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소수다] 학교밖청소년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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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날라리’가 아니랍니다
“학생이 이 시간에 밖에 있어도 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중학교는 졸업해야지.”
우리 곁을 둘러싼 것 중 보편적이고 눈에 띄는 것들은 쉽게 인정된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존재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건 만연하게 통용되고 있는 사회적 관념 뒤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청소년은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의 테두리 바깥에는 학교밖청소년이 있었다. 학교밖청소년이란, 만9~24세 청소년 가운데 학업을 중단하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들을 말한다.
학교를 떠난 건 같아도, 우린 모두 달라요
전주 고사동 카페 안. 갓 내린 핸드드립 커피 향이 고소하게 풍겼다. 앳된 얼굴을 한 여성 두 명이서 앞치마를 입고 차분하게 커피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데운 물로 적신 여과지 위에 원두 가루를 올려놓고 가느다란 물줄기로 원을 그렸다. 이날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주관하는 바리스타 직업교육에 참여한 박수진(19), 최유경(19) 양은 모두 학교밖청소년이다.
첫 번째 이야기_박수진 양
박수진 양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알고 지냈던 언니가 자퇴를 하고 자기 꿈을 찾아 나서는 모습을 봤어요. 또 아빠도 저에게 고등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먼저 말씀해주셔서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정한 뒤, 수진 양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검정고시 공부였다. 독학으로 공부해서 17세에 합격을 했고 그 다음으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를 찾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센터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약 6개월간 받고 네일아트, 마라톤 등 취미를 찾기도 했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다니면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두 달 전부터는 학원에서 제과·제빵을 배우고 있다.
“원래 제가 하는 일을 잘 미루고 무기력한 편이었는데 하나씩 배워보니까 점점 활동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제 모습과 비교했을 때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시간 계획을 세울 줄 알게 됐다는 거예요.”
흘러가는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는 수진 양. 그는 17세 때 학업을 중단했지만, 현재 하고 싶은 공부를 위해 다시 학교에 다니고 있다. 또 앞으로도 배움과 도전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어른들이 그러잖아요. 네 나이 때 하고 싶은 거 많이 하라고. 그래서 안 해본 것들, 하고 싶은 것들 다 해보면서 길을 찾아가려고요. 그러다 보면 저도 꿈이 생기겠죠?”
두 번째 이야기_최유경 양
최유경 양은 고등학교를 입학했던 나이인 17살에 학교를 나왔다. 당시 불안, 공황 장애 증상으로 학교를 자주 못 나갔던 것이 가장 큰 계기였다. 또 미용이나 메이크업 같은 기술을 배워보고자 했다.
“저처럼 건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퇴하는 경우도 있어요. 학교 밖으로 나오니까 생활습관도 바뀌고 실내보단 바깥에 더 많이 있다 보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근데 종종 학교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유경 양은 18세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올해 메이크업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4월부터는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얻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되어 새 출발을 앞두고 있는 유경 양. 그는 자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자퇴하면 시간이 엄청 널널해지는데 이걸 요긴하게 잘 써야 해요. 그래서 학교를 나오기 전에 계획을 잘 짜놓는 게 중요해요. 또 학교 다니는 친구들과 간격이 점점 벌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요. 자퇴했을 때 이런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걸 미리 생각해야 해요.”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도 안전망 필요
올해 7월 기준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 등록된 학업중단 청소년 수는 61명이고 완주군에서는 해마다 약 110명의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해마다 약 5만 명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하지만 재학생 위주의 지원체계로 인해, 학교밖청소년들은 혜택이 적거나 없는 경우가 있어서 제도 개선 및 지원 방안 마련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황치연(35) 상담사는 “학교에서는 무료급식이 의무화됐는데 학교밖청소년들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긴 하지만 예산상 관내 아이들에게 1~2끼를 제공하면 끝날 정도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학업 중단자가 발생했을 때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로 바로 연결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때문에 센터에서 학교밖청소년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황 상담사는 “학교 선생님이 자퇴하는 학생에게 의사를 묻고 승인을 했을 때만 저희 센터와 연계가 되는 거다. 만약 선생님이 센터 존재를 모르고 있다면 그 아이는 지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는 학교밖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여러 사업들을 운영하고 있다. 주요사업으로는 상담지원, 교육지원, 직업체험, 취업지원, 의료지원, 건강증진 등이 있다. 교육지원에는 인터넷 강의나 교재 지원, 검정고시 지원, 대학생 1:1멘토링 등 방식이 다양하다. 특히 지난해 공모사업에 당선된 특성화 사업 ‘운전면허 취득지원’은 올해 10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끝으로 황 상담사는 “센터에서는 크게 청소년들이 학업복귀나 사회진입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학업복귀는 검정고시나 수능을 지원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말하고, 사회진입은 자격증 및 기술 취득을 통해 생계를 꾸릴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밖에 학교밖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듣고서 새로운 사업도 만들어내고 있으니 누구든지 연락 주거나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완주군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 주소 완주군 삼례읍 삼봉로 125, 완주군청소년수련관 2층
● 연락처 063)291-3303
학교밖청소년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박수진(19)
그동안 주변에서 학교밖청소년 친구들을 만났을 때, 흔히 생각하는 ‘날라리’가 아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공부가 싫어서 자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할 게 분명해서 학교에 안 간 것이었습니다. 학교를 벗어나게 되면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는데,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걸 보면 오히려 대단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밖청소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최유경(19)
요즘은 그래도 편견이 많이 사라진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 학교밖청소년을 안 좋게 바라보는 분이 있다면, 그 친구들이 모두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다른 이유를 갖고 있으니까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황치연(35) 상담사
학교를 그만뒀다고 해서 학업을 아예 포기한 것도, 본인의 꿈을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꿈을 더 넓게 바라보기 위해서 학교를 나온 친구들에게 비난의 말보다는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완주문화재단 무지개다리 사업
= 완주문화재단은 2021년 무지개다리사업을 통해 문화다양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사업은 완주문화다양성발굴단 <소수다> 운영, 완주문화다양성 정책 TFT 운영, 문화다양성 캠페인 및 주간행사, 문화예술 프로그램 개발 운영 등을 통해 문화다양성 핵심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며 문화다양성 필요성을 인식하는 지역 분위기 확립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