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웃어라 공동체

> 이달 완두콩 > 웃어라 공동체

[사람의 노래] 21. 벌거벗은 소리 2022-08-16

[사람의 노래] 21. 벌거벗은 소리

사람의 노래

㉒벌거벗은 소리


날이 더워지면서 사찰음악회, 야외공연 등이 잦아지니 완주 인근에 오가는 지인들에게 연락이 온다. 음악을 하나씩 짊어지고 오는 친구들이 낡은 나의 집, 하나밖에 없는 방에 함께 머물며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하루 정도의 시간을 보내자니 내가 처음에 그랬듯이 무장해제가 되어 이런저런 상념들을 길게 풀어놓는다. 객지에서조차 눈 뜨자마자 세수하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악기를 풀어 어제 저녁에도 연주를 했음에도 손가락이 예전같지 않다며 짜증을 내는 모습이 불안해 보인다.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거나, 스스로의 상태를 파악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거나, 연주날 준비가 안 되어있다며 투덜거리지 말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그랬어라며 평가하던 서울에서의 내 모습은 이제 없고 그들을 바라보는 안쓰러운 마음이 앞으로 나온다. 결과를 철저히 개인의 능력치로 생각하던 예전의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보기때문인 것같다.


이른 아침 집에서 울리는 연주자의 연습소리는 공연장에서 듣는 아름다움을 위한 음악과 다르다. 스케일로 시작하여 원하는 음정과 아티큘레이션이 나올 때까지 쪼개고 끊어 반복을 거듭하고, 피아노 반주와 형형색색의 드레스, 눈이 부신 조명과 울림이 좋은 음향을 다 벗겨낸 벌거벗은 연주자의 소리이다. 동네 할머니도 아침 동이 트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어제 생각해 놓은 일을 하기위해 밭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어제 아무일도 안 한듯 매일매일 새롭게 차오르는 다음 일을 하러 가는 벌거벗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도시에서 온 친구들이 내뱉는 이야기가 하나로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한껏 높여 잡은 기준치에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인생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과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자격지심, 그리고 목숨 바쳐 사랑하는 음악을 향한 수십 년의 짝사랑 밑에 숨기고 있던 상처가 조용한 완주 허름한 집에 와서 겨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초복이라고 뒷집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은 녹두와 토종닭으로 죽을 끓이셨단다.어제부터 커피와 콜라만 마셨다는 친구가 대접에 담긴 닭죽을 다 비워낸다. 워낙이도 양이 참 적은 친구는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할머니의 투명하고 노란빛이 숨겨진 갈색 장아찌와 열무김치도 열심히 집어 먹는다. 할머니의 밥을 먹고 음식이 혀에서 끝나지 않고 나를 만드는 느낌을 처음 몸으로 느꼈다는 내 말이 이제 이해가 된다며 느리지만 밥상 구석구석 수저를 움직이는 모습이 참 예쁘다.


우리가 음악을 잘 하지 않아도, 우리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전시키지 않고 세상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낸 것이 없다 해도, 인사 잘 하는 마을 큰애기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리고 날 더운 여름에 먼 곳에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부녀회장님이 마을 대표로 직접 골라온 세상 맛난 토종닭을 얻어 정성껏 끓인 할머니의 초복 닭죽을 먹을 수 있는 귀한 사람인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잘 하고 있는지, 기준점 없이 허공에 뜬 손에 닿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치를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사람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이 마루에 켜켜이 쌓이는 것을 보며 여기 완주 고산의 허름한 구옥에서 그랬듯이 돌아가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대견한 자신을 보고 조금 더 평온한 마음 갖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웃어라 공동체] 구이중학교 오케스트라
다음글
[아동친화 이야기] 작은 실험과 도전이 '정책 혁신'이 되는 세상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