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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목 이웃사촌] 가을볕에 익어가는 풍경2020-09-14

[다리목 이웃사촌] 가을볕에 익어가는 풍경

산 병풍 두르고 앉아 무생채에 막걸리 한 잔

 

소양면 해월리 전북체육고등학교를 지나 안으로 쭉 들어가면 다리목마을이 나온다. 기다란 형태의 마을 뒤편에는 위봉산과 원등산이 병풍처럼 서있다. 산 아래 오목하게 자리 잡은 이 마을에는 56세대가 산다. 다리목마을을 찾은 날은 햇빛이 강했고 바람은 제법 찼다. 그리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옛날부터 한지장판 유명

마을사랑방인 이창근(63)씨 집 마당에서는 조촐한 막걸리 잔치가 펼쳐지고 있었다. 안주는 배추김치와 무생채. 별것 없는 날씨 이야기와 그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낯선 손님이 오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마을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어르신들에 의하면 다리목마을은 한지장판을 비롯해 예부터 한지로 유명했다. 마을 꼭대기에는 한지공장이 있었고, 당시의 많은 청년들이 이 공장에서 일했다.

박남춘(80) 어르신도 열여섯 되던 해부터 한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춘 어르신은 콩기름을 종이에 먹이면 기름이 스며들어서 종이가 질겨진다. 이걸 말려서 장판으로 썼다. 나일론 장판이랑은 완전 다르다. 한지장판은 부드럽고 습기도 안 차고 벌레도 잘 안 생겨서 그 당시 잘 사는 양반들이 깔고 살았다. 대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갈대를 엮거나 나무를 쪼개서 깔고 살았다고 말했다.

박명선 할머니의 아버지도 마을에서 한지공장을 크게 했었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되었는지 한지공장 안에 방을 만들어 일하는 사람들도 같이 살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마을서 한지 장판지 공장을 크게 했어. 우리 마을이 한지로 유명해서 이북까지 가서 팔고 그랬지. 공장 안에 집도 지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거기 살았는데 밥 때가 되면 솥에다가 밥을 많이씩 해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그 사람 애기들도 같이 먹고 그렇게 살았네.”

 



다리목마을 주민들은 이웃간의 정이 깊다. 언제든지 막걸리 잔을 함께 기울이고 만나면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운다


마을주민 대다수 천주교 신자

다리목마을은 천주교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마을에 천주교인이 공부를 하는 피정(避靜)의 집이 있고 옛 공소 터도 남아있다. 소양성당이 생기기 전까지 마을 주민들이 미사를 드리던 곳이다. 임실치즈를 탄생시킨 고 지정환 신부가 살던 집터도 그대로 있다. 지금도 마을주민 대다수는 천주교를 믿는다.

옛 공소 터에 살고 있는 김인석(81) 어르신도 천주교 신자이다. 부모님도 천주교 신자였고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도 모두 천주교를 믿는다. 인석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천주교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우리 집 거실과 방이 예전에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미사를 드리던 장소였다고 말했다.

오후 2, 햇볕이 뜨겁다. 마을을 걷다가 그늘을 찾던 중 다리경로당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두 어르신이 보였다. 유금순(84), 박명선(81) 할머니다. 둘은 함께 소양성당에 다녀오는 길이다. 금순 할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성당에 가는데 수요미사, 금요미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오늘 읍내 나간 김에 침도 맞고 왔다고 말했다. 날이 덥다보니 외출할 때 챙겨야 하는 마스크도 원망스럽다. 할머니는 요새는 버스 타려면 마스크 꼭 써야 한다. 땀도 차고 숨도 차서 번잡스럽지만 그래도 써야 한다니 쓴다고 말했다. 


한때 한지로 유명했던 다리목마을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좋아  찾는 사람이 많았다



환경이 좋아 이주가구 계속 늘어

최근에는 마을에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산에 둘러 싸여 있어 공기가 좋고 조용해서이다. 주민들은 원주민, 이주민 할 것 없이 오가며 인사를 나눈다. 분기별로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갖고 마을위원회를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손기화(65)씨도 이 마을로 이사 온 지 5년 됐다. 그는 집 담벼락 옆 화단을 정리 중이었다. 평소에는 일을 해서 바쁘지만 이번 주는 코로나19 때문에 일을 쉰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좀 생겨서 화단 정리를 하고 있다. 원래는 국화가 예쁘게 피는데 근래 비가 많이 와서 다 망가졌다올해는 이웃들에게 국화를 나눠주지 못하겠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집 앞에는 작은 내가 흐른다. 평소에는 물이 말라있는데 지난주 비가 와서인지 이날은 물이 제법이다. 한 어르신은 마을 안쪽에 상바탕이라고 불렸던 곳이 있다고 했다. 산에서 물이 나오던 곳을 말하는데 그 물이 좋아 나병환자들이 마을을 찾아오곤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석 할아버지는 나병환자 셋이 그 물을 마시고 나아서 갔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은 적 있다. 옛날에는 산에 물 양이 많아서 목욕도 자주 했었다. 물이 참 찼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의 평균 연령은 75세 가량. 고령자들이 많아 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젊은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젊은 층에 속하는 박태평(58)씨는 마을에서 양봉을 한다. 피정의집 방향으로 쭉 올라가다보면 인적이 드문 밭 인근에서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곳에 태평 씨가 있었다. 마을에 정착한지 3년 정도 된 그는 혼자 양봉을 한다. 양봉의 규모는 60군 가량. 많은 편은 아니지만 혼자 하다 보니 벅찰 때도 있다. 게다가 지금은 가장 바쁠 시기이다. 그는 “5~6월에 꿀을 따는데 오히려 그때는 꿀만 따면 되기 때문에 한가하다. 하지만 8~9월은 말벌을 쫓아야 하는 시기라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오후 2, 뜨거운 햇빛 아래 김이 나는 훈연기로 벌통을 소독하는 그에게 서두르는 모습은 없다. 그저 오늘의 할 일을 해나가는 것뿐이다.


 

다리목마을 산 중턱에 새로 문을 연 카페해월, 마을로 귀농한 자매가 치유농장과 함께 운영한다



다리목 마을은

마을명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한자로 풀이하면 많을다배나무리나무목이다. 배나무가 많았으며 당도가 높아 임금님께 진상을 할 만큼 좋았다고 전해진다. 천주교 신자가 마을주민의 80%에 달하며 같은 종교를 믿는 만큼 단합이 잘된다. 임대훈 이장은 마을발전은 더디지만 아름답게 살 수 있는 마을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무말랭이 출하 등 계획하고 있던 마을사업이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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