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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양성 소수다] 나도 사장, 이주여성2021-05-13

[문화다양성 소수다] 나도 사장, 이주여성

주연헤어샵 주인장 김주연 씨가 머리 손질을 위해 찾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장 골목에 불어온

새로운 바람

 

거리에 한식당이 대부분이었던 전통시장 인근에 생소한 이름의 간판이 걸렸다. 가게에 들어서니 가격표도 한글과 베트남어 두 가지로 적혀있었다. 베트남 식당에는 어르신들이 입맛에 잘 맞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이주여성이 운영하는 미용실에는 젊은 청년이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우리 곁에 다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풍경 중 하나다. 각 도시뿐 아니라 완주에서도 외국인 이주자가 운영하는 가게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이주여성들이 운영하는 가게 세 곳을 찾았다. 각자 출발점도 다르고 도달하게 될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비슷했다.









노력으로 이뤄낸 나만의 가게_포 보(PHO BO), 주인장 박보영 씨

고산미소시장에 위치한 상가 건물 앞. 베트남 전통모자인 논라그림이 그려진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알싸한 고수 향이 풍겼다. 지난 430일부터 문을 연 쌀국수 전문점 포 보(PHO BO)’에서 이주여성 박보영(31) 씨가 찾아온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면 빈자리가 없을 만큼 반응이 좋은 편이다.

가게 포 보주인장 보영 씨는 한국에 오기 이전에 베트남에서 옷가게를 운영했었다. 평소에도 옷이나 유행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곳에서도 옷 장사를 하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생활해보면서, 각 나라의 옷 문화가 확연히 다른 것을 체감했다. 옷가게의 꿈은 접었지만, 대신에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음식인 쌀국수로 가게를 열어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남편이 쌀국수를 너무 좋아해서 베트남에 가면 하루에 두 끼는 쌀국수를 먹었어요. 집에서도 자주 만들어 먹어서 자신 있는 요리가 됐어요. 장난삼아 나중에 쌀국수 가게 차려도 되겠다고 말했던 게 정말로 이뤄졌네요.”

2013년 한국으로 온 보영 씨는 어느덧 한식도 뚝딱 만들어내는 살림꾼이 됐다. 지금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건 그간 쉬지 않고 노력한 덕분이었다. 또 옆에서 항상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영씨의 휴대전화에는 그동안 요리한 한국음식 사진들이 가득했다.



요리를 할 때 누군가가 먹게 될 한 끼를 정성들여서 만드는 편이에요. 장사를 할 때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하고 있고요. 처음에 한국 왔을 때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레시피도 많이 찾아보고 매일 하루에 하나씩 공부 했어요.”

타국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지만 보영 씨에게 포기란 없었다. 요리도 독학으로 공부했듯 한국 문화와 한글도 혼자서 익혔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일단 부딪혀 봤던 것이다.

내 가게를 갖게 되면서 그만큼 책임감도 느껴요. 너무 이국적인 맛에 거부감을 느낄까봐 걱정돼서 손님들 반응도 그때 그때 살피고 있어요. 누구든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죠.”








꿈꿔 왔던 가게, 이제부터 시작_ 사이공(SAIGON) 주인장 김정인 씨

봉동에 위치한 베트남 식당 사이공’. 아담한 규모의 가게에는 주인장 김정인(39) 씨가 재료준비로 분주했다. 이곳은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 전문점으로 지난 49일 문을 열었다. 2004년에 한국에 온 정인 씨는 지금까지 해본 일들이 다양했다. 처음에는 자동차부품회사에 7년간 다녔고 그 뒤로는 식당 아르바이트, 구제 옷가게 운영을 했다. 식당에서 서빙이나 요리 보조를 맡았을 땐 직원들에게 가끔 베트남 음식을 선보이곤 했다.

옛날엔 외국 음식을 좀 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근데 제가 한국 사람들한테 베트남 음식을 해서 주면 맛있게 잘 먹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간 식당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어엿한 식당 사장이 된 정인 씨. 그는 이전부터 줄곧 자신만의 가게를 꾸리는 게 꿈이었다. 자동차부품 회사를 다닐 땐 제품회사를 차리는 게 목표였고, 어느 정도 돈이 모였을 때 구제 옷가게를 열었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 때문이었다.

같은 일을 해도 한국인이랑 외국인들이랑 대우라던가 돈 받는 게 달라요. 오히려 더 힘든 일을 해도 돈은 더 적게 받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회사나 가게를 차려서 주변에 일없는 사람들이나 우리 가족들을 먼저 챙기고 싶었어요.”






렇게 엄마와 함께 옷가게를 시작했지만 가게 운영은 쉽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로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옷가게를 2년간 했는데 그건 저랑 안 맞았는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식당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 음식을 먹어본 친구들은 다른 곳이랑은 비교가 안 된다고 그랬거든요. 나중에 돈이 많아지면 베한식당이라고 이름 짓고 베트남, 한국 음식을 둘 다 팔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_주연헤어샵 주인장 김주연 씨

자신의 이름을 건 미용실 주연헤어샵을 운영하는 김주연(37) 씨는 오랜 미용경력이 곧 장사의 비결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4년간 미용사로 일했고, 한국에서 미용자격증을 취득한 뒤 5년간 미용실에서 일했다. 그리고 20188월에 자신만의 가게 문을 열었다.

미용실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아이들도 키워야 했고 돈도 부족해서 어려웠죠. 제가 한국에 2008년에 왔는데 딱 10년 만에 가게를 차린 거예요.”

친근한 말투가 장점인 주연 씨는 단골도 여럿 있다. 주로 50~60대 연령층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한국인보다 외국인 고객이 더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주여성으로서 지금의 가게를 갖추는 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게에 들어왔다가 제 얼굴을 보고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나간 적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힘들었는데 점점 익숙해지더라고요. 옆에서 저보고 머리 잘한다고 위로해주는 손님들이 있어서 힘이 났어요.”






주연 씨는 가게에 없을 때 취미로 베트남 채소 농사를 짓는 등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게 휴무일인 목요일에는 어르신 미용 봉사활동에 나간다. 전주에 위치한 요양복지센터부터 화산, 운주 등을 찾아다니고 있다.

봉사활동이 두 시간 정도면 끝나서 별로 힘들다고 생각 안 해요. 가게에 오전에는 손님이 없어서 오전에만 잠깐 하기도 해요. 꼭 저한테 머리 받는 어르신들이 있는데 그럴 때 뿌듯해요. 저는 미용하는 게 재밌어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어요.”







/완주문화재단 무지개다리 사업

= 완주문화재단은 2021년 무지개다리사업을 통해 문화다양성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이 사업은 완주문화다양성발굴단 <소수다> 운영, 완주문화다양성 정책 TFT 운영, 문화다양성 캠페인 및 주간행사, 문화예술 프로그램 개발 운영 등을 통해 문화다양성 핵심 활동 주체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며 문화다양성 필요성을 인식하는 지역 분위기 확립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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