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노래] 9. 아직 안 죽었으니 행복하게 살아.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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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 넘치는 생사확인 점검 대문은 없고 현관문이 잠기지 않는 우리집 사정 상, 나를 부르려면 집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데, 방금 들리는 소리는 그만큼 크지 않았다. 밖에 어르신들이 말씀을 하시나보다 생각하며 핸드폰을 뒤적거리는데, 다시 한 번 “어이——, 어——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요 며칠 집에만 머문다 생각을 하시고는 혹시 아파서 누워 있나, 몇 번 불러보고 방으로 들어와서 생사를 확인하시려고 했단다. “저 어제도 나갔다와서, 밤 늦게까지 일한다고 오늘은 늦잠 자는 중이었는데요. 이 강아지들은 왜 짖지도 않지?” 하며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한다고 하는 나의 소식에 지인과 친구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자유로운 나의 결정을 용기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당황스러워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시골로 숨는 꼴이 나사 하나씩 빠진 인간들이 하는 행동과 닮았다고도 하였다. 열심히 해야 하고, 잘 해야 하고, 남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어야 하고, 발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항상 내포해야 하는 일상에서는 모든 것이 내 잘난 덕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여겨졌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훈장이며, 주민등록증처럼 내 삶의 근간이었다. 그리고, 자랑스럽지 않은 부분은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나 혼자 비밀리에 삭히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화산에는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혹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도시에서는 크게 신경 안 쓰던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부터, 같은 동네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때마다 얻어 먹는 마늘쫑, 감자, 양파에다 각종 반찬. 거기에 “어이—, 어— 당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소개를 받을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읽고 어느 분류에 이 사람을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없이, 당신과 내가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것, 지나가는 트럭 꽁무니에 인사를 열심히 한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장아찌를 얻어 먹을, 겉절이를 한 대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가 주신 겁나게 맛있는 귀한 보리된장을 앞에 두고도 작은 일에 마음이 흔들리고 서러운 울음이 멈추지 않던 저녁, 염소와 함께 살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해준 ‘아직 안 죽었으니 행복하게 살아’ 한 마디가 큰 힘이 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훌륭하다. /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늦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어———”부르는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소리에 나와 함께 잠에서 깬 강아지들이 귀를 쫑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