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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노래] 13. 완주에서 맞는 두번째 김장철2022-02-03

[사람의노래] 13. 완주에서 맞는 두번째 김장철


사람의 노래

⑮ 애기애기 알타리


완주에서 맞이하는 두번째 김장철이다. 살살 추워지기 시작하며 고추가루를 빻아대던 늦가을부터 시작하여 갖은 재료로 김장을 담그는 초겨울까지 서울 지인들과 가족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약 안친 고추가루를 사라, 볶지 않은 들기름을 짜달라고 해보아라, 주변에 토종생강농사 지신 분 있니, 대봉시를 선물로 보내려는데 거기 가격은 어때, 소고기가 좋다던데 햇볕 좋을 때 육포 좀 만들어볼래?”
종류도 다양하고, 요구하는것들도 각양각색으로 은근히 까다롭다.


작년에는 신이 나서 동네분들에게 물건을 사서 서울로 날랐다. 신이 난 정도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가족 먹이시려고 정성껏 키운 농산물을 우리가 얻어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며, 가격같은 거 따질 때가 아니라고 내가 키운 농산물도 아닌데 살짝 으스대며 지인과 가족들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그거 딱 일년하고는 벌써 머리가 살살 게을러진다. 정성껏 지으신 농산물을 돈 드릴테니 좀 나눠달라고 부탁드리는 일도, 고산시장까지 가서 택배상자를 구하는 일도, 그걸 들고 우체국으로 가서 무게가 많다며 거절 당하는 일에 슬슬 현실을 자각하게 된다.


핸드폰을 열면 온갖 계절농산품의 가격비교까지 내 손에 주어지고, 돈만 지불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세상임에도, 지인들이 나의 완주살이에 함께 흥분하며 뭔가를 부탁하여 사고 싶은 게 뭘까 생각해본다.


우선은 외지에 혼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주변에서 뭐라도 좀 사드려면 이쁨을 받을까 하는 염려의 마음과 함께 내가 농사지은 채소는 아니지만 시골에서 아는 사람에게 직접 농산물을 받아 잠시나마 마치 스스로 먹거리를 구한 듯한 행복감을 원하는 게 아닐까.
나 또한 그렇다. 이사 온 새집 뒷편 작은 공간에 배추 모종을 심고 알타리 씨앗을 뿌려놓았다. 남들보다 늦게 뿌리고 심은 씨앗과 배추들은 햇볕도 많이 들지 않고 아무도 돌보지 않은 땅에서 나름 열심히 자라났지만 알타리는 이제 겨우 손가락 굵기만큼 자라서 김치용으로는 절일 수도 없고, 배추는 아직도 결구를 하지않고 산발이다.


누군가의 조언으로 중간에 물에 탄 막걸리 한 번 뿌려주고 가끔씩 쳐다봐준 게 전부인데 자기도 알타리라며 손가락처럼 얇지만 제법 콜라병 몸매를 갖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장한지 모른다. 배추벌레의 식량으로 큰 희생을 하고 있는 배추는 잎 사이마다 배추벌레 똥까지도 껴안고 있어 뽑을 엄두가 안 나지만.
그래도 내가 그 작은 씨앗들과 연결되어 흙에게 씨앗을 부탁하고, 햇빛과 벌레, 비처럼 내가 콘트롤할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이 작은 떡잎들을 키워내고, ‘대단하고 신기하다!’며 며칠에 한 번씩 그 앞에 앉아서 조그마한 이파리들을 바라볼 때마다 잔잔하지만 속이 꽉 찬 행복감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자연과 닿아있는 느낌이랄까.


무거운 김장 김치를 택배로 보내고 지친 저녁에 날이 추워지니 알타리를 뽑으라는 이웃들의 말씀을 듣고 그 어리디 어린 알타리들을 다 뽑았다. 데쳐서 냉동도 시키고 된장과 들깨가루에 지져 그걸 또 들고 이리저리 나른다. “이거 약도 안하고 혼자서 자라난 애기들 바로 뽑아서 데친거야, 김치는 못되도 나물이다 생각하고 먹자. 들깨가루며 들기름도 다 아는 분들이 농사지으신거야.”라며 마트 채소만 먹는 서울사람들에게 다시 으스대며 또 겨울을 맞는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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