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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노래] 8. 인생은 허무한 달콤함2021-06-17

[사람의 노래] 8. 인생은 허무한 달콤함



화산 라복마을 임재길 어르신


집을 알아보던 중 동네어르신의 소개로 화산면 라복마을의 빈집을 보게되었다. 군수어머님이 살고 계신다는 큰 자랑거리가 있는 마을에 들어서자, 빈집이 아주 좋다며 임재길어르신이 집소개를 해주신다. 어르신 키가 훤칠하시고, 눈망울도 참 커서 옆집분이 잘 생기셨으니 이집에 이사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던 중에 어르신이 아이스크림 한개 먹으라며 본인 집으로 들이셨다. 곱고 차분한 부인이 계신 집에는 앵무새가 귀염을 떨고 있었고, 겁많은 강아지 몽이는 반가움 반 두려움 반으로 갈까말까의 몸짓을 한다. 안 보이는 집 뒤쪽까지 정갈하고 곱게 손이 간 집에는 곳곳에 고운 꽃이 만개를 하였고, 어느 한구석 한 가족의 세월과 안주인의 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어 참 좋아보였다.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 서른에 손수 지어 들어온 집이란다. 그렇게 어르신의 이야기를 조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내 장손은 공부를 시켜 나와는 다른 세상 살기를 원하시던 임재길 어르신의 할아버지 생전 그 품에 손주를 안겨드리고,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렸을 때 나이가 14살이었다고 하신다. 요즘같으면 어린이날 선물이 맘에 안든다며 울며 땡깡을 부려도 귀여울 조그만 아이의 나이다. 결혼과 동시에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부모님, 형제자매와 나의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며 마른입술을 한번 훔치고 별일 아니라는 듯 느린 웃음을 지으신다.

큰 키와 덩치로 어른들 품삯을 받으며 일을 다니셨다는 어르신은 뒤돌아 가장 힘들었던 일을 여쭙자, 이제 너무나도 옛날 이야기라는듯 푸석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 식솔 먹이려 허리가 까지도록 매일 일 다니던 시절을 짚으셨다. 아무리 세월이 다르다 하더라도 살아온 날이 짧으니 많은것을 이해 할 수있는 나이가 아니기에 섭섭한 아이의 마음이 가끔을 들었을테지만, 그 고된 노동과 거친 세월 속 14살에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를 돌보는 어른이 많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에 내 마음까지 아린다. 하지만 그런 투정에 관한 한 머디 없이, 허리에 수건을 덧대어 겨우 버티며 살아낸 그 세월에 짧은 세월이 아니라 참 고되었다고 되짚으신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이는 곧 전쟁도 겪어내야했다. 지금이야 어떤 전쟁이었고 언제 끝나는지 아는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밤이면 밥을 내놓으라며 들이닥치고, 날이 밝으면 밥 한 사람을 찾아다니는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불안한 세상을 그 어린 나이에 살아내신것이다. 어르신을 알게 된 이 짧은 시간동안은 들려주셔도 이해도 못 할 정말 엄한 세월을 말이다.

어르신께 인생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인생은 참으로 허무하지라는 말씀에 쓴 웃음이 묻어난다.

14살 어린 나이에 먹여살려야하는 집안 식솔을 책임지시고, 하루에 두번씩 좋은 놈 나쁜 놈이 뒤집혀버리는 세월을 목숨부지하며 버텨내고, 그렇게 살아남아 만난 좋은 시절에는 또 동네잡꾼들의 꾀임에 넘어가 땅을 치며 후회하는 시간을 보내셔야했고, 모든것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하는 고행도 다 지나보내셨다.

집안의 장남으로, 가정의 가장으로, 6.25 참전용사로, 그 멋진 얼굴과 몸을 지켜내신 어르신이 얼마나 무게있어보이고 존경스러워보이시는지 어르신도 아실까.

어떤 세월은 버틴다는것 자체로 보이지 않는 훈장이 되어 그 사람의 가슴에서 빛을 내기도 하는것 같다.

다시 찾아뵌 비오는 날, 그런 남편을 위해 좋은 먹거리 손주 챙겨가며, 올 해 잦은 비에 꽃이 일찍 질라 우산을 씌워주시는 섬세한 안주인과 함께 냉장고 한가득인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드시는 모습에 참으로 깊이 있는 달콤함이 느껴진다.


/김민경(완주문화재단 한달살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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