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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토박이들의 한동네 사랑2020-04-13

상관 토박이들의 한동네 사랑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키워낸 한동네 사랑

- 내정마을 서정숙, 표길운씨 부부







십년 가까이 완주군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상관면 소재지를 제대로 둘러본 기억은 없다. 몇 해 전 새로 지어진 주민센터에서 주민시네마스쿨을 진행 하느라고 전주와 상관을 오간 기억은 있지만 주민센터는 전주방향 상관면 초입에 자리하고 있어서 소재지 안쪽 골목골목을 다녀보진 못했다. 상관면 소재지는 큰 길들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 산비탈로는 새로 뚫린 완주-순천간 고속도로가 있고 그 아래에는 여수로 가는 전라선 철도가 있고 소재지 서쪽으로는 남원으로 가는 17번 국도가 있고 한일장신대와 고덕산 사이로는 모악산쪽으로 가는 21번 국도가 휘어나간다.

 

큰 길들에 좁고 길게 놓여 있는 소재지는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그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서정숙씨(57)와 표길운씨(61)가 운영하는 표순대도 어쩌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탓에 집에만 있다가 모처럼 드라이브 삼아 상관저수지 쪽으로 올라가는 고가도로 중간쯤에서 소재지 작은 골목길 끝 삼거리에 자리 잡은 표순대의 파란 구름 간판이 봄 햇살을 가득 받으며 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내외는 상관면 내정마을에서 나고 자라 한동네 결혼으로 여태껏 살아온 이곳 토박이들이다.


 


우리 친정은 칠남매고 시댁은 육남매에요. 온 집안사람이 한 동네 사람이니까 서로 다 알지. 우리 남편 형제간들은 다 한 동네 결혼했어요. 아들 셋 있는 집인데 다 한동네 결혼했지요. 우리 친정은 딸 셋에 아들 넷. 내가 둘째인데 위로 오빠가 하나 있지요. 친정집이 나 스물두 살 때 고쳐서 새로 지었어요. 이사 하는 날 그 양반이 만나자고 그러더라고요.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동네 사람들이 찾으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집들이 하는 날이었으니까 집에 손님도 많았었는데 정숙아 정숙아찾으러 다니고 나는 그 양반이랑 옥상에 있었지요. 밤에 별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그날 그렇게 만나서 이날 여태껏 이렇게 살아요.”


식구들 밥해먹이던 아이는 첫 월급으로 라면 한 박스를 샀다

덜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참 아련한 사랑이야기지만 서정숙씨는 산골마을 큰 딸로 태어나 고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농사와 채소장사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솔가지를 긁어서 땔감도 마련해야 했으니 친구들과 제대로 놀아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많다 보니까 집에서 동생들을 봤어요. 어쩌다 학교에 가면 애들이 다 나만 쳐다보는 거 같았어요. 학교를 오랜만에 오니까. 그리고 칠판에 써져있는 것을 내가 뭔 자인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아무것도 모르지. 2학년 때 학교 안 간다고 했어. 그게 마음에 좀 남아요. 그때 나는 어렸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살림하고 애들 돌보고 그런 거야. 김치도 담고 그랬어. 학독에 고추 갈아서 김치를 담으면 이틀도 못 가서 빡 나버렸어. 식구들이 많으니까. 여름에는 날이면 날마다 김치를 담았어요. 냉장고가 없으니까 시암에다가 담가놓고 먹고 그랬지요.”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엔 상관에 한지공장이 많았다고 한다. 전주가 한지로 유명했고 전주와 가깝고 물이 좋았던 상관면에 한지공장이 많이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정숙씨는 열여섯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육년 동안 편백숲 근처 한지공장에서 일을 했다. 남자들이 종이 뜨는 일을 하고 여자들은 철판에 종이 말리는 일을 했다고 한다.

 

열여섯 살에 한지공장 다닌 게 내 첫 사회생활이었어요. 그때부터 밥 차리는 건 내 동생이 물려받았어요. 그래도 내가 일해서 돈 벌 때가 좋았어요. 돈 벌어서 제일 처음으로 뭘 했냐면 라면 한 박스를 사서 동생들이랑 튀겨먹고 삶아먹고 별걸 다했어요. 그때가 가끔 생각나요. 그때는 라면도 귀했어요. 첫 월급이 한 육만원이었어요. 처음엔 종이를 띄어서 차곡차곡 놓는 일을 했어요. 내가 좀 연차가 될 때는 더 벌었지요. 내가 고참이지만 나보다 다 나이 먹은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제일 어렸어요.

그래도 그때가 황금기였달까 돈 벌어서 저축하던 때였으니까요.”




- 직접 농사지은 채소들로 맛깔스런 반찬을 만들어 낸다.


7년 전 시작한 순대국밥집

지금 가게 표순대는 칠년 전에 문을 열었다. 그동안 남편은 양봉, 건설 쪽 일을 했고 서정숙씨는 살림하고 아이 키우고 농사를 지었다. 순대집을 하기로 마음먹고 둘째딸과 순대로 유명한 식당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밥해 먹었던 가락이 있어서 음식 만드는 것을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표순대가 최고로 자랑하는 것은 식재료 대부분을 집 앞 밭에서 나오는 것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서른네 살, 둘째는 스물아홉 살. 막내는 스물네 살 삼남매를 뒀어요. 둘째랑 순대맛 연구하러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순대로 유명한 곳 있다고 하면 가서 먹어보고 그랬어요. 장사하면서도 농사도 열심히 지어요. 감자 심고, 가을 배추도 심고 우리 식당 식재료에 쓰이는 것 다 농사짓고 살아요. 밭이 집 근처에 있어서 참 좋아요. 남편이 뒤에서 식재료를 조달해주면 나는 가마솥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요. 남편이 그래도 참 자상해요. 시집갔을 때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혼자 계셨는데 동네 어르신들이니까 다 알잖아요. 어렸을 때 기억나요. 생전에 시아버지가 그때는 시아버지가 아니었지. 그냥 동네 어르신이었지. 그 양반이 나 보면 나 어렸을 때 우리 며느리나 하게그랬던 것을 지금도 안 잊어버려요. 냇가에 있는데 나 보면 며느리 삼고 싶다고 했지.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진짜 며느리가 되었어요.”


 


상관면 소재지 골목길 삼거리에 자리 잡은 표순대의 예쁜 간판과 파란 구름은 2016년 완주군과 전북도립미술관 협업으로 진행된 창작스튜디오 지역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상관면 소재지에 들리시거든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꼭 표순대에 들러 따끈한 국밥 한 그릇 말아보시길 권한다. 순대국밥, 뼈다귀탕, 김치찌개가 메뉴판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고 식당 안에는 근처 공사장 인부들이 연신 뜨거운 국밥을 들이키고 있었다. 서정숙씨는 주로 주방 안에서 말없이 일을 했고 표길운씨는 테이블과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날씨 이야기, 음식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졌고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고 어느 날 눈이 맞아 결혼을 하고 여태껏 살아왔으니 그 끝없는 이야기처럼 두 내외의 삶과 사랑도 끝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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