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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76] 삼례읍 해전리(海田里), 비닐하우스 바다2021-02-01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76] 삼례읍 해전리(海田里), 비닐하우스 바다

삼례읍 해전리(海田里), 비닐하우스 바다


해전리는 완주군 일부 서쪽 끄트머리로, 주민은 익산시 삼포-덕실-용연-오산-인수리 그리고 만경강 건너 조촌·백구와 가깝게 지낸다. 동상면 검태는 논 한 뙈기 없는 두메이고, 해전리는 작대기 하나 벨 산 없는 들판으로 양측은 멀고멀어 생활이 너무나도 달라 혼인한 일이 전연 없다. 삼례면(읍) 체육대회 때 육상경기 우승은 늘 해전리가 독차지했다. 해전리에서 삼례역까지 2km 이상이고, 춘포역은 4km가 넘는다. 통학생들은 아침저녁 이 거리를 달려야 했으므로 모두 건각들이었다. 우수개 소리지만 ‘초상집 마당에서 밥 가장 많이 잘 먹기로는 해전 청년들’이라고 했다. 해전리는 알다시피 산이 없어 장례 때 묘 쓰기가 가장 어려워 이게 평야부의 단점이다. 이 들판에서 광작하는 부농들이야 짚이 많아 땔감 걱정 없지만, 소농은 만경강 둑 넘어 갈대를 뜯어다 땔 수밖에 없었다. 갈대를 베고 나면 모래알 흙이 고아 곡식을 심고 가꿔 수확했다. 서해 조수가 여기까지 밀려들어 ‘바다 소금기가 섞여 있는 밭(땅)’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해전리’. 30년 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근동은 물론이고 모래찜하려고 저 멀리 화산 분들도 여기를 찾아왔다. 늦게 도착하면 자리가 없어 밀밭 고랑 모래를 파고 들어갔다.



세월이 흘러 만경강 상류에 둑을 쌓고 하천관리가 잘 되면서부터 몽근 모래는 사라졌으며 또한 나라에서 법으로 엄하게 관리하여 사람의 범접을 막아 지금은 땅 한 평 씨 뿌리지를 못한다. 둔치 농사에 익숙했던 노동력이 논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어 이게 발전 과학 영농 비닐(온실) 하우스가 온 들판을 뒤덮었다. 겨울철 해전에 이르면 논바닥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비닐하우스가 마치 ‘바다’로 보인다. 이름치고는 ‘해전(海田)’ 이렇게 적중할 수 없다. 일화도 많다. ‘춘포역에서 기차 기다리느니 차라리 한 발이라도 더 줄이자’며 걸어 이리(지금 익산시) 구시장을 한나절에 오고 가기 보통이었다. 해전 231번지 16의 경주김씨(신태로:申泰魯 처)와 파평윤씨(신범균:申範均 처) 고부 열효각(烈孝閣)을 직접 가봤다. <1928년 3월 ‘모성공회’에 포상을 건의했고, 그해 8월 해전리에 고부 정문을 세웠다> 이 연혁을 두고 직접 여기를 거론한 건 아니지만 근래 전남의 아무개가 옛날 신문을 인용하며 ‘모성공회’를 달갑지 않게 지적하여 자손들과 뜻있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원해전-중해전-장연마을로 장가들고 시집오면 싱싱한 농작물로 몸 튼튼 살림 튼튼 큰 밑천 잡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여기저기로 새 길이 쭉쭉 뻗어나서 뛰고 달릴 필요 없이 느슨하게 살아도 편하게 되어 있다. 멋진 마을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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