는 장점도 있어서 몇 년 전부터 하루 만보걷기를 실천하고 있지만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그마저도 건너뛰기 십상이다. 그래도 기회만 되면 친구들과 함께 고산면 소재지를 감싸고 흐르는 만경강 고산천변을 걷는다. 이른 점심을 먹고 산책길에 오른다면 검은색 레깅스 위에 반바지를 입고 아주 빠른 걸음으로 같은 길을 걷는 낯익은 산책자 고산성모의원 이원용 원장(54)을 만날 수 있다.


 


저는 점심시간에 고산천변을 한 시간씩 걸어요. 병원에서 동락가든까지 걸어가면 십분 걸려요. 그리고 하수종말처리장 지나서 원산마을 근처까지 갔다가 독촉골 다리 찍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한 시간 걸려요. 걷는 중간에 저희 병원 오시는 주민분들 만나서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고 그러죠.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사계절의 변화를 항상 볼 수 있거든요. 고산은 자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산책을 시작한 지는 한 10년 되요. 저도 중년이 되면서 몸의 변화가 느껴지기도 하고 환자들한테는 건강 생각해서 부지런히 걸으라고 하는데 의사인 내가 안 걸으면 이상하잖아요.”

 

이원용 원장은 20022, 서른넷 청년 의사 시절에 지금 자리에 병원을 열었다. 벌써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날렵하고 열정 넘치던 청년 의사는 어느새 머리카락이 희끗하고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차분한 중년의 베테랑 의사가 됐다. 10년 전, 당시 이원용 원장과 같은 나이에 고산에 자리를 잡고 지금껏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도 20년 전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료틈틈이 신속항원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잠시만 방 호복을 입고 있어도 땀이 물흐릇 흐른다.

 

원래 살던 곳은 전주 아중리 인교마을이라는 곳이에요. 전주라고는 해도 예전에는 버스가 하루에 여섯 번 다니는 시골이었죠. 원광대에서 신경외과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다가 지리산 뱀사골에서 공중보건의를 3년 했어요. 그리고 충북 음성에 있는 친구가 하는 병원에서 일하다가 고산에 병원 자리가 있다고 해서 개원하게 된 거죠. 원래 살던 고향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가 나서 마음이 갔어요. 고산에 개원할 때 주소지도 고산으로 옮겼어요. 완주군민 20년 차입니다. 세금 많이 냈다고 표창장도 받았어요. 고산이 이제는 집 같아요. 개원할 때, 한솔의원 원장님이 고산에서는 제일 오래 하신 분인데 지금은 은퇴하셨어요. 그다음에 최수영 내과가 생겼고 그 뒤 세 번째로 제가 개원한 거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려있지 않았어요. 지금 율곡리 쪽으로 돌아가는 버스 다니는 길 하나밖에 없었어요. 새로운 길이 뚫린다는 것이 장단점이 있어요. 환자분들도 큰일 아니면 고산을 벗어날 일이 없어서 읍내에 있던 병원들이 사람들로 북적거렸죠. 도로가 뚫리면서 고산 인구도 많이 빠져나갔어요. 병원도 전주로 많이 다니시고요.”

 

병원이야 당연히 아픈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어떤 분들이 병원을 찾는지 물어보는 것은 좀 뜬금없는 질문이겠지만 그래도 소도읍의 작은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풍경이 궁금했다.

 

초창기에 오셨던 어르신들은 많이 돌아가시고, 그 당시 젊은 총각이었던 분들이 할아버지가 되셨지요. 할머니 손잡고 오던 꼬마가 지금은 자기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해요. 여기 있으면 제가 한 사람의 생애를 지켜본다는 생각이 들어요. 환자분들이 응급상황일 때 저를 먼저 찾아요. 119 응급차 타고 가다가 우리 병원에 들렀다 가는 경우가 많아요. 어르신들이 저를 보고 어디 병원을 가야 하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꼭 우리 병원에 들렀다 가요. 어르신들이 생각할 때는 저희를 믿고 내 집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특징이 행락객들이 많아요. 생각보다 응급환자들이 찾아오기도 해요. 벌에 쏘이는 환자들도 많아요. 가끔 쇼크 현상도 발생하니까 빨리 판단해야죠. 늘 긴장해야 해요.”


 

이용원 원장은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의사다. 아파서 병원을 찾아오지만, 마음이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에게 말을 하게하고 그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어디든 단골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식당이나 카페도 그렇고 자동차정비소나 옷가게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아픈 곳을 치료하려고 들르는 병원이야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어르신들이 우리병원이라고 부르며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소도읍에서 20년 넘게 한 곳을 지키고 있는 이원용 원장 같은 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은 병원이 새로 생겨도 안 가고 여기는 우리병원이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어디서 정보를 알아 와서 저 병원은 저런 것도 하는데 우리 병원도 해야지 손님 안 뺏긴다고 저보다 더 신경 써 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르신들은 외로우니까 병원 와서 사람 만나려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파서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외로워서 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소일거리 삼아서 일부러 와서 얼굴도장 한번 찍고 가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희 병원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첫 번째가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외로워서 왔는지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 알려면 환자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어야 해요.”

 

공감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의사가 환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고 어떻게 좋은 처방을 내릴 수 있겠는가. 이원용 원장은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은 이야기하기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아파서 병원을 찾아오지만, 마음이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에게 말을 하게하고 그 말을 들어주는 것이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안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최대한 빨리 마음의 창문을 여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내 안의 스트레스가 환기가 되잖아요. 그것을 최대한 뱉어 내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꾸 내 몸 어딘가에 병이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환자들한테 부탁해요, 자꾸 말하는 훈련을 하라고 해요. 그래서 환자들에게 일부러 이야기를 시켜요. 이야기하고 울다 가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럼 친구들이 나보고 자네가 정신과 의사냐 그러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환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아요. 약 처방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건 들어주는 거예요. 몸이 아파서 찾아오지만 마음이 원인인 경우가 많죠.”

 

인터뷰를 글로 옮기면서 그렇다면 의사인 이원용 원장은 누구에게 자기의 마음을 이야기할까가 궁금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깐이라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나도 그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다.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에게 다시 이야기를 청하긴 어렵고, 그가 하루 한 시간 만경강 고산천변을 걷는 성실한 산책자로 살고 있으니 그의 이야기 듣기는 만경강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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