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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의 비봉일기 7] 수도 동파2021-02-09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7] 수도 동파


꽁꽁 언 수도관과 한밤 중의 외침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6> 수도 동파


일월 모일 날씨 눈 

창문 커튼을 열어보니 날아오는 하얀 조각들은 검푸른 숲 위에 내려 빛난다. 사람은커녕 자동차마저 다니지 않아 움직이는 것 하나 없는 배경에 바람을 타고 눈이 어지럽게 춤을 춘다.

회색 하늘 높은 데에 희미하게 해가 떴다. 유리창 넘어 시간이 하얗게 지나갔다. 이 겨울에 하늘이 보내준 예술 작품이다.

 

일월 모일 날씨 쾌청

새벽 3시 반에 물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졸졸 들렸는데 바로 좔좔 세게 흘러나는 소리가 되었다. “잘 됐다!” 벌떡 일어나 부엌에 욕실에 가서 물을 받았다. 닷새만이다. 저절로 큰 웃음이 나왔다.

혹한 추위를 알면서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자, 다음 아침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가 사는 건물 전체 수도관이 언 것이었다.

첫 번째 날에는 뉴스에서 본 재해지 같다고 말하면서 차로 약수터에 가서 물을 받아왔다. 외식하고 목욕탕에 다니면서도 날이 지나갈수록 우울해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씻으려고 자꾸 수도꼭지를 돌려 버린다. ‘그래, 물은 안 나와.’ 날씨예보를 보며 따뜻한 날만을 기다렸다. 기온이 봄처럼 오른 어제는 크게 기대했는데 무정하게 물은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왠지 모든 일이 귀찮게 느껴 일찍 잤다.

한밤중에 갑자기 물소리가 들렸다. “물 만세!” “물 감사해!” 하며 설거지하고 걸레질하고 빨래하고 샤워를 했다,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사막 여행을 할 수 있겠지만 살지는 못하는 나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일월 모일 날씨 흐린 후 갬 

처음으로 마을버스를 탔다. 동네를 다니는 버스를 자주 보는데 언제 어디로 가는지 영 몰라서 타기가 어려웠다. 면사무소에서 물어보니 터미널 출발시간과 가까운 정류장을 알려주셨다. 오늘 우연히 터미널에 갔더니 마치 버스가 있어 타보았다.

기사님에게 정류장 이름을 말했더니, 거기는 눈이 쌓여 치우면 좋겠다고 하셔서 나도 머리를 끄덕이었다. 큰 버스에는 어떤 아저씨와 나, 둘만 앉아 전세 버스 같았다.

모르는 곳을 여행할 때 버스를 타는 일은 작은 모험이다. 긴장되면서도 재미있다. 성공하면 기분이 너무 좋다.

얼마 후에 우리 집이 보였다. “여기, 여기요.” 외쳤다. 문이 열릴 때 공기가 나가는 푸슈소리가 났다, 나의 한숨처럼. “감가사합니다.” 버스에서 튀어 내렸다.


/한국생활 10년차 나카무라 미코는 올해 5월 한국인 남편과 비봉면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시민교류를 추진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며, 비봉에서는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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