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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202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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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같은 진담

 

코로나19 확산세를 감안해 벼농사두레 정례행사를 유보한다는 안타까운 말씀을 전합니다. 새해 초반에 열어오던 '벼두레 회원 엠티(연찬회)'도 현재의 여건에 비춰 시행이 어렵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아가 역시 신년초에 해마다 열어오던 <농한기강좌> 역시 특별한 사태반전이 없는 한 진행이 어렵게 됐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아쉽지만 시절이 이리 어수선하니 어쩌겠습니까.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산권 벼농사두레 단체톡방에 두 달 째 걸려 있는 공지사항주요내용이다. 그 사이 특별한 사태반전은 없었고, 되레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한때 1천명까지 치솟았던 하루 확진자수는 3~4백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예방조치를 늦추면 상황이 나빠질 게 뻔하니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손님이 끊겨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파산 위기에 닥친 상인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은 안타깝기만 하다. 진작부터 예견된 상황일 텐데 이 지경에도 어찌 나랏돈을 풀지 않고 금고문 닫아걸고 있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어쨌거나 답답한 시절이다. 집합금지 명령 뒤로는 바깥으로 나다닐 일이 거의 없었다. 출퇴근 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마실 정돈데 그마저 쉽지가 않은 것이다. 굳이 나서자면 핑계야 없겠냐마는 꽁꽁 얼어붙은 사회심리에 비춰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장을 보거나 필요한 업무를 보는 것 말고는 밥 한 끼 또는 술 한 잔 나누는 일조차 눈치가 보이는 것이다. 하릴없이 울안에 틀어박혀 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거나 책장을 넘기는 일이 다였다. 뒷산에 올라야지 그나마 바깥바람을 쏘일 수 있는 나날. 지난 한 달이 마치 반년이나 되는 듯 길게 느껴진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그것만으로 사건이 되는 상황. 그러고 보니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 손에 꼽을 수 있겠다.

며칠 전에 방아를 찧었다. 방아 찧기야 쌀 전업농에게는 매양 있는 일이지만 이번엔 좀 특별한 방아였다. 우리 벼농사두레 회원 가운데 전주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농사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작은 논배미를 마련해 손수 벼농사를 짓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거둬들인 나락이 한 가마가 채 못 된다고 했다. 꼬마농부들이 땀 흘려 지은 그 천금 같은 나락이 아까웠던 원장은 내게 처리방안을 상의해왔다. 고심 끝에 우리 집 방아를 찧은 날 함께 찧기로 했다. 도정과정을 직접 살펴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뜻 깊은 경험이 될 것이었다. 방앗간을 찾은 아이들은 쌀과 방아에 얽힌 설명을 들은 뒤 거창한 도정시설을 거쳐 하얗게 변신한 쌀 포대를 들고 돌아갔다.

,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번 겨울엔 눈이 자주 내려 두 번이나 진입로 눈을 치운 얘기, 그 와중에 모터펌프가 고장나는 바람에 물이 끊겨 불편을 겪은 얘기 따위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별것 아닌 일이 별난 것이 되는 참 이상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몇 차례 이게 사는 거냐?”고 팔자타령을 했더랬는데 다들 심정들이 비슷한 모양이다. 엊그제는 갖은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는 홍어탕과 갑오징어-쭈꾸미 찜을 차려내는 거였다. ‘독거노인 위로연이래나 뭐래나.

귀신은 팬데믹 빨리 안 데려가고 뭐하나 몰라.


그러니 어떤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사건이 되는

-그러니 어떤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얘깃거리가 되는

-설이 코앞인데

-독거노인 위로하겠다면 홍어탕... 독거노인이 맞지

-이번 겨울은 어찌나 눈이 자주 내리는지

  

꽁꽁 얼어버린 사회심리적 요인이 컸던 듯하다.

사회심리적 요인

지난 한 달 동안 어딜 나다닐 일이 거의 없었으니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돌아가는

 

새해 첫머리부터 큰 눈이 내렸다. 내려도 너무 내렸고, 몹시 매서운 한파까지 몰아쳐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도관이 얼고, 보일러 배관과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고 여기저기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이 고장의 경우 60년 만의 최저기온이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 매서운 추위에 웬만해선 밖으로 나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하릴없이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북극지방이 따듯해진 데 따른 지구의 반작용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겨울은 더욱 추워지는 양극성기후가 이어질 거란 분석이다. 결국 인류의 끝없는 탐욕이 부른 자업자득인 셈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게다가 3차 유행국면을 지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쳐 새해를 맞는 심정이 이래저래 말이 아니게 됐다.

그러고 보니 서울을 떠나 이 고산 땅으로 삶터를 옮긴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돌아보면 아찔하다. 아무런 기약도, 연고도 없는 곳에 어디인들 서울보다 못할까하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내려왔더랬다. 벼농사를 밥벌이 삼아 용케 자리를 잡았고, 새로운 인연들과 더불어 행복한 시골살이를 일궈가는 중이다.

무작정 내려온 터라 처음 한 두 해는 적지 않은 시간을 이전의 삶을 정리하는데 할애해야 했고, 그 반평생을 갈무리하는 뜻에서 <노동인권 이야기>(철수와영희)를 펴냈다. 며칠 전 그 책 10쇄를 찍었다는 기별을 받았는데, 풀리지 않은 도로사정 탓에 오늘에야 증쇄본 두 권이 택배로 도착했다. 돌아보면 <완두콩>과 끈을 맺은 것도 이 책 덕분이다. ‘고산에 사는 차 아무개라는 귀농인이 얼마 전 책을 냈다더라고 지면에 소개되었고 그 인연이 고정칼럼 농촌별곡으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말고, 이 책과 칼럼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책에서 다룬 사회과학적 식견과 농사꾼의 삶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완두콩>이 그러하듯 그저 소소한 시골살이와 농사이야기를 다뤄왔지 싶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이미 큰 강을 건너왔고 다시 10년 전의 세계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이 또한 스스로 쌓은 이겠거니 여기기도 했다. 책이야 그 독자층이 해체될 때까지는 계속 나오겠지만 실존의 영역은 지금 발 딛고 선 이 세계다.

오늘도 눈이 발목까지 쌓인 뒷산 오솔길을 걸었다. 눈이 내려 설국을 이루고 조그만 공간에 갇히게 되면 쌓인 눈높이만큼이나 생각도 깊어지는 모양이다. 지나간 10년을 되작이고 그 앞날을 떠올려본다. 그저 한 점으로 고요히 살다가 시나브로 사라지리라 했었다. 하지만 삶이란 게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닌지 이리 저리 엮이고, 뜻밖으로 일이 커지면서 다시 업을 쌓는 꼴이 되어가고 있다.

이래저래 희망을 노래하기 어려운 시절에 맞는 새해는 어쩔 수 없이 음울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올 한해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이제까지 해왔듯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는 그런 부류의 노래? 시골살이라는 건 사실 봄-여름-가을-겨울로 거듭 되풀이되는 삶이다. 물론 단순 도돌이표보다는 나선형에 가까워 나름의 변주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다. 지난 10년 고산 땅에서 쌓인 삶의 내력이 이제 깊은 울림을 주는 노래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다.


/차남호 비봉 염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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