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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 봉황새가 날다2020-08-13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 봉황새가 날다


야채를 기르려고 비봉으로 이사






나카무라의 비봉일기 <1> 봉황새가 날다



△ 오월 모일 날씨 맑음
하늘이 불러서 천호(天呼), 높은 산(高山)에서 봉황새가 난다(飛鳳). 길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지는 이 땅 어디를 보아 신화를 상기시키는 이런 지명을 만들었을까. 만경강(万景江)에서 천호산(天呼山)을 향해 이사 길을 가며 옛날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야채를 길러 보려고 다니던 주말농장에서 비봉에 방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살던 아파트 계약을 바로 해지해버렸다. ‘건강할 때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자’ 우리 부부가 만든 가훈이다. 낡은 냉장고를 버리자, 아니 아깝다, 소파를 버리자, 아니 아깝다, 소소한 갈등은 있었지만 시골 생활이 힘들면 다시 아파트에 돌아오자고 약속하면서 짐을 쌌다.


밭일을 전혀 몰라서 “보라색 꽃은 가지예요”라고 하면 그렇구나, “토마토예요”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는 우리 부부의 머리는 호박 같다. 고개를 흔들면 말린 씨가 또르륵 또르륵 소리를 낼 것이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여하튼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월 초인데도 아파트와 달리 비봉의 집은 쌀쌀하다. 난방을 틀고 방바닥을 따뜻하게 잤다, 
 
△ 오월 모일 날씨 맑음
주말농장 가까이에 있는 체험관 위에 우리 방이 있다. 농장에서 점심을 함께 먹자는 전화가 왔다. 서둘러 갔더니 옆 동네 목사님 부부가 준비하신 삼겹살 자리였다. 많은 얼굴들이 마당에 모였다.


농장 주인은 짧은 소나무를 쌓고 그 위에 직접 큰 가마솥 뚜껑을 덮어 불을 붙인다. 골동품 같은 손풍로는 내가 맡았다. 웅크려 앉아 손잡이를 돌돌 돌리면 바람이 나와서 긴 관을 통해 약해진 불이 타 오른다. 사람들은 텃밭에서 따온 상추를 씻고 김치 통을 열고 마늘을 썬다. 순식간에 준비는 끝났다.


맑은 하늘 아래 초여름 산을 바라본다. 상추 두 장에 고기와 찰밥, 파, 된장을 싸서 초록 바람과 같이 한 입에 가득 넣었다. 볼이 미어지게 입에 넣는 것이 삼겹살을 먹는 예의이겠지.


고기를 굽는 담당자 손은 매우 바쁘다. 그분에게 삼겹살을 싸서 드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 번 똑같이 해보았다. 왠지 마음이 간지러워 허둥지둥 사람들 뒤로 숨어버렸다.


* 이번 달부터 완두콩에 나카무라 미코의 비봉일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생활 10년차 나카무라 미코는 올해 5월 한국인 남편과 비봉면에 정착했습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시민교류를 추진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며, 비봉에서는 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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