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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친화 이야기]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2022-05-19

[아동친화 이야기]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아동권리, 지난 100년과 앞으로의 100년


2022년은 어린이날이 100주년 되는 해입니다. 벌써 100주년이 되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고, 지난 100년 동안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100년전인 1922년 은 국권을 잃고 일본 제국주의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받던 암울한 일제강점기(1910~1945) 였습니다. 당시 민족의 지도자들은 사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소년운동에 관심을 기울였고, 사회활동의 일환으로 잡지와 신문을 통해, 혹은 종교단체나 연합활동을 통해 미래세대인 아동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사람대우를 하자는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 시작은 1921년 천도교소년회의 출범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에서 명칭이 바뀌어 사용한 것으로, 인권사상을 중심가치로 삼아 모든 인간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바라본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아동역시 평등한 사람이므로 아동존중사상과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학의 3대 교주인 손병희는 1905년 동학을 천도교로 변경하고,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합니다. 훗날 어린이날을 만들고 아동인권을 주장한 소파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라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영향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서도 1923년 3월 아동문제를 연구하는‘색동회’의 창립과‘조선소년운동협회’의 결성으로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치러지게 됩니다. 이 자리에서 소파 방정환은‘소년운동의 기초 조건’을 발표하며, 어린이를 성장하는 힘을 가진 존재로 천명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장유유서 사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던 당시 사회에서 아동인권 선언과 아동잡지《어린이》등의 창간은 누가봐도 파격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동권리 100년사가 시작되는 뜻깊은 순간입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 기념식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첫째,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하게 하라.
둘째,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셋째,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한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1년 뒤인 1924년 5월에는 조선소년운동협회에 가입한 단체가 123개에 이를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으나 그 이후 어른들의 이념과 사상의 반목으로 아동인권에 대한 대전환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후 1937년 일제는 소년운동을 모조리 금지하고, 운동단체마저 강제로 해산하면서 어린이날의 명맥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던 그 이듬해 1946년 5월 5일, 제24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다시 열렸고(이때부터 5월 5일은 어린이날로 확정),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공포되었습니다.  


 2022년 5월 5일 완주의 어린이날 기념식, 약 2천 여명의 아동과 청소년이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면서 축제가 풍성하게 치러졌습니다. 완주군 남녀 아동대표 2명이 어린이헌장을 낭독하고,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100년전, 일제강점기의 어린이날 행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아동인권의 지평을 국제적 수준까지 넓히고, 동시에 완주가 바라고 노력하는 사회 책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완주는 아동권리가 실현되는 아동친화도시를 비전으로 다양한 도전과 성과를 이루어냈으며, 전국최초로 아동옴부즈퍼슨사무소를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앞으로 100년, 아동친화도시 완주는 법과 제도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아동의 권리가 실현되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본 기고문은 완주군의 공식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홍문기 (완주군청 교육아동복지과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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